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줄기를 타고 온 물줄기가 봄기운을 타고 마음 가자는 데로 흘러가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다. 어디 세상이 마음만 같은가. 마침 울고 싶었는데 돌부리가 넘어뜨려주니 다행이라 여기고, 주저앉은 김에 울다가 개울가의 꽃 한번 보다 한다. 기분이 한결 나아진다.
서러이 울고 있는데, 아무도 우는 이유는 알려고 하지 않고 울지 말라고 윽박지르기만 하니 더 서러워져 울음이 북받친다. 그때 정범 스님은 말씀하신다.
“응병여약應病與藥이라 했어요. 부처님은 환자에 맞는 약을 주셨어요. 그런데 과연 우리는 그렇게 하고 있는가. 과연 제대로 중생들의 병명이나 알고 처방하려 하는가. 원인도 모르고 치료한다고 하진 않는가. 배 아픈 환자한테 머리 아픈 약을 주고 있지는 않은가?”
2006년 정범 스님은 14대 종회 의원이 되면서‘응병여약’의 마음으로 자신의 자리에 서고자 했다. 명예를 위한 의사가 아닌, 자기 이익을 위한 변호사가 아닌, 자기 금고를 채우기 위한 사업가가 아닌,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서 있고자 하는 마음. 스님은 최근 자신의 의정 활동 보고서를 만들었다. 스님은 2006년 종회 의원 출마 당시 선거공약을 담은 리플릿을 만들었다. 출마자 중에 가장 젊었던 스님은 새로운 시도를 하고 싶었다. 그때의 마음을 스스로 점검하고 사부대중에게 한 공약을 조금이라도 지키고자 하는 마음으로, 그러한 활동을 보고하기 위해 만들게 된 것이‘정범활동 보고서’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종단 입법 활동을 통한 포살 및 결계법 개정이나 신도법을 개정하게 된 것과, 군 포교에 있어서 국가의 군종장교 배정의 문제점과 현황 그리고 대응방안까지 담겨 있다. 또한 국내 신자 수 파악이 잘못되어 수십 년간 특정 종교에 편향된 정책을 펼쳤음을 사부대중에게 알렸다. 그리고 예전에 미국에서부터 활동해 왔던 한국불교 국제네트워크의 소식지 붓다링크를 통한 한국불교의 세계화에 대한 이야기까지도 다루고 있다.
스님은 현재 서울 세검정의 옥천암에서 주지 소임을 맡고 있기도 하다. 뒤에는 산이 있고 앞에는 개울이 흐르고 시내에서 가까우니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조건을 갖췄다고 스님은 말한다.
“부처님께서 제자들에게 전도 선언하시며, 법을 전하러 떠나라고 독려하셨죠. 그것이 나에게 채찍질이 됩니다. 그러니 한시도 지체하거나 머뭇거릴 수 없지 않겠나 하는 마음이 내 안에 자리 잡고 있죠.”
부처님은 깨달음을 얻은 붓다가야에서 250km나 떨어진 녹야원까지 밤낮 걸어가, 자신을 버리고 떠난 제자들에게 법을 전하셨다. 깨달음을 얻은 부처님도 그런 노고를 아끼지 않았는데 어찌 머물러 있을 것인가.
“이런 좋은 시대적 환경을 갖추고 있으면서 부처님보다 복덕도 부족한 우리가 이런저런 핑계로 수행을 어찌 안 할 것이며 포교를 게을리 하겠습니까. 이런 생각을 하다보면 내가 뭘 해야 할지 조금은 보입니다. 업장소멸하려고 이렇게 삽니다.”
