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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초의 비유-약초유품 제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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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화경이야기 - 이원섭 1990년 11월 105호
․한 구름의 비
돌이켜보건대 방편품을 듣고도 이해하지 못하던 중근(中根)의 재자들이, 화택(火宅)의 비유를 듣고는 개권현실의 도리에 눈이 떠서 자기들의 이해한 바를 다시 비유를 통해 부처님께 고백한 것이 신해품(信解品)의 궁자유(窮子喩)였다. 그렇다면 이에 대한 부처님의 반응은 어떠하셨던가.
ꡒ좋고 좋도다. 가섭이 여래의 참된 공덕 이에 잘 설했나니, 참으로 그 말대로니라. 그러나 여래에는 다시 무량무변 아승지수(阿僧祗數)의 공덕 있으니, 무량억겁 설한대로 다하지는 못하리라.ꡓ
이렇게 서두를 꺼내시고 나서, 다시 다음같이 비유를 설하셨다.
ꡒ가섭아, 비유컨대 삼천대천세계 속의 산천․계곡․토지에 난 초목과 숲과 여러 약초 그 종류 약간에다 이름 각기 다르다해도, 짙은 구름 가득히 펴 삼천대천세계 덮어, 일시에 한가지로 비 퍼부어서 그 적심이 두루 미치고 보면, 초목과 숲과 여러 약초의 작은 뿌리․작은 줄기․작은 가지․작은 잎과, 중간 뿌리․중간 줄기․중간 가지․중간 잎과 큰 뿌리․큰 줄기에 큰 가지․큰 잎들과, 크고 작은 여러 나무 상(上)․중(中)․하{下) 등급 따라 제가끔 이를 받아, 한 구름의 비 그 종자에 각기 맞아 생장(生長)해 꽃이 피고 열매 여나니, 한 땅에 나며 한비의 적시움을 받는다 해도 여러 초목이 각각 차별 있느니라.ꡓ
이것이 약초의 비유인데, 문장만으로 따진대도 저 ꡐ장자ꡑ의 소요유편(逍遙遊篇)이나 추수편(秋水篇)에 비견할 격조 높은 명문이다. 그러면 이 비유에 담긴 뜻은 무엇이었던가.
첫째로 ꡐ삼천대천세계의 산천․계곡․토지ꡑ라는 말씀에서는, 삼천대천세계란 중생세간(衆生世間)의 비유요, 산천․계곡․토지란 오음세간(五陰世間)을 뜻한다는 것이 천태대사의 해석이다. 세계라 해도 결국은 산천․계곡․토지에 의해 이루어지듯, 중생 또한 오음(오온)으로 구성된 것 뿐이므로 당연한 견해다. 그리고 산천․계곡은 색(色)․수(受)․상(想)․행(行)의 사음(四陰)이요 토지는 식음(識陰)이라 했는 바 식음이 사음을 사음이게 하는 것처럼 토지가 산천․계곡을 산천․계곡이게 하는 터이니까 이것에도 공통점이 있다고 할 것이다.
이밖에 산천․계곡을 오승(五乘)의 뜻으로 보려는 해석도 있었던 모양이다. 곧 물을 받아들이는 분량을 기준해서, 골짜기〔谷〕는 물을 많이 받아들이는 점에서 보살의 비유요, 시내〔溪〕는 벽지불(연각)의 비유요. 내〔川〕는 성문의 비유인데 비해, 산은 물을 용납함이 가장 적은 점에서 인승(人乘)․천승(天乘)에 해당한다 함이 그것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되면 다음의 초목의 비유와 중복될 뿐 아니라, 오승과 연결시키면서도 산천․계곡에는 비의 적시움을 받아 성장하고 열매맺는 구실이 없는 터이므로 타당한 해석이라고는 할 수 없는 점이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둘째로 여러 종류의 ꡐ초목과 숲과 약초ꡑ는 요컨대 여러 초목을 이른 말이어서 온갖 중생의 비유니, 이것은 비의 적시움을 논한 부분에도 나오는 터이므로 설명을 뒤로 미루겠다. 다만 언급해 두고 싶은 것은 ꡐ약초ꡑ의 뜻인데, 이와 관련해서는 선종에 이 같은 이야기가 전한다. 어느날 문수보살이 ꡒ약초 아닌 풀을 뜯어오라ꡓ하니 선재동자는 ꡒ약초 아닌 풀은
없습니다ꡓ했고 ꡒ그렇다면 약초를 뜯어 오라ꡓ하자 선재동자는 길에 떨어져 있는 풀 하나를 주어 바치는지라, 이에 문수보살은 ꡒ이 약초는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사람을 살리기도 한다ꡓ고 말했다 함이 그것이다. 곧 어떤 풀도 쓰는 사람의 역량 여하에 따라 약도 되고 독도 되는 것이매, ꡐ약초ꡑ라 했다 해서 일반적인 풀과 다른것으로 여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셋째로 검토해야 할 것은 ꡐ짙은 구름 가득히 펴 삼천대천세계 덮어ꡑ라고 표현 된 구름의 성질이다. 구름은 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때로 문득 나타나니, 모습을 드러냄은 때로 부처님이 출현하심과 같다. 또 구름에는 뒤덮는 덕이 있으니, ꡐ가득히 펴 삼천대천세계를 뒤덮는다ꡑ함은 일체중생을 뒤덮는 부처님의 자비가 그것이리라. 그리고 구름에서는 뇌성이 울리게 마련인데, 뇌성은 곧 부처님이 설하시는 언변이라 할 수 있다.
