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들이 그토록 오랫동안 야당 리더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조직원들에게 항상 몫을 챙겨줬기 때문이다. 그 당시 야당 국회의원들은 여당 국회의원보다 훨씬 더 힘이 있었고 몫도 많았다. 야당 의원도 몫이 있고, 여당 의원도 몫이 있고, 선한 사람도 몫이 있고, 악한 사람도 몫이 있다. 그러니까 이 세상이 굴러가고 있는 것이다.
조직원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몫을 주는 일이다. 개를 훈련시키는 사람은 개가 말을 잘들을 때마다 먹이를 준다. 돌고래 조련사도 돌고래가 묘기를 부릴 때마다 모이를 준다. 옛날 김영삼, 김대중 전前 대통령은 오랫동안 야당의 리더로 일을 해 왔다. 그들이 그토록 오랫동안 야당 리더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조직원들에게 항상 몫을 챙겨줬기 때문이다. 그 당시 야당 국회의원들은 여당 국회의원보다 훨씬 더 힘이 있었고 몫도 많았다. 야당 의원도 몫이 있고, 여당 의원도 몫이 있고, 선한 사람도 몫이 있고, 악한 사람도 몫이 있다. 그러니까 이 세상이 굴러가고 있는 것이다.
인격적으로 별로인 사람이 아주 잘사는 사람도 있다. 또 예절이나 지식도 없고 외모마저 볼품이 없는데 잘사는 사람도 있다. 질투심 많고 중상모략 잘하고, 돈이 있는데도 쓰지 않는 노랭이여서 아무도 그와 함께 친구가 되지 않을 듯한데 그들에게도 함께 어울리는 사람이 있다. 어느 농촌에 사는 사람들이 산업화의 영향으로 도시가 팽창되면서 지가가 올라 졸지에 부자가 된 사람도 있다. 물론 재수가 좋아서 그런 일들이 일어났겠지만, 달리 생각해 보면 조상대대로 그들의 전답을 지켜왔기 때문에, 어느 시기에 그들의 몫을 받은 것이라 생각해 볼 수 있다.
심청전을 읽어보면 심봉사가 눈을 뜨기 위해 공양미 삼백석을 시주 했다. 그 결과 심봉사는 눈을 뜰 수 있었다. 공양미 삼백석을 바친 몫을 받은 것이다. 이것은 소설이지만 진실이다.
합천 해인사에 유명한 일타 스님이 계셨다. 그는 연비燃臂(계행을 지킬 것을 소원하는 의식)의 한 방법으로 손가락을 태우는 소지공양燒指供養(자신의 몸을 바쳐 부처의 뜻을 따를 것을 다짐하는 것으로 손가락을 태우는 의식)을 할 정도로 불도에 정진하여 높은 도의 경지에 오르신 분이다. 그분은 네 개의 손가락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엄지와 손바닥만으로 붓글씨를 잘 썼는데, 불교를 믿는 독실한 신자들은 그의 글씨를 원하지만 아무나 쉽게 글을 받을 수는 없었다. 글을 받고 싶어 했던 한 불자는 승방의 벽지를 새로 발라주고 멀쩡한 다기를 새로 바꾸어주는 등 수선을 부렸다.
일타 스님은 그의 간사한 마음을 꿰뚫어보고 있었다. 어느 날 아침, 그 신자는 시내의 유력한 친구들 몇 명을 데리고 함께 스님을 친견하고 절을 했다. 그러고 나서 친필을 받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일타 스님은 큰 종이에 글을 써 대작을 그에게 줬을 뿐 아니라 그와 함께 온 신출내기 불도들에게도 소품을 하나씩 써줬다. 평소“남에게 동냥은 못 줘도 쪽박은 깨지말라”며 늘 남을 도와주셨던 일타스님의 이야기는 무엇을 말해주는가? 일타 큰스님은 좋은 사람이든 나쁜 사람이든 중생衆生이 노력하면 노력한 만큼 몫을 준다는 뜻이었다.
필자는 여러 봉사단체의 장을 맡고 있는데 봉사단체에서는 정치처럼 정권을 창출하거나 기업처럼 이윤을 창출할 수 없다. 그래서 봉사단체의 장은 조직원들에게 권력을 줄 수도 없고 돈을 줄 수도 없다. 그러면 봉사단체의 장은 조직원들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까? 봉사 단체의 장이 조직원들에게 줄 수 있는 것은 일과 칭찬밖에 없다.
일은 직책과 실무가 될 수 있고 칭찬은 감사의 말과 상이 될 수 있다. 부처님이 우리들에게 몫을 주었듯이 우리 역시 그들에게 걸맞은 몫을 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