스님은 현재 조계종단의 포교에 있어, 선택과 집중이 참으로 필요한 때라고 생각한다. 개개인으로 봤을 때는 기본적으로 수행력이 뒷받침되고 경전에 대한 충분한 이해, 사회적 지식, 법을 전달할 수 있는 자질 등이 필요하겠지만 불교 전체로 봤을 때는 정확한 통계를 통해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에 집중해서 포교를 해나갈지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이 뛰어나다고 해서 너무 앞서나가는 것도 부족한 부분을 방치하고 있는 것도 맞지 않는 것이죠. 부처님 가르침대로 중도, 곧 정도여야 합니다. 바른길과 바른 가르침, 그것은 현명한 상황 판단, 즉 이 시대적으로 이야기하자면 통계 자료를 분석하고 끊임없이 데이터로 활용할 수 있는 과정 속에서, 그런 정확한 근거를 바탕으로 선택하고 집중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만 나만이 아닌 승단의 다른 일원이, 우리 사찰만이 아닌 모든 사찰이 한 흐름 안에서 대중 속으로 막힘없이 흘러갈 수 있다는 말씀이다.
스님은 절집 안의 세부적인 문제점과 해결방안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생각한다. 출가 수행승에 대한 고민이 부족하지는 않은지 묻는다. 스님이 될 종자를 계획과 의지력을 가지고 선발, 육성하고 있는가 묻는다. 과연 사찰이 너무 산속에만 몰려 있는 것은 아닌지 고민한다.
“열심히 안 살고 있는 스님이 어디 있겠어요. 그런데 또 그런 스님들이 때로는 지치고 병든단 말입니다. 그걸 승단에서 제대로 책임져주고 있나요. 우리 스스로가 아쉬운 부분들이 생겼으니 승가 공동체로서 필요한 것들을 함께 마련해 나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자본 위주의 사적인 활동을 타파해야 한다는 말씀이다. 계율만 봐도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걸 알 만하지 않은가, 그것이 바로 부처님의 가르침이 아니겠는가 하는 말씀이다.
봄이 완연하다. 꽃이 만발한 절 마당에 스님이 나와 앉았다. 처마에 닿을 법한 큰 체구의 스님이 가녀린 꽃 옆에 앉아 웃으니 절 마당이 유쾌해진다. 그런 스님의 모습은 더도 덜도 않고 그저 법당 앞에 본래 있었던 것만 같아 내 눈 속에서 무게가 없다.
스님은 열네 살이 되면서부터 수덕사에서 스님들 품안에서 자랐다고 한다. 사찰 안의 전통적인 선수행과 사교 입선의 정신이 강했던 시절, 스님은 수덕사에서 처음으로 세속의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다녔단다.
“나는 혜택을 받은 사람 중의 한 명입니다. 비록 어려운 일은 많았지만 부처님 법을 못 만나고 어른 스님들을 못 만났으면 지금의 내가 있었겠습니까. 어느 것 하나도 나 혼자서 이룬 것은 없어요. 주변의 도움으로 살아왔지요. 인과 연에 의해 이루어졌으니 소중하지 않은 게 없어요.”
동국대학교에 들어가면서 출가했다. 그러나 스님의 전공은 경찰행정학, 복수전공으로 불교대학 선학과를 다녔다. 스님들이 다른 공부를 하는 것이 금기시 됐던 시절, 부처님 가르침은 평생 공부할 수 있을 것 같아 선택한 것이었으나 젊었을 때 부처님 가르침을 더 많이 배웠더라면 하는 생각이 없지는 않다. 그래서 불교대학원 불교사학과 석사 과정, 대학원 불교학과 석사 과정을 수료했다.
스님은 경찰행정학이야말로 학문적으로 공부하는 것에 의의가 있었다고는 하나, 현재 종회의원으로서 입법기관에 몸을 담고 있어 실질적인 도움이 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스님은 종단과 세속법 사이의 이해해야 할 부분과 해결해야 하는 부분들, 즉 현재 대한민국 법령이나 행정 체계와 불교 전통이 부딪치는 부분들을 어떻게 해결해 나갈 것인가 고민한다. 누군가는 역할을 분명히 해줘야 할 부분이고, 정범 스님의 활동 중 남달랐던 공부가 빛을 발하는 대목이다.
