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과 교감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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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자의 향기 - 경성
2009년 04월 326호
부처님께서 기원정사에 머물고 계실 때에 제자들이 모여 앉아서 진리에 대해서 토론을 나누고 있는 것을 목격하신 부처님께서 제자들에게 물으셨다.“그대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제자들은 대답하였다.
“저희들은 지금 진리에 대해서 토론을 하고 있었습니다.”“훌륭하구나. 그대들이 진리에 관해서 서로 이야기한다는 것은 매우 훌륭한 일인 것이며, 또한 출토론하는 것보다 더욱 귀중하게 여겨야 할 것은, 바로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해야 할 말을 하고 침묵할 때에는 침묵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대들은 진리를 말하는 것과 동시에 지혜로운 사람의 침묵을 배워야 한다는 것을 깊이명심해야만 한다.”
구시화문口是禍門, 입이 바로 재앙과 근심의 문이라고 하는 말씀이나, 부사처세 부재구중 소이참신 유기악언夫士處世 斧在口中 所以斬身 由其惡言, 사람이 세상을 살아감에 입 안에 도끼가있어서 나쁜 말 한 마디로 말미암아서 결국에는 몸을 다치게 되고 만다는 등의 설명은 모두 말을 조심하고 입을 단속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관계와 사이에서는 항상 말이 화근禍根이 되곤 합니다. 친하고 격의가 없는 막역한 절친의사이에서도 실없는 농담 한 마디로 인해서 원수가 되기도 하고, 부모와 자식의 가족관계에서도 무심결에 내뱉은 한 마디 말이 비수悲愁가 되고 도끼가 되어서 치명적이고 회복하기 힘든 아픔과 상처를 초래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말(언어言語)은 소통과 교감交感을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만약 말이 없다면 소통이나 교감
을 생각조차 할 수 없을 것이므로, 소통을 실현하는 말과 언어의 가치는 가히 절대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말한다는 것은 자기의생각과 의견과 주장을 드러내 보이는 것이고, 자신이 말하는 것을 그치고 침묵하면서 다른 사람의 말에 귀 기울이면서 듣는다는 것은 상대와타인과 세상을 받아들이는 자세일 것입니다.
진정한 소통과 교감으로, 말(언어)의 존재성을 인정하고 확립하기 위해서는 말하기에 앞서 침묵
하면서 다른 사람의 말을 경청敬聽하는 묵언默言과 관심이 선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말은 들으려고 하지 않으면서 오로지 자신의 의견과 주장만을 소리 높여 부르짖
거나, 채팅과 댓글의 익명성을 빌려서 자기의편견을 서슴없이 드러내는 것은 두 귀를 막고서
홀로 담장에 대고 떠들어대는 것과 다르지 않을것입니다. 이런 일방적이고 비극적인 상황에서
인간과 인간 사이의 소통이나 이해를 기대한다는 것은 전혀 불가능한 일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소통과 이해를 위한 제일 첫 번째 단계란 무엇보다도 먼저 침묵하면서 상대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자세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공자도 자연론自然論에서 대자연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지만 산천초목은 푸르다고 강조
하면서, 묵언默言이란 귀중한 지혜를 자연 속에서 배워야 한다고 가르치신 것도 불가佛家에서
묵언으로 수행의 한 방편을 익히는 것과 다르지않을 것입니다.
하루가 다르게, 아침과 저녁이 판이하게 새싹이 돋아나고 나뭇가지마다 싱그러운 움이 터오고 꽃이 피어나는 삼월입니다. 한나절만이라도 묵언하면서 힘차게 기지개켜는 산과 들판과 나무와 꽃에 귀를 기울이면, 생명과 약동躍動의힘차고 우렁찬 울림을 관조觀照할 수 있을 것입니다.
존재하는 그 자체로 지혜를 일깨우는 자연의 소리를 들어보고자 한다면, 의견과 주장이 다른 상대의 말에 귀를 기울이면서 나의 견해만을 내세우려고 하기 보다는 상대의 입장을이해하려고 내가 먼저 침묵하고 사유思惟하는자세를 견지堅持하여, 진정한 소통과 교감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소통과 교감을 이루기 위해서는 먼저 침묵해야 한다는 것이 삼월의 산하山河가 전하려고 하는 무언無言의 외침이자 메시지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