영희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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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我의 세상풍경 - 박경희
2009년 05월 327호
유교적 관점에서 보는‘효’에 대한 전통적 가치가 아직도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미덕으로 요구되지만 막상 당사자들인 부모와 자식은 이와 관련하여 서로 말 못할 부담을 안고 살아가는 게 현대인이다. 봉양에 대한 부모님들의 기대와 변화되는 현실을 따라가느라 때론 무심할 수밖에 없는 자식 간의 심리적 갈등과 부담, 그로 인한 개인적 절망이 서로를 힘들게 하는 것이다.
제법 오래된 이야기지만 한 방송사의 연말 특집 프로그램 제작을 위해 7년에 걸쳐 매년 한 차례씩 독거노인들의 소외된 삶을 들여다볼 기회가 있었다.
전국 읍면 단위에 있는 각 지역 관공서의 사회복지과와 노인복지시설에 일일이 자료를 요청해서 시청자들에게 소개할 주인공들을 추천받고 다시 현장 방문을 통해 비로소 촬영에 들어가는 프로그램이었다. 그러다보니 방송에 소개되는 사람은 7~8명이어도 실제 만나서 사연을 들어보는 노인들은 전국에 걸쳐 연간 십오륙명을 족히 넘어서니 그때 만나 본 100여명의 노인들을 통해 사회 저변에 깔린‘효’에 대한 세대간의 입장을 자연스레 알게 되었다.
그 중 한 분인 영희 할머니의 경우가 아마도 현대를 살아가는 부모님의 마음과 자식들의 일반적인 의식을 반영하고 있지 않나 싶어 잠시 소개해본다.
일흔한 살의 영희 할머니는 독거노인으로 심각한 천식과 심장병을 앓고 있었다. 우리를 안내한 군청 사회복지과 직원의 말로는 본 적 없는 아들이 호적에 보호자로 올라 있어 그나마 정부에서 주는 절대생계비조차 받을 수 없는 처지라고 했다. 할머니의 안타까운 사정을 아는 동네사람들이 돌아가며 남은 반찬거리를 갖다주고 가을이면 들에 떨어진 나락을 주워모아 근근이 나홀로 생계를 유지하신다고 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 할머니는 심한 기침을 참아가며 하루 3천원 정도 번다는 고추 다듬는 잔업을 돕고 계셨다. 150센티가 조금 넘을까, 작은 키에 한없이 가녀린 몸을 가진 할머니는 찬바람이 도는 늦가을 무렵임에도 이렇다 할 겉옷조차 입지 않고 낡은 가디건 차림으로 잔뜩 움츠린 채 작업장 한구석에서 힘겨운 일손을 놀리고 계셨다.
“ 할머니, 아들 보고 싶다고 하셨죠? 방송국에서 할머니 아들 찾아준대요.”
자식에게 버림받은 할머니의 모습과 아픈 마음을 취재하고 싶다는 우리들의 부탁이 있어 이를 돕고자 군청 아가씨는 일부러 아들 얘기를 꺼내며 아는 척을 했다.
그 전까지 묻는 말에 조금씩 대답을 하던 할머니는 아들 얘기가 나오자 순간 안색을 바꾸며 입을 다무셨다.
“ 할머니, 아들이 가끔 오긴 오나보죠?” “(묵묵)....”“ 아이구 할머니, 아들 얘기 나오니까 맘이 안 좋나보네. 방송에 나오니까 아들보고 얼른 오라고 하세요.” 또“(묵묵)....”그러기를 몇 차례. 할머니는 몇 번을 주억거리시더니 지나가듯 작은 소리로“아들 없어요”한마디 하고는 천장을 향해 눈을 꼭 감으셨다. 이어 할머니의 눈에서는 외줄기 눈물이 흘렀고 꼭 다문 입술은 경련이 일듯 가늘게 떨리기 시작했다.
카메라는 숨가쁘게 돌아가고 제작진 모두 긴장하며 철저하게 버려진 할머니의 고독을 그대로 앵글에 담아갔다. 방 안에 감도는 침묵이 할머니의 살아온 인생 사연을 대신하는 듯했다. 한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최고의 절망감과 고독감 그리고 배신감. 할머니의 감춰진 울음이 날이 선 목줄기를 타고 한 움큼씩 내려가고 있었다.
도망간 아내를 찾아온다며 며느리에 이어 집을 나간 아들은 그 길로 남이 되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아들은 서울에서 노동 일을 하며 근근이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했다. 처음에는 아내를 찾아서 서울을 헤맸고 이어 어머니에게 민망하여 고향길을 접었고 이제는 제 앞가림도 힘든 서울살이에 치이다보니 어머니를 마음에 묻을 수밖에 없는 듯했다.
할머니는 긴 한숨으로 아들 얘기를 마무리짓더니 일어나 낡은 옷장 문을 여셨다. 할머니가 장롱 깊숙한 곳에서 꺼내든 것은 베옷 한 벌.
“죽을 때 입고 갈려고 미리 만들어 놨지요.”
죽음조차 이웃에게 의지하면 사정을 아는 동네사람들이 행여 아들의 무심함을 탓할까 싶어 푼돈을 모아 사들인 수의는 국내서도 최고로 치는 안동포였다. 곱고 화려하게 죽음을 준비하는 할머니의 마음은 오직 하나, 돌아올 아들에게 민망함을 덜어주고 불효의 죄조차 대신 지고픈 어머니의 마음이었다.
“내가 제대로 가르치질 못해서 그렇지. 애는 착해요.”
묻지도 않았음에도 할머니는 엎은 물을 주워담는 심정으로 아들이 착하다는 말을 되뇌이셨다. 못난 자식조차 모든 게 내 탓인 어머니. 영희 할머니의 텅 빈 눈망울과 작은 어깨가 아직도 눈에 선하다.
해마다 찾아오는 어버이날. 영희 할머니와 같은 극단적인 가족사를 갖지는 않았어도 자식 된 자의 마음은 한가지로 부모님 앞에만 서면 왠지 모를 민망함이 우울을 낳는다. 중년을 맞고 사회에서도 제법 생색나는 제자리를 잡고 있지만 아직도 입버릇처럼 나오는 말은 사느라고 바쁘다는 핑계뿐, 부모 앞에 자식으로 서 있는 모습은 그리 달라지질 않았다. 어버이날과 어린이날, 그리고 스승의 날까지 온통 감사와 축하로 이어지는 신록의 계절 앞에 남 모를 부끄러움을 느끼며 초파일 부처님 전에 참회의 연등을 밝혀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