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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형♂ 남자 ♥ B형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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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피플- 나눔의 사하촌 이야기 - 나눔 2009년 01월 323호
행복은 늘 우연을 가장한 필연에서 온다고 했던가. 둘이 함께 있어 하나로 완성되니 그야말로 천상배
필, 2인3각 경기를 하듯 손을 마주잡고 함께 걷는 세상은 그저 아름답기만하다.
해인사 입구에 자리한 사하촌 구원리에서 소문난 잉꼬부부로 통하는 장윤진, 정선희 부부. 두 사람 모
두 그림을 그리는 전업작가로 나이는 육십을 바라보지만 결혼생활은 겨우 9년차. 아직도 새신랑 새
각시의 풋풋함이 남아있다.
해인사로 들어서는 산모퉁이를 돌아 언덕너머
작은 소나무 숲을 지나면 계단식 층층 논밭 위로
예쁜 아뜨리에가 보인다.
동양화를 그리는 남편 윤진씨(60)와 서양화를 그
리는 아내 선희씨(55)가 만들어 놓은 그들만의 낙
원, <산정 갤러리>이다.
서울 중앙화단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던 윤진씨가
어느날 갑자기 도시를 떠나 이 곳 해인사 자락 사하
촌으로 삶 터를 옮긴 것은 순전히 아내 선희씨 때문
이다. 가야산을 유난히 좋아했던 선희씨는 결혼을
하면서 교편 생활을 접고 이 곳 가야산 자락에 작업
실과 갤러리를 겸한 예쁜 살림집을 마련했다.
늦게 시작한 결혼 생활이기에 남은 시간 맘껏 사
랑하며 오직 그림만을 그리기 위해서였다. 선희씨
가 있는 곳이면 지구 끝 어디라도 행복하다는 윤진
씨는 아내가 좋아하는 곳이기에 화가로서 쉽게 뿌
리칠 수없는 서울살이를 미련도 없이 정리하고 따
라나섰다.
이렇게해서 시작된 두 사람의 신혼 생활. 아침이
면 산안개 피어오르는 창가에서 함께 눈을 뜨고 낮
동안 맘껏 그림을 그리다가 밤이면 별을 보며 함께
잠을 청하는 가장 행복한 시간을 갖게 됐다.
결혼 생활 9년째를 맞는 두사람이지만 아직도
‘여보’,‘당신’은 익숙치 않고 남편의 호인‘산
정’을 애칭삼아 이름처럼 불러대는 선희씨와 이에
뒤질새라 하루종일‘우리 선희’를 외고 다니는 윤
진씨.
부부가 손을 잡고 걷는 것조차 남새스럽다며 마
실을 나설 때도 간격을 두고 걸어가는 이곳 구원리
의 시골 사람들에게는 도시에서 온 두 사람의 삶이
처음에는 여간 이상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서로에게 그러하듯 동네 어르신들에게도
스스럼없이 손을 잡아주고 음식을 나눠먹으며 지
나는 길 일부러 차를 돌려 태워드리다보니 이제는
한 집안의 아들 며느리처럼 담장없는 이웃사촌이
되었다.
구원리에서 윤진씨의 이름은‘산정이 선생’,
선희씨의 이름은‘선희선생’이다.
두 사람이 서로를 불러주는 이름 그대로를
들어새긴 탓이다.
마을 사람들이 요즘 두 사람을 보고 가장 기다리는
것은 <산정갤러리>의 예쁜파티다. 이곳에 내려와서
부터 지난해까지 한번도거르지않고 도시 친구들
과 마을 사람들을 초대해 전시회를 겸한 작은
음악회를 갖다보니 어느새 산정갤러리의 파
티는 구원리 마을의 자랑이 되었고 그런만큼 처음
으로 거르는 올 한 해가 여간 섭섭한게 아닌 듯해
보였다.
그러나 요즘 일이 힘이 부쳐 올해부터는 손님을
치루는 일이 엄두가 나질 않는 두사람이다. 가야
산 사람으로 자리를 잡아가면서 그림 외에도 지역
사람들과 어울리는 시간이 많아졌고 여기저기 그
림을 가르쳐달라는 부탁을 거절할 수없어 몇가지
강의를 맡다보니 쫓기는 시간이 많아졌다.
더구나 두 사람 모두 어려서 앓은 병으로 다리를
저는 탓에 균형잃은 몸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가끔
씩 통증을 호소하게 한다. 특히 선희씨의 경우 지
난날 교사생활을 하면서 성한 나머지 한 쪽 다리에
몸을 의지해 오래도록 칠판 앞에 서있다보니 척추
가 많이 내려앉았고 그로인해 성한 다리마저 저려
오는 통증이 찾아들기도 한다. 서로 같은 장애를
갖고 있기에 몸에 느끼는 통증마저도 너무 잘 이해
하는 두사람이다. 그래서일까, 요즘은 누구랄 것
도 없이 서로 파티 얘기는 꺼내지 않는다. 이 또한
천생 연분, 서로의 마음을 잘 아는 탓이다.
