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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하늘인들 나무라지 못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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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의 샘 - 능인 김계유 / 한학자 2009년 04월 326호
손순효는 조선 전기에 활동한 인물이다. 그는 순수한 성품의 소유자로 자기가 옳다고 여기는 생각을 쫓되 풍속과 인간의 법도에 관계되는 것이면 항상 생각을 깊이 하여 행동을 했다고 한다.
때마침 나라에는 크게 가뭄이 들어 많은 사람들이 하늘에 기우제를 지내며 비 오기를 간절히 빌어도 아무런 효험이 없었다. 공은 자신이 직접기우제를 지내기로 하고 정성을 다하기를“그동안 비를 얻지 못한 것은 다름이 아니라 감사가 정성을 다하지 못한 때문이다. 만약 성심으로 하늘을 감동시킨다면 하늘이 반드시 응할 것이다.”고 하였다. 과연 그의 말대로 그 날 밤중에 비가내렸다. 공은 그 소리를 듣고 기뻐서 말하기를 \"내가 마땅히 하늘에 감사해야 할 것이다.\" 하며
조복을 입고 뜰 가운데 나가 서서 수없이 하늘에 절하였다. 그러나 처음과 달리 비 내리는 형세가 점점 급작스러워졌으나 우산을 쓰지 않았다.
공은 벼슬이 높아진 뒤에도 마음가짐은 더욱 검약하여 항상 손님을 맞는 술상에조차 소나무순과 조린 콩뿐 그 밖의 기름진 것은 결코 찾아볼 수가 없었다. 거기에 집안의 살림살이도 마구간에 고작 한 마리의 말이 있을 뿐이었다. 그는 자제들에게 평소 경계하기를“우리 집은 초야에서 일어났으니 대대로 전해 내려온 옛 물건은 없다. 다만 청렴하고 결백한 것을 전해주면 족하다.”하였다.
어느 날은 술에 취해 누워서 손으로 가슴을 가리키며 하는 말이“이 속에는 조금도 더러운 물 지혜의 샘건이 없다”고 했다. 그는 떳떳한 도리 앞에서는 하늘마저 꾸짖어마지 않기를 서슴없이 했으니 공이 감사가 되어 비 오기를 빌던 때의 일이었다. 그가 기우제를 올렸는데도 비가 오지 않자 곧 꾸짖어 따졌다 또“내가 너에게 비 오기를 빌었는데도 비가 오지 않는 것은 무슨 이유인가.”하고 당당하게 구는가 하면, 감사가 되어 부임길에 나서면서는 영해 읍령의 고개길을 오히려 피하지 않고 넘어가는 당당함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즉 그곳은 그동안 민간에서 전하기를 벼슬아치가 만약 처음 그 재를 넘으면 반드시 흉한 일이 있을 것이라 하여 모두그 재를 꺼려하며 피해오던 터였다. 그러나 공은 오히려 그 고갯길을 이용하면서 고목나무를 깎아 표말을 만들어 그때까지의 요사스런 풍속에 대해 당당하게 다음과 같은 시로써 대처하였다. 너는 화산을 읍하고 만세를 부르며 나는 왕명을 받들어 뭇 백성을 위로한다.
그 가운데 경중을 누가 능히 알리요.밝은 해가 환하게 두 정상을 비추리라.汝揖華山呼萬歲 我將綸命慰群氓 箇中輕重誰能會 白日昭然照兩情(그 뒤로 그 재의 이름은 요괴한 것을 파괴한다는 의미에서 파괴현이라 고쳐 불려졌다.)
공의 됨됨이를 말할 때 어려서부터 남달랐던 그의 효성을 또한 빼놓을 수 없다. 공의 나이 10세 남짓해서였다. 어머니가 병이들어 누워서 살구를 맛보고 싶어했다. 그는 살구나무 밑에 가서 하늘을 우러러 절하며 기도하는 형상을 하고 있었다. 그러자 과연 살구가 바람도 없이 저절로 그에게로 떨어져 내렸다. 그는 주워서 어머니에게 그것을 바쳤는데 사람들은 모두 그것을 기이하게 여겼다.
하늘의 교감이 있었음직한 이런 일화는 또 있었다. 일찍 영남 관찰사로 있을 때였다. 그는 임기가다 되어 동래에 대한 순시를 마지막으로 전별의 연을 열려 하고 있었다. 마침 그때에 맞춰 그 현의 현령이 공의 형인 인효의 부음을 받았다. 그러나 현령은 이를 비밀에 부치고 발설하지 않았다.
그런데 공의 꿈에 인효의 아들이 탄괄(친상 때 한어깨의 옷을 벗어 매는 것과 머리를 삼으로 묶는 것)을하고 나타났다. 공은 그 꿈을 꾸고 일어나 앉아 눈물을 흘리며 말하기를,“우리 형은 반드시 죽었으니 내일은 소찬(고기 없는 간소한 음식)을 장만하라.”하였다. 현령은 그 말에 깜짝 놀라며 사실대로 형의 유고를 공에게 알렸다.
포은의 사당은 영천에 있었다. 공이 일찍이 경상도의 안찰사로 가서 순시하여 그 곳을 지날 때말 위에서 깜빡 졸 때가 있었다. 그때 꿈을 꾸었는데 수염과 머리털이 허연 어떤 노옹이 스스로
포은이라 자처하여 그의 꿈 속에 모습을 나타냈다. 그 노인은 공에게 말하기를“거처하는 데가
헐고 황폐하여 비바람을 가리지 못한다.”고 했다.
공은 놀라 이상히 여기고 나이 많은 그곳의 향로에게 물어 그 옛터를 찾아 새로 사당을 짓게 하였다. 공은 사당이 완성되고 나서 몸소 제사를 올리고 글을 지어 벽에다 써 붙였다.
공은 일찍이 그의 소원이 병 없이 임종을 맞는 것이었다. 어느 날 여러 대신들과 더불어 술을 많이 마시고 저녁 늦도록 이야기를 하였다. 그러다 새벽에 일어나서 부인에게 말하기를“내가 기운
이 좋지 못한 것 같으니 여러 아들을 불러오고 빨리 밥을 차려 오시오.” 하고 부탁했다. 공은 부인이 자신의 부탁대로 하자 밥을 먹은 뒤에“내가 젊었을 때 책을 끼고 스승의 문하에서 공부하던 흉내를 내어 보고자 한다.”하였다. 공은 정말 책한 권을 끼고 섬돌 층계로 두서너 번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더니“피곤하구나 조금 쉬어야겠다.”
하고는 베개를 베고 자리에 누웠다. 집안사람들은 자는 줄만 여겼다가 한참 만에 살펴보니 이미
숨을 거둔 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