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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적 깨달음과 과학적 깨달음-연기론과 상대론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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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김성규 1990년 11월 105호
이 세상에서 모르는 것을 아는 것만큼 아름다운 것이 있을까.
이 세상에서 모르는 것을 아는 것만큼 진실한 것이 있을까.
이 세상에서 모르는 것을 아는 것만큼 위대한 것이 있을까.

불교적 깨달음
붓다께서 기원정사에 머물고 계실 때였다. 파세나디왕이 나랏일로 성 밖에 나가 있을 때 오래 전부터 병석에 누워 있던 왕의 어머니는 돌아가시고 말았다. 지혜로운 신하 불사밀은 효성스러운 왕이 이 불행한 소식을 들으면 얼마나 슬퍼할까 염려하여 왕의 슬픔을 덜어주어야겠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오백 마리의 코끼리와 말과 수혜를 화려하게 장식하고 수많은 보물들과 기녀들을 실은 뒤 만장을 앞세워 풍악을 을리면서 상여를 둘러싸게 하고 성 밖으로 나갔다. 왕의 일행이 돌아오는 도중에 만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는데 마침 불사밀의 계획대로 돌아오는 왕과 마주쳤다.
호화로운 상여를 본 왕은 마중나온 불사밀에게 물었다.
ꡒ저것은 어떤 사람의 장례행렬인가?ꡓ
ꡒ성 안에 사는 어느 부자의 어머님이 돌아가셨습니다.ꡓ
ꡒ저 코끼리와 발과 수레는 어디에다 쓰려는 것인가?ꡓ
ꡒ그것들을 염라대왕에게 갖다 바치고 죽은 어머니의 목숨을 대신하려고 한답니다.ꡓ
왕은 웃으면서 말했다.
ꡒ어리석은 짓이다. 생명이란 멈추게 할 수도 없지만 대신할 수도 없는 것, 한 번 악어의 입에 들어가면 규해낼 수 없듯이 일단 염라대왕의 손아귀에 들면 죽음은 면할 수 없는 것이다.ꡓ
ꡒ그리고 여기 있는 많은 기녀들로 죽은 어머님의 생명을 대신하겠다는 것입니다.ꡓ
ꡒ기녀도 보물도 다 쓸데없는 짓이다. 생이 있는데 어찌 죽음이 없겠는가. 붓다께서도 한 번 태어난 자는 반드시 죽는다고 하였거늘(연기론).ꡓ
그러자 불사밀은 왕 앞에 엎드리며 말했다.
ꡒ대왕님, 말씀하신 바와 같이 생명이 있는 것은 반드시 죽는 법입니다. 너무 상심하지 마십시오 태후께서 돌아가셨습니다.ꡓ
왕은 이 말을 듣고 깊은 한숨을 쉬며 한참 동안 말없이 있다가 입을 열었다.
ꡒ착하다 불사밀, 그대는 미묘한 방편으로 내 마음을 위로해 주는구나.ꡓ
파세나디왕은 성으로 들어가 갖가지의 향과 꽃으로 돌아가신 어머니께 공양올리고 나서 붓다가 계시는 기원정사로 수레를 몰았다.

과학적 깨달음
우주여행을 하고 있는 아버지와 아들의 대화다.
아버지 : 얘야, 너의 우주로켓 속도를 시속 2,000㎞로 유지하렴.
아 들 : 아버지, 무엇에 대해서 그렇게 하란 말씀입니까?
아버지 : 나는 지금 지구에 대해서 시속 2,000㎞로 유지하고 있다. 너도 그렇게 하려무나.
아 들 : 알았습니다.
이 우주 안에 정지된 기준점으로 사용할 만한 천체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지구는 자신의 축을 중심으로 해서 돌면서, 태양 주위를 돈다. 태양과 태양계는 우리가 사는 은하계에 대해서 옴직이고 있으며, 전우주에 존재하고 있는 모든 것은 운동하고 있다. 즉 모든 천체는 서로 상대운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좀더 구체적으로 시간과 공간의 상대적 개념에 접근해보자.
먼저 우주 공간에서 운동하고 있는 지구를 생각해보면, 지구의 위치를 이야기할 때 관찰자가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달라지게 된다. 만약 금성에서 지구를 본다면 오른쪽에 있을 것이고, 목성에서 본다면 왼쪽에 있을 것이다. 또 달에서 본다면 아래에 있을 것이며, 화성에서 본다면 위에 있을 것이다.
이와같이 공간적인 왼쪽․오른쪽, 위 ․아래의 개념은 관찰자의 위치가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즉 관찰자와 관찰대상의 관계 속에서 상대적으로 주어지는 개념인 것이다.
만약 A․B 두 우주로켓이 상대속도가 초속 240,000㎞라면, A로켓에 타고 있는 사람이 B의 시계를 보면 자기 시계보다 약 30분 늦게 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A의 시계가 1시를 가리키고 있을 때, A가 B의 시계를 보면 1시 30분 전이다. 그리고 상대속도가 크면 클수록 B가 자기 시계를 보고 또 A의 시계를 본다면 B에게는 A의 시계가 늦게 가는 것같이 보인다. 왜냐하면 관측자가 서로 상대적으로 움직이고 있을 때 양쪽에서 생기는 결과는 서로 같기 때문이다. 시간이 늦어지는 효과란 두 사람의 관측자가 서로 일정한 상대속도로 움직이고 있으면 서로 상대방의 시간경과가 늦어지는 것같이 보인다. A와 B의 시계가 각각 상대방에게 늦는 것같이 보이는 이유는 빛이 어떤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나아가는 데는 일정한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상대론이 주장되기 전 모든 사람들이 시간은 모든 사람에게 언제나 같고, 모든 물체에 대해서도 항상 같은 속도로 진행한다고 여겨 시간이라는 것은 같은 속도로 흐르는 일정 불변의 한결 같은 흐름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서로 상대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두 사람의 관측자에 대해 ꡐ다른ꡑ속도로 흐르고 있다는 것을 아인시타인 이전 사람들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지구와 베탤큐스, 알데바란별을 생각해보자. 베탤큐스와 알데바란은 지구에서 300광년(빛이 일년 동안 가는 거리를 1광년이라 한다), 53광년 떨어진 곳에 있으며, 알데바란은 베텔큐스에서 약 250광년 떨어진 곳에 있다. 서기 2,000년 1월 1일 밤에 베텔큐스의 폭벌에 의하여 오리온 별자리가 파열한다고 가정해 보자. 베탤큐스는 300광년 떨어진 곳에 있으므로, 지구에 있는 우리들은 그 별이 파열하는 날에는 보지 못하고 그것이 파열할 때 생기는 광파가 우리지구에 이르기까지는 300년이 걸리므로 우리가 감지하는 것은 2300년 1웰 1일 밤의 일이며, 알데바란에 있는 사람은 2250년 1월 1일 밤에 폭발하는 것을 볼 수 있는 것이다. 하나의 폭발사건은 각각 다른 장소에서 ꡐ각각 다른 시간ꡑ에 일어나므로 이것이 상대적인 개념으로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절대적인 시간과는 별개의 것으로 안식되는 것이다.
황소좌에 있는 알데바란의 현재가 베탤큐스에서는 과거가 되고, 지구에서 바라보면 미래가 되는 것처럼 우리가 느끼고 있는 시간적 과거․현재․미래의 개념도 상대적인 허상에 불과한 것이다.