이리하여 넷째 부분인 ꡐ일시에 한가지로 비 퍼부어서ꡑ에 오면, 급기야 부처님이 사무애변(四無礙辯)의로 설법하심을 나타내니, 그것은 오시(五時) 따위의 순서를 따라 행해짐이 아니라 일시에 평등히 설해진다고 한 데에 그 특징이 있다. 곧 부처님이 설하심은 오직 일불승 뿐인 것이 되는데, 그렇다면 어째서 현실적으로는 여러 가르침의 차별이 있게 되는 것인가.
이리하여 다섯째인 비의 적시움로 문제가 넘어가게 되는 바, 대(大)․중(中)․소(小)의 초목이 자기의 크기에 알맞게 비를 받아들이듯 중생 또한 그러하다 함이 그 취지가 될 것이나, 이 크고 작은 초목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이르며, 또 그 뿌리니 줄기니 하는 따위는 무슨 뜻인가. 이 대소의 초목을 게송에 나타난 글로 보충해 정리하면 풀에는 소․중․상이 있고, 나무에는 소와 대가 있음이 되어 이를 삼초이목(三草二木)이라 한다. 그리하여 이를 둘러싸고 여러 주장이 난립한 바 있으나, 소초(小草)․중초(中草)․상초(上草)는 인승(人乘)․천승(天乘) ․성문송(聲聞乘)의 비유, 소수(小樹)는 연각승(緣覺乘)을 이르고 대수(大樹)는 보살승을 가리킨다 함이 천태대사의 해석이다. 그리고 이같은 초목들의 뿌리니 가지니 한 것에 대해서는, 뿌리는 신심을 나타내고, 줄기는 계율을 나타내며 가지는 선정, 잎은 지혜의 표시라는 견해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초목에 여러 차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가끔 성장해 열매를 맺는다는 마지막 부분에 오면, 그것이 현실(顯實)의 뜻임을 의심할 이는 없을 것이다.

․부처님의 지혜와 중생의 지혜
이상의 약초의 비유는, 부처님은 평등히 일승을 설하셔도 중생의 근기 탓에 차별적 가르침이 생긴다는 것이요, 그러기에 그같은 부처님의 참뜻을 이해만 한다면 누구나 그 자리에서 일승의 진리로 들어갈 수 있다는 말이 될 것이다. 따라서 결국은 개권현실의 취지라 하겠는데, 그렇다면 ꡐ가섭이 여래의 참된 공덕을 잘 설했다ꡑ고 일단 그 이해를 인가하시고 나서, 어찌해 ꡐ여래에는 다시 무량한 공덕이 있으니, 무량억겁 설한다해도 다하지는 못하리라ꡑ고 하셨느냐는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 부처님이 여기서 설하신 것은 분명히 개권현실의 도리이다. 그런데도 그것이 가섭의 그것과 천지의 차이가 생긴 것은 무슨 때문인가. 그것은 개권현실인 점은 같아도 내용의 깊이에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곧 가섭이 그것을 도리로서 이해한데 지나지 않았다면 부처님은 구경(究竟)의 진실을 완성하고 계셨던 것이니, 도리를 아는 것과 그것을 완성하고 있는 경지 사이에 현격한 거리가 있을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이것이 이승(二乘) 내지 보살의 지혜와 부처님 지혜의 차이니, 석가여래 이래 한 명도 성불한 이가 없었음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탈락된 세 가지 비유
끝으로 범어 원본에는 들어 있는데도 번역의 과정에서 무슨 까닭인지 제외돼 버린 세 가지 비유를 소개하겠다.
첫째는 일월(日月)의 비유니, 해와 달이 선악 따위 모든 중생을 공평히 비추듯 모든 중생을 평등히 교화하시지만, 중생의 근기 탓에 삼승의 차별이 생긴다는 것이다.
둘째는 도공(陶工)의 비유니, 여러 가지 그릇이 동일한 진흙으로 빚어졌듯, 가르침은 오직 일불승이 있을 뿐이라는 취지다.
그리고 셋째의 맹인(盲人)의 비유는 다음과 같다. 타고난 소경이 있어 여러 형상의 것이 존재함을 부정하여 남이 그런 것이 있다고 말해 주어도 믿지 않다가, 어떤 의사가 치료해 주자 시력을 회복하고는 비로소 만물을 보게 되어 이번에는 자기를 ꡐ완전히 보는 자ꡑ라고 주장했다. 이때 오신통(五神通)을 얻고 있는 선인이 나타나, ꡒ당신은 집안에 앉아 있을 때면 밖에 있는 사물을 못보며, 또 남이 당신에 대해 애정을 지니고 있는지 증오하고 있는지도 알아내지 못하지 않는가ꡓ 하고 일러 주니, 그제서야 선인에게 물어 그 가르침대로, 산중에 들어가 욕망을 억제하고 선정을 닦은 끝에 오신통을 얻어 보다 진실한 세계를 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약초의 비유가 더없이 정채(精彩)를 발하매 이 세 가지는 군더더기처럼 느껴져 빼버렸는지도 모르긴 하나, 어떤 사람이 무슨 말씀을 듣고 눈을 뜨게 될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므로, 잘한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