스님은 대학원 졸업 후 육군 군승으로서 군 포교에 힘썼다. 그래서 현재도 군 포교에 대한 문제점과 방안에 대한 고민이 많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조계종의 군종 장교는 결혼이 허용돼 왔다. 중앙종회는 최근 이 조항을 폐지했다. 스님은 이에 대해, 결혼 가능성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없어지면서 군법사 지원도 늘어날 것이라고 말한다.
스님은 군법사 보따리를 풀자마자 미국 뉴욕으로 떠났다. 어려서부터 수덕사에 살면서 외국인들이 한국불교에 관심이 많은 것을 보았던 터라 외국에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강했다. 그러면서 한국불교 국제네트워크에 대한 관심은 지금까지 연결되고 있다.
“어려서부터 수행하는 스님들을 많이 봐서 그런지 그런 수행하시는 분들을 돕고 외호하는 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이고 나에게 맞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내가 혜택을 많이 받았으니 언젠가는 이것을 갚아야겠다는 생각도 있는 것이겠고, 우선은 기본적으로 그런 소중한 수행 승가를 보호해야겠다는 마음이 있어요.”
누구든 해야 할 일이다. 스님은 역량이 되는 만큼 수행 정진하는 스님들과 재가불자들을 보호하고 지키고 싶은 마음이다.
“지금 그렇게 살고 있느냐고 물으면 할 말이 없어요. 하지만 얼마나 대중에 대해 애정을 갖고 사느냐 하는 내 스스로의 질문은 매 순간마다 나를 마치 시험대에 올려놓는 것 같아요. 그러니 수행이 더 필요하고 공부가 덜 됐구나 싶어요.”
요즘은 누구나 할 것 없이 참으로 힘든 살림살이다. 바닥을 치고도 더 뭐가 남았는지 고개는 자꾸만 더 밑으로 떨구어진다. 먹고살기 힘든 이들이 넘쳐나니 이 일을 어쩌면 좋겠느냐 여쭈니 스님은 언제는 안 힘들었냐 하신다.
“주어진 상황과 현실을 어떻게 바라보느냐 하는 시각의 문제입니다. 내 눈앞의 것을 어떻게 바로 볼 것인가.
정견正見, 정사正思, 정언正言이라고 했어요. 바로 봐야 바로 생각하고 바르게 말할 것 아닌가요. 그러니 바르게 보는 것부터가 중요하지 않겠어요? 매 순간 일어나고 있는 인연들을 바로 보고 어떻게 소중히 가져갈 것인가 생각한다면 중생의 어려운 테두리는 조금쯤 벗어나지 않겠어요? 현재 내 삶에 얼마나 만족하고 살 것인가, 이게 수행의 핵심이자 출발점 아니겠습니까.”
그러고 보니 언제는 겨울이 없었나. 겨울 갔으니 봄도 오지 않았나. 봄 온 줄도 모르고 얼음장에 갇혀 벌벌 떨고만 있는 것은 아닌가, 거울을 본다. 눈가가 시퍼렇다. 고개를 들고 세상을 보자니 어디 내 마음 같은 것도 없고 그렇다고해서 내 마음 같지 아니한 것도 없다. 스님은 내 뒤꼭지에 대고 말씀하신다.
“번뇌 즉 보리라고 했어요. 젊었을 때 고민하는 것은 내가 바르게 가기 위해서 바르게 살기 위해서 주어지는 과정이구나라고 생각하면 돈을 들여서라도 해야지요. 자기 자신을 해치지 않는 한.”
옥천암 암석에 앉아 계신 관세음보살님이 내 마음의 소리를 들으셨는지 돌 계단을 내려오는 나를 가만히 바라보신다. 오늘밤엔 우리의 마음 소리가 귀로 돌아오니 의문은 답이 되고 번뇌는 보리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