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의 기복적 성격에 대한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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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리포트 - 진휴스님
2009년 01월 323호
한국불교가 어떤 성격을 가지고 있는 지를 규
정하는 여러 말 중에‘기복祈福’이 있다. 기복에
대한 논의는 최근 몇 년 사이에 이루어졌다. 그
것도 주로 재가자들에 의해 문제제기가 이루어졌
다. 출가자들은 그 문제를 다루는 것을 꺼려하는
분위기이다. 오히려 반발하는 기류가 더 강하다.
스님 한두 분이 겨우 공개적으로 입장 표명을 하
였다. 그것은 그만큼 현실적으로 기복에 대한 의
존도가 높다는 것을 반증한다. 그 의존도는 먼저
기복에 기대어 사찰 재정 운영을 하는 것을 말한
다. 그리고 출가자가 수행력으로 재가자들을 인
도하지 못하고 기복에 의존하여 그들을 이끄는
것을 뜻한다.
그러다 보니 유일신을 믿는 종교에서 두드러지
게 나타나는 기복적이고 타력적인 신앙이 오히려
불교에서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간판만 다를 뿐
불교신자나 개신교 신자나 신앙 행태는 비슷한
느낌마저 주고 있다. 불교와 다른 종교의 차별성
이 없어지고 있다. 가장 과학적이고 지성적인 종
교이며 철학이라고 불리어지는 불교가 무속신앙
과 가장 가까운 사이처럼 인식되고 있다.
기복신앙을 하는 한국불교가 되지 않으려면 먼
저 기복신앙에 대한 논의가 활성화 되어야 한다.
그래서 기복이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공감대 형성
이 이루어져야 한다. 스님이든 신자이든 사부대
중 모두 그러한 인식 전환이 이루어져야 한다. 우
리가 하고 있는 신행이 기복이라는 것을 자각할
수 있게 되어야 한다. 그러나 개인적·가정적인
기도만이 성행하며, 심지어는 무속인처럼 부적을
팔고 사주팔자를 보아 주며, 천도재만 하면 극락
왕생할 수 있을 거라고 한다. 문제는 그것이 기
복이라는 인식조차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공
업중생으로서 다른 사회 구성원에 대한 인식이나
접근이 약하다.
인식 전환을 위해서는 근본불교에 대한 진지한
접근이 필요하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근본교설
을 깊이 천착해 보아야 한다. 우리가 대승불교라
는 생각에 초기불교를 소승이라고 무시하는 경향
이 있다. 그러나 초기불교의 아함경이나 니까야
에 있는 부처님 말씀까지 남방불교라고 하여 무
시하여서는 곤란하다. 지금의 대승불교는 초기의
근본불교를 기본으로 하여 성립된 것이기 때문이
다. 부처님의 근본가르침을 살펴보면 기복에 대
한 옹호는 없다. 그것이 부질없음을 말씀하신다.
복을 닦고[修福], 복을 지으라[作福]고 하신다. 이
른바 공덕주의이다.
공덕은 보시와 지계로써 가능하다고 부처님께
서 말씀하셨다. 현대 언어로 표현하자면, 개인이
나 기업이익의 사회환원, 자원봉사, 도덕적인 생
활, 타인에 대한 배려, 자연친화적 환경 등이다.
결국 부처님의 핵심적 가르침인 연기법과 업보설
에 따르면 기복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무엇을 빌
어서 될 성질의 것이 아닌 것이다.
그러나 기복을 옹호하는 분들은 기복과 작복
의 개념을 혼동하고 있으며, 방편론을 내세워 기
복을 합리화하기까지 한다. 또 현실적으로 어쩔
수 없다면서 애써 기복이라는 비판을 외면하고
있다.
말이 그 사람의 사고를 지배하기도 함으로 기
복신앙에서 중요한‘기도’라는 말 대신에‘정
진精進’이라는 말로 표현을 바꾸어 보는 것도 생
각해 볼 문제이다. 그 정진의 내용으로는 예배·
찬탄 ·공양·발원·참회·주력·칭명 등이 있
다. 거기서 더 나아가 불교대학 등에서 불교 교리
를 체계적으로 공부하고 시민선방 등에서 참선을
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사성제는 고苦에 대한 자각과 전제에서 출발한
다. 그것을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러나
기복은 정면으로 고를 대면하는 것이 아니라 회
피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기복의례를 통
해서 형식화하고 공고하게 만드는 측면이 있다.
기복의례가 강화되면 결국 스님들은 수행자가
아닌 사제가 되고 제사장처럼 되어 버린다. 출가
자는 부처님이 비판하셨던 바라문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면 신부나 목사와 다를 바가 없다. 하
지만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다고 부정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제는 수행자로서의 본분에 충실한
삶을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이는 선택의 문제
가 아닌, 불교 존립의 문제라고 본다. 수행력으로
재가자들을 이끌어야만 자연스럽게 권위가 확립
된다. 대對사회적인 발언을 하여도 다른 사회구
성원들이 귀담아 듣게 되며, 지금과 같은 종교차
별 문제가 생기지 않게 된다.
수행자다운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다보
니 승가에 자발적인 공양과 보시를 하는 아름다
운 전통이 약해지고 있다. 그래서 대규모 천도재
와 같은 기복의례에 더욱 매달리게 된다. 불사라
고 하는 이름으로 외형적이고 물질적인 부분에
치중하게 된다. 승가에 대한 자연스런 존경심에
서 공양과 보시가 이루어지지 못하는 실정이다
보니, 불사에 시주자 이름을 올릴 수 있어야 보시
가 이루어진다.
결론적으로 기복은 선택이 아니다. 정법으로
가야한다. 당장은 그것이 힘들 수 있다. 하지만
멀리 보면 정법이 아니면 안 된다. 불교의 이름을
내건 유사불교가 되어서는 안 된다. 불교의 얼굴
을 한 외도가 되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