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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양매화垂楊梅花 식목 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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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목의 날 특집 - 종묵 2009년 04월 326호
며칠전, 진영전(옛 경학원) 앞뜰에 수양매화 두 그루를 심었다 작년에는 가야산 해인사로 출가한지 30년이 되는 해라 뭔가 기념이 될 만한 일을 찾았다. 마침 지리산 자락의 남명매와 정당매를 보고 돌아와 식목일에 홍매, 백매 다섯 그루를 학인들과 함께 심었다. 때마침 학인들에게「문학 연습」을 가르치는 김사인 선생께서 19년 만에두 번째 시『가만히 좋아하는』을 굳이 읽지 말라는 말을 덧붙이면서 주셨다. 굳이 읽지 말라는 말에 걸려 억지로 목차부터 차례로 살펴보았다.
시 제목치곤 아주 긴 「부뚜막에 쪼그려 수제비 뜨는 나 어린 처녀의 외간 남자가 되어」에 눈길이 멈추었다. 긴 제목도 제목이지만 수제비 끓이는 일은 내가 유학시절 가장 자신 있게 만들 수 있는 음식이었던 터라 자연스레「...수제비 뜨는...」이라는 말에 눈길이 갔다. 여인네가 읽으면 몸서리쳐질 잡놈의 속절없는 사랑시를 두세 번 고쳐 읽고, 그 다음으로 눈이 간 제목이「30년, 하고 중얼거리다」이다. 아, 30년. 나도 모르게 저절로 중얼거려졌다.
나이 서른에 늦깎이로 출가해 3년 정도 행자생활한 후에수계하리라 결심하고 행자생활을 시작했다. 입산 때 10명 정도였던 행자가 내가 행자반장을 하던 5~6개월쯤이 되어서는 40명 정도로 전
례 없이 불어났다. 급기야 행자실이 하나 더 마련되어 반장소임을 놓고 윗방행자실로 옮겼다.
먼저 수계하고 스님이 되어 큰방에서 학인으로생활하던 행자실 하판 도반스님네가 큰방에서 나를 두고「행자조실」이라고 비아냥거리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이대로 공양주살이를 하면서 한 평생을 지내는 일도 괜찮겠다 싶었다.
그런데 당시 교무스님이 어느 날 갑자기 나를 부르더니 이번에 수계 안하면 쫓아내겠다고 엄포
를 놓았다. 분별심 많은 늦깎이가 수계는 자꾸 미루고 잘 조련된 행자 40여명의 대장 노릇을 하고 있으니 좀 불안스러웠나 보다. 결국 1년 2개월쯤 되어 수계하기로 작심했다. 후원에 있으면서 후원에서 공양 드시는 보살님들이 가끔 행자님들이 필요한 곳에 요긴히 쓰라고 주셨던 보시금을 모아 두었더니 적지 않게 되었다.
수계에 즈음하여 모아둔 보시금을 의미 있게 쓰고 싶었다. 그때 행자반장이던 수계도반 정경스님과 상의해 나무를 심기로 하였다. 수종을 상의하다 결론을 보지 못했다. 유실수를 심어 해마다 맛있는 실과를 맛볼까? 아니면 한 오백년쯤, 문서로 단단히 적어놓고, 대대로 키워 천년쯤 뒷날에 법당 대들보가 될 홍송을 심어볼까? 의견이 분분했다. 할 수 없어 주지 도성스님에게 상의 말씀드렸더니 모아둔 보시금이 어느 정도인지, 행자들 생각은 어떠한지를 묻고는, 나무를 키우
는 지인이 있으니 알아보겠노라 하셨다.
며칠 후 그 돈이면 직경 3-4센티의 벚꽃나무를 스무 그루 정도는 살 수 있을 거라고 하셨다. 그 전해에 보광강주스님과 학인들이 각고의 노력 끝에 완성된 운동장 주변에 심으면 보기 좋을 것 같아 그렇게 중지를 모았다. 그날 함께 식수한 행자실 도반들도 30년이 지난 지금쯤은 운동장 주변의 벚꽃나무처럼 아름드리로 튼실하게 자라 종단의 곳곳
에서 정진하고 계시리라.
여섯 해전 해인사승가대학 학장으로 부임하면서 학인들이 공부하는 주변 어딘가에 수양매화나 수양벗꽃 등 보기 좋고 향기고운 나무와 화초를 심고 싶었다. 수양벗꽃은 찾을 수 있었지만 수양
매화는 이름조차 생소해했다. 더구나 수양홍매는 더욱 그러했다. 생각을 끊임없이 일으켰더니
시절인연이 도래한 것인지 불교꽃꽂이를 하는 보살님께 연이 닿았다. 부처님 전에 꽃공양하러 다
니던 몇몇 분이 생각하기를 꽃을 공양하는 것은 잠시는 화사하나 이내 시들어버리고 마니, 인연
이 닿으면, 절에 좋은 꽃나무를 심어 공양하기로 약속한 적이 있었단다.
딸 유정이와 아들 광민이에게도 너희들 이름으로 해인사에 사셨던 수행과 덕이 높으신 큰스님들을 모시는 진영전 뜰에 심겠노라고 했다고 한다. 얼마 전에는 가족이 함께 진영전에 참배하고 수양매 심을 곳을 미리 와서 보고 갔다. 그 후로 보살님은 부산으로 경주로 그럴싸한 모양새와 크기를 가진 수양매화를 찾으러 동분서주한 끝에 겨우 근사한 것을 찾았노라고 했다. 수양매화의 자리가 단단히 잡힌 뒤 가족들이 와서 보면 감회가 남다를 것이리라.
4학년 학인스님들과 함께 구덩이를 파고 나무를 심으면서 수양매화 식수의 인연을 들려주었다.경주에서부터 가지가 상할세라 조심스럽게 보호해서 포장된 트럭에 싣고 왔던 조경사 처사님이 나무 키우는 방법을 절구絶句처럼 들여 주었다. “나무 키우는 것은 어린애 키우는 것과 같습니다.” 이 말로 4학년 스님들이 책임지고 잘 키워주기를 당부했다. 그러나 애를 키워본 적이 없는 스님네가 조경사 처사님의 말씀이 가슴에 와 닿았을까?
나무 모양새가 수양버드나무처럼 가지가 늘어져 보통 매화와는 운치와 격이 다르다. 나무 모양새가 얼마쯤 자리 잡혀 제법 그럴싸하다. 다 함께 식수 기념으로 사진 한판 찍고, 벌써부터 이 나무의 멋스러움에 반해 어떤 학인은 잘 익은 매실로 싹을 내어 자기가 살 곳 뜰에 옮겨 심을 계획을 한다. 조경사 처사님이 삽목도 가능하다고 하니, 잘못하다간 가지가 온전치 못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조차 든다.
실은 진영전 앞이라 역대 큰스님네의 삶과 수행의 진정한 향기란 어떤 것인지 학인들에게 묻고 싶었다. 이 수양매화를 보면서 공부하는 이들과 역대조사스님네의 참 모습이 어떤 것인지 함께 참구하고 싶다. 입이 있는 분은 한번 말씀해 보시라! 어떤 것이 진영전 조사스님네의 참모습인가?


청천백일에 보름달 뜨니,
뜰 앞의 수양매 짙은 향기를 본다. 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