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탑 중에는 그 주인이 뒤바뀐 경우도 있다. 바로 실상사의 증각대사證覺大師 홍척洪陟의 승홍척과 수철
홍척은 증각대사 혹은 남악조사南岳祖師이라고도 한다. 헌덕왕 때 당나라에 가서 서당 지장西堂智藏의 심법心法을 배웠다. 도의선사와 스승이 같다. 826년(흥덕왕 1)에 귀국하여 남악南岳 즉 지리산에 머무르면서 불법을 폈다. 828년 실상사實相寺를 창건하였으며, 후에 흥덕왕과 선강태자宣康太子를 귀의시켰다.
지장의 선풍禪風을 크게 일으켜 선종禪宗 구산문九山門의 하나인 실상산파實相山派를 열었는데, 이것이 구산선문의 시초에 해당한다. 그래서 도의선사와 더불어 북산의·남악척北山義南岳陟 즉 설악산의 도의, 지리산의 홍척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입적한 해는 분명하지 않은데, 860년 이후로 생각된다.
한편 수철화상(817~893)은 원래의 법명은 알려져 있지 않다. 수철은 돌아가신 다음에 신라 조정에 내린 시호다. 스님은 원래 신라 진골眞骨 출신이었으나, 어려서 고아가 되어 연허율사緣虛律師에게 출가하였고, 여러 스님 밑에서 경전을 배우다가 마침내 남원의 실상사에 이르러 홍척스님을 만나 그 제자가 되었다.
이후 지리산의 지실사知實寺, 심원사深源寺 등에서 주석하였고, 한편 도성에 들어가 경문왕에게 선종과 교종의 차이를 분명히 밝히기도 하였다. 돌아가시기에 앞서 문도들에게 이르기를,“내가 이제 죽으려고 한다. 나는 떠나가고자 하니 너희들은 힘써 불법의 뜰에서 노닐도록 하라. 바람이 미친 듯 불고 비가 세차게 내려도, 뜬 구름은 모였다가 흩어진다. 밝은 달이 서쪽에서 동쪽으로가는 것을 알라死將至矣 吾欲行焉 諸子勉旃宜游佛庭 其○風狂雨○ 浮雲坐聚散 須知朗月行西
東.”고 하였다.
응료탑과 능가보월탑
두 승탑의 이름은 결코 쉽지 않다. 우선 응료탑부터 보도록 하자. 응凝은 얼다, 엉기다, 집중하다, 이루다는 등의 뜻을 가지고 있으며, 응연凝然은 변함없다, 동요없다, 고요하다는 뜻으로 쓰인다. 한편 요寥는 쓸쓸하다, 적막寂寞하다, 휑하다, 텅 비다, 공허空虛하다, 넓다, 광활廣闊하다는 등의 뜻을 가지고있다.
그 쓰임을 보면 “열반이라는 도는 적료하고 허광하다涅槃之爲道也 寂寥虛廣.”라거나, 적료寂廖, 요확寥廓 등으로 흔히 쓴다. 그래서 응료凝寥는 변함없이 텅빈 상태, 흔들림 없이 고요함 곧 열반적정涅槃寂靜을 뜻하는 것으로 볼 수 있겠다,
그러면 수철화상의 능가보월탑이라는 어떤 뜻일까? 능가란 말은 능가경楞伽經에서 온 것이다. 능가경은 반야, 법화, 화엄, 열반, 승만, 해심밀경 등 여러 경전의 사상을 종합적으로 정리한 경전으로, 선종의 시조라고 할 수 있는 달마가 2조인 혜가에게 전하였다고 전한다. 금강경, 원각경 등과 함께 선종에서 중시하는 경전이다.
이 경전에서는 특히 선을 4가지로 나누어, 어리석은 범부가 행하는 선, 뜻을 관찰하는 선, 진여를 생각하는 선, 여래가 행하는 선이 있다고 하였다. 초기의 중국 선종은 능가경을 소의경전所衣經典으로 삼았으므로, 이를 능가종이라고도 불렀다. 선종과 연관된 말이다.
