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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남은 한국미술을 밝힌‘존 코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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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가산책 - 이만주 2009년 04월 326호
존 코벨 “냇가에서 유유히 헤엄치고 있는 커다란 메기 앞에 어부가 크기도 작고 병목이 좁은 호리병을 들고 서있는 모습을 묘사한 <호리병으로 메기를 잡다(瓢鮎圖)>라는 선화禪畵. 일본인들이 자랑스러워하는 문화유산인 15세기 선묵화禪墨畵 중에서도 손꼽는 그림이다. 이 그림을 그린 이는 ‘일본 묵화의 창시자’로일컫는 조세쯔(如拙)라는 승려화가인데 그는 조선 사람이며 나아가 15세기 일본 선묵화의 대부분이 조선화가들에 의해 그려졌다.”
존 카터 코벨(Jon Carter Covell, 1910-96)의 저서 ‘일본에 남은 한국미술(김유경 옮김)’을 읽다 보면 우리가 한·일 관계사에서 모르고 있던 수많은 사실들을 알게 되어 무한한 감동이 느껴진다.
그녀에 의하면 일본의 신토神道, 신사神社 자체가 한국 무속이 일본으로 건너가 변형된 것이며 호류지(法隆寺), 코류지(廣隆寺), 도다이지(東大寺)의 빼어난 불교예술품들 거의 모두가 백제의 것이거나 백제인들이 만들었다는 것이다. 범종은 물론 그들이 중국 것으로 또는 자기네 것으로 얼버무리는 불화도 모두 고려 불화이며 일본이 그토록 중요시하는 다도茶道와 일본식 정원도 그 기원이 한국으로 일본문화야말로 한국문화에 원류를 둔, 한 변형된 형태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집트나 그리스의 문화재는 대영박물관이나 루브르 박물관에 있어도 이집트, 그리스 것으로 명백히 소개되는데 반해 유독 일본에 있는 한국 미술품은 일본이나 중국 것으로 둔갑하
는 일본의 거짓을 비판한다.
미국 태생인 코벨 여사는 1941년 서구학자로서는 최초로 명문인 컬럼비아 대학에서 일본미술사
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일본어와 한자에 능했다. 1930년대부터 50년 가까이 일본을 오가며, 때
론 장기간 거주하며 일본 미술을 연구하던 그녀는 마침내 득도라도 하듯 일본 문화와 예술품들은
한국 것이거나 한국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1978년 65세의 나이에 홀연 아들과 함께한국으로 건너온다.
그 후 1986년 여름까지 한국에 머문 그녀는 자기의 생각을 더욱 굳히며 한국과 일본 미술에 관한 1,400편에 달하는 글과 논문을 한국의 영어매체에 게재했다.
기록은 기록을 낳고 문헌은 문헌을 낳는다. 정확하고 객관적인 역사 기록이라는 것도 결국은 강
자의 편에서, 또는 자국自國에게 유리하게 기술되기에 역사란 왜곡되기 마련이다. 일본의 고대 역
사서인 고사기古事記와 일본서기日本書紀 자체가 왜곡되어 있음은 이미 다 알려진 사실이다. 일본
사람들 밑에서 배운 구세대는 그렇다 치고 광복 후 세대들도 어떤 연유에서인지 일본에 대한 제대
로 된 연구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한일관계 역사의 진실을 천착한 사람들은 정규사학자가 아닌 재
일교포 소설가였던 김달수(1919-1997), 국내의 김성호(비류백제와 일본의 국가기원 저자) 등 일부
소수들이다. 코벨의 연구와 주장은 유물과 유적에 의존했기에 기록을 넘어선 신빙성이 있으며 한
국인도, 일본인도 아닌 제3자의 입장에서 바라보았기에 객관적이다.
그녀는“한국인은 그 나름의 단점에도 불구하고 진실로 순수한 사람들이다. 일본에서는 내가 아
무리 일본어를 잘하고 일본역사와 문화에 정통했어도 그들과 동화되기가 어려웠다. 여기 한국에서
는 내가 진실로 따뜻하게 맞아들여진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고 말할 정도로 한국을 사랑했다. 한국 정부로부터 아무런 혜택도 받지 못한 채 비자 갱신을 위해 6개월마다 밖으로 나갔다 다시 입국하는 번거로움을 마다하지 않으며 한국에서 연구를 계속했다. 1986년 노령과 건강 악화로 인해미국으로 돌아간 후 1996년 4월 작고한 그녀는 생전 한국의 몇 군데 절에서 묘자리를 약속했었지만‘( 일본에 남은 한국미술’358쪽) 그 후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아 한국에는 흔적을 남기지 못하고 유해 일부가 일본 다이토쿠지(大德寺) 신주 안에 안치되었다.
그녀의 저술은 한국어로 번역되어 나온 다른 2권인,‘한국문화의 뿌리를 찾아(1999)’,‘부여기마족과 왜(2006)’ 외에도 영문으로 된 ‘한국 도자기의 세계(The World of Korean Ceramics/ 아들 Alan Covell과 공저)’,‘한국의 문화유산’ 등 여러 저서(amazon.com에는 그녀의 많은 저서가 올라 있다)가 있으며 수많은 한국 관련 원고가 정리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고 한다. 그녀는 만해 한용운을 바라보는 일반적인 시각과는 달리 인간적인 측면에서 따뜻하게 바라보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일본의 교과서 역사왜곡은 통렬히 비판하면서도 미술사 왜곡에 대한 비판은 거의 없다. 우리는늘 일제가 우리 것들을 변질시켜놓았다는 타령만 할 일이 아니라 코벨의 연구와 같은 진실들을 심화시켜야 하는 것은 아닐까. 때늦은 감이 있지만 그녀에게 문화훈장을 추서하고 한국문화에 공헌한 인물로서 기리며 그녀의 저작들을 번역하고 유고들을 정리해야 하는의무가 우리에게 남아 있다고 생각한다. 코벨 여사는 우리에게는 진정으로 고마운 은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