불교적 깨달음과 과학적 깨달음
연기론이 우리 인간의 의식에 기반을 둔 인식론이라면, 상대론은 자연현상을 설명하는 데 있어서 이제까지의 구조론에서 벗어난 인간 의식의 인식론이라는 것이다.
자기 혼자만을 생각하던 절대적인 생각에서 벗어나 대상을 인정함으로써 주체와 객체와의 관계 속에서 인식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 연기론이라면, 물체자체와 운동과 현상만을 규명하려고 하던 절대적인 관념의 틀에서 벗어나 관측하려고 하는 관측자를 포함시켜 운동과 현상을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 상대론이다.
어떤 좌표계의 시간적․공간적 구조가 향상 임의의 다른 좌표계에 대한 운동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공간에 대한 물체의 운동은 무의미하며, 물체의 운동이란 항상 다른 물체의 운동과의 상대적인 의미에서 인식되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시간과 공간을 함께 나투는 명상에 의한 사고의 틀에서는 객관적인 인식은 무의미하며, 어떠한 인식이라도 주제와의 연계 속에서 상대적으로 인식되어야 한다는 것이 연기론이다. 상대론의 싹이 겨우 16살된 아인시타인의 마음 속에 떠올랐던 한 역설 속에 깃들어 있었다는 것은 매우 흥미있는 일이다. 그는 빛을 따라서 빛의 속도로 여행하는 관찰자에게 빛의 형태는 어떻게 보일 것인가 하는 문제를 골똘히 상상하였던 것이다. 수년 후 마이켈슨-몰리의 실험에 의해서 에테르(소리를 전달하는 매체가 공기인 것처럼, 빛을 전달하는 매체라고 생각하였음)의 존재가 부정되자 시-공간론의 새로운 물결, 공간에 대한 물체의 운동은 물리학적으로 무의미하며, 다른 물체의 운동과의 상관관계 속에서 인식되어져야 한다는 상대론을 구축하였던 것이다.
즉 시공간이 분리된 상태에서 사물들을 이해할 때 시간적인 관점에서 보면 영원한 것이 있는 것처럼 보이고, 공간적인 관점에서 보면 절대적인 것이 있는 것처럼 보였는데, 시공간을 동시에 보면 영원하고 절대적이라는 허상은 허물어져 버리고 존재실상에 대한 진실을 볼 수 있는 것이다. 불교에서 사물들의 존재실상은 끊임없이 생성되고 소멸되며 변화하는 실체로서 영구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제행무상, 諸行無常), 모든 현상에는 어떤 실질적인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라 생성되었다가 존재하고 소멸되는(제법무아 諸法無我) 것과 잘 일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붓다에 의한 인간 의식혁명이 연기론으로 표현되었다면, 아인시타언에 의한 인간의식에 바탕을 둔 자연관 혁명이 상대론으로 표현된 것이다. 결국 연기론과 상대론은 우리 손바닥의 앞면과 뒷면에 불과한 것이다.
어떤 명제에 도달하기 위한 과학적인 방법은 상황을 분석함으로써 종합적인 결론에 도달하는 것이며, 불교적인 방법은 상황을 종합함으로써 분석적인 물옴의 결론에 도달하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하나의 이상적인 집을 짓는 데 있어서 과학적인 방법은 기초는 기초대로, 건물은 건물대로, 부분적으로 전체를 이루어가는 방법론이며, 불교적인 방법 한꺼번에 집 전체를 구상하는 방법론이다.

산사의 기을은 골짜기의 깊이만큼 깊어만 가는데.
이 가을에는
산 위에 을라가 산사를 바라볼까.
산사의 문틈을 비집고 산을 바라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