보배로운 달
한편 보월寶月이라는 말은 직접적으로는‘보배로운 달’이라는 뜻이며, 보월여래寶月如來, 보월보살寶月菩薩과 같이 여래나 보살과 관련되어 쓰이기도 한다. 특히 보월여래에 관한 이야기는 흥미롭다. 아주 먼 옛날중향세계衆香世界의 무구정광여래無垢淨光如來라는 부처님이 계시던 때 용시勇施라는 비구가 있었는데, 인물이 빼어난 그를 어떤 여자가 사모하여 상사병에 걸렸다고 한다.
그 여자는 점점 병이 깊어져서 병석에 누워있었는데, 마침 그 집에 탁발을 온 용시비구에게 설법을 청하였다. 그 후 용시가 자주 그 여자의 집에 드나들면서 여자의 병이 차츰 낫게 되었고, 결국 용시는 그 여자와 음행을 저질렀다. 또한 그 여자의 남편을 죽이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를 크게 후회한 용시는 비국다라보살毗國多羅菩薩을 찾아가 일심으로 참회를 구하였다.
그러자 보살은 “걱정하지말라, 내가 너를 위하여 두려움 없음을 베풀리라.”고 하고, 용시를 법인삼매에 들게 하여 한량없는 부처님의 모습을 보였다. 이때“모든 현상은 거울에 비친 모양과 같고, 물 속에 비친 달과 같다. 그런데도 범부들은 어리석게도 마음에 미혹되어 어리석음과 성냄, 그리고 사랑함을 분별한다.”는 부처님의 법문을 듣고 마침내 무생법인無生法忍을 깨쳤다고 한다.
용시비구가 깨달음을 얻어 보월여래가 된 것이다. 무생이란 삶과 죽음에 얽매이지 않는 것, 생기生起하거나 변화하지 않는 상태, 즉 깨달음을 말한다. 이처럼 보월寶月은 여러 가지로 깨달음의 경지와 연관되어 있는 말이다. 그래서 능가보월이라는 말은 “선을 통하여 깨달음을 얻었다”는 뜻이라고 하겠다.
승탑의 선후
이제 승탑의 선후를 살펴볼 차례다. 현재 수철화상의 승탑으로 지정되어 있는 탑이 사실은 증각대사의 승탑이다. 무엇을 근거로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증각대사의 응료탑은 당연히 수철화상의 능가보월탑보다 먼저세워졌을 것이고, 두 승탑이 갖는 특징을 다른 승탑과 비교해 보면 그 근거가 드러난다.
참고할 수 있는 승탑은 844년 경에 만들어진염거화상의 승탑과 861년에 만들어진 적인선사 혜철의 승탑이 있다. 세부의 명칭으로 이야기하자면, 승탑의 대석臺石 즉 건물의 기초에 해당하는 부분이 3단계로 나눠진다. 아래로부터 하대석, 중대석, 상대석이라고 한다. 그리고 각각의 단계사이에는 연결부가 있다.
그 연결부를 ‘받침’이라고 한다. 하대석 위에는 중대석을 받는 중대석받침이 있고, 중대석에서 상대석으로 넘어가는 단계에도 상대석받침이 있고, 다시 상대석 위에는 탑신을 받는 탑신받침 혹은 탑신괴임이 있다. 이 받침 부분을 위로 포함시켜야 할지, 아래로 포함시켜야 할지 다소 모호하지만, 탑신받침은 탑신이 아니라고 본다면, 받침은 아래쪽으로 포함시켜서, 중대석받침은 하대석의 일부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대석과 받침 즉 연결 부위에 주의하면서 염거화상의 승탑을 다시 한 번 살펴보면, 하대석과 중대석받침 부분이 그다지 크지 않고 특히 중대석받침은 얕은 3단의 계단모양을 하고 있다. 그 위에 중대석이 있는데 안상眼象을 조각하였고 높이는 하대석의 절반을 조금 넘는다. 다시 얕은 3단의 받침을 거쳐 상대석으로 이어지는데, 상대석은 연꽃을 화려하게 조각하였다. 그 위로 역시 안상을 조각한 탑신받침을 별석으로 올렸고, 탑신부를 올렸다. 전체적인 비례를 보면, 상대석 부분이 가장 크고 화려하며, 하대석이 다음 크기이고, 중대석이 가장 적다.
한편 861년에 만들어진 적인선사의 조륜청정탑의 경우는, 하대석 가장 아랫부분에 안상을 조각한 얕은 단을 거쳐서 사자상이 조각된 하대석, 그리고 4단으로 구성된 중대석받침으로 이어지고 있는데, 하대석이 염거화상의 승탑에 비하여 현저하게 발달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에 대해서 중대석은 위축된 것처럼 더욱 작아졌다. 상대석은 연꽃을 조각한 상대석 본체부와 여러 단의 계단형 조각과 안상을 나타낸 부분 등으로 구성한 탑신받침으로 이루어져 있다. 전체적으로 이미 하대석이 상대석의 규모와 대등해진것을 알 수 있다. 이 두 승탑의 비교를 통해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 원래는 크지 않았던 하대석의 규모가 점차 커지는 경향을 확인할 수 있다.
이제 응료탑으로 돌아와 보자. 응료탑의 하대석은 적인선사의 승탑과 비교적 유사한 형태임을 알 수 있다. 하대석은 아무런 무늬가없는 하단부, 그 위로 운룡문雲龍文을 조각한것으로 보이는 본체부, 사자상을 조각한 것으로 보이는 중대석받침의 첫 번째 단과 3단의 계단상 받침이 있다. 중대석은 안상을 조각한 본체부와 3단의 계단모양으로 만든 상대석 받침이 있다. 그 위로는 네
겹으로 연꽃을 새긴 상대석 본체부가 있고, 2단의계단상 받침, 안상을 조각한 부분, 다시 계단상으로 조각된 탑신받침이 있다. 이러한 구성은 조륜청정탑의 구성과 흡사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하대석 본체부에 운룡문이 들어오고, 중대받침부분으로 사자상이 옮겨갔다는 점일 것이다. 이런 점을 종합하면, 응료탑은 조륜청정탑 직후 단계의 승탑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능가보월탑(현 응료탑)은 앞의 승탑들과는 꽤나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대석 부분의 구성과 장식의 내용에서 큰 차이가 난다. 하대석의 하단부가 갑자기 크게 발달하였고 운룡문처럼 보이는 형식적인 문양을 조각하였으며, 2단의 연결부를 거쳐 본체부로 이어진다. 하대석 본체부에서는 사자상이 없어지고, 각 면에 2개의 창문 모양 장식을 새겼다. 새로운 장식이 출현한 것이다. 중대석의 경우도 종처럼 아래위로 긴 안상을만들고 그 안에 다시 조각을 새겼다.
상대석의 탑신받침은 훨씬 높아졌을 뿐만 아니라 각 모서리에 기둥을 조각하였는데, 세 곳이 불룩하게 나온 독특한 모습을 하고 있다.
원래의 주인을 찾아서
결과적으로 응료탑은 861년에 조성된 적인선사 조륜청정탑과 거의 동일한 구성을 보이고 있는 반면, 능가보월탑은 여러 가지 면에서 새로운 요소들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
하대석 하단부가 극단적으로 커진 점, 하대석 본체부에 새로운 의장이 등장한 점, 중대석이 훨씬 높아진 점, 상대석 받침은 무시할수 있을 정도로 작아진 점, 탑신 받침 부분이 높아지고 새로운 의장이 출현한 점 등을 종합해 보면, 적인선사의 승탑으로부터 상당히 먼 시기에 성립되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이처럼 승탑의 구성이나 특징으로 보면,현재 응료탑으로 지정되어 있는 것이 수철화 상의 승탑(893년)이고, 능가보월탑으로 지정되어 있는 것이 증각대사의 승탑(860년대)이 분명하다. 그리고 이런 잘못된 지정은 이미 2002년에 고궁박물관의 소재구 관장이 지적한 바 있지만, 현재까지도 공식적으로 고쳐지지 않고 있다.
실상사에서는 설명문의 제목만 고쳐둔 상태다. 물론 깨달음을 얻은 선사님들께는 아무런 문제도 아닐지 모르지만, 속좁은 중생으로서는 송구스러운 마음도 들고 부끄럽기도 하다. 다 우리 중생들의 눈이 밝지 못한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