결혼 전, 선희씨는 마산이 고향으로 당시 진해에서 교
편을 잡고 있었고 윤진씨는 서울 화단에서 제법 자
리를 잡은 중견작가로 활동하며 지냈으니 두사
람이 만난 것은 그야말로 전생 인연이 아니
면 설명할 수없는 우연이었다.
선희씨가 다니는 학교에 한 동료 교사가 서울사
는 윤진씨를 지역에 초대하게 되었고 윤진씨는 바
쁜 서울 생활 탓에 몇 해를 미루다 지난 96년 봄,
꽃놀이를 겸해 진해를 방문하였다.
예나 지금이나 서울 손님을 맞는 지방사람들의
접대는 늘 정에 넘치는 편, 지동차는 커녕 운전면
허조차 없던 동료교사는 정성을 다하고픈 마음에
선희씨에게 지역소개를 겸해 차량편의를 도와달
라는 청을 하게 되었다. 평소 친하게 지내던 동료
이기도 했고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내려온다는 말
에 선희씨도 쾌히 승낙했다. 그날부터 이틀동안
선희씨는 운전면허조차 없는 세남자를 차에 싣고
다니며 지역 곳곳을 안내해줬다. 두 사람의 첫만
남이었다. 그러나 모두가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이
다보니 여자 남자 따질 것 없이 그림 얘기에 취해
나름대로 재미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윤진씨의 말이다) 처음에는 그저 웃는 얼굴이 예쁜
고마운 여선생 쯤으로 생각했지요.
선희씨를 그저 그림을 그리는 동료정도로만 생
각했다는 윤진씨. 다른 생각이 없기는 선희씨도 마
찬가지였다. 그저 서울에서 내려 온 작가 한 명을
더 알게 되고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다는 것 쯤으
로 미뤄두고 다시 자신의 일상을 살아갈 즈음 서
울로 올라간 윤진씨에게 감사의 편지가 한 통 날
아들었다.
고마웠다는 인사 편지였지만 평소 글을 잘 쓰는 윤
진씨의 글은 선희씨에게 편안함을 주었다고 한다.
그 일로 인해 둘은 가끔씩이나마 반갑게 만나는
지인이 되었다. 그래봐야 서로 바쁜 생활을 하고
있는 서울과 진해 사이니 만나봐야 일년에 고작
한 두 번 정도였다. 그렇게 3년 정도의 시간을 보
낼 무렵 선희씨의 몸에 이상이 왔다. 허리가 내려
앉아 통증이 심해진 것이다. 선희씨는 방학을 이
용해 물리치료를 받기로하고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었다. 그 중 어느 하루 병원 근처에 일이 있어
인사차 선희씨의 병실을 찾은 윤진씨. 때마침 무
거운 쇠덩어리 추를 허리에 달고 척추교정을 받고
있는 선희씨의 치료 광경을 보게 되었다.
(윤진씨의 말이다)그때 충격은 말로 다 할 수없어요.
쪼그만 여자가 차가운 병원 치료대에 묶이듯 누워서 마
치 로보트처럼 되어 무겁고 커다란 쇠덩어리를 차고 누
워있으니 그 모습은 너무나 처참하다 못해 처연했어요
선희씨에게는 불편한 몸을 바로 세워주는 체형
교정 과정으로 늘 해오던 익숙한 치료였지만 윤
진씨에게는 엄청난 충격이었던 듯했다. 그 순간
윤진씨는 내가 이 여자를 돌봐주어야 한다는 생
각을 했다고 한다. 그 마음이 들고부터 윤진씨는
마음이 메여 한 발자욱도 병실을 떠날 수가 없었
다. 괜찮다며 가라고 등을 떠미는 선희씨의 말에
이리저리 핑계를 달면서 떠나지 않고 입원해 있
는 15일간을 꼬박 함께 하며 간병을 했다.
두 사람의 사이를 알 턱이 없는 병실 사람들은
윤진씨를 정성 지극한 남편으로 착각하여 모두들
선희씨를 부러워했고 처녀 총각이던 두 사람을
자기들 상상대로 이야기를 써가며 금슬이 좋은
부부로 병동의 화제가 되었다. 이미 마흔을 훨씬
넘긴 두 사람이었으니 민망함보다는 남들의 오해
에 이렇타 토를 달아 설명하는 번잡스러움이 더
복잡해 그냥 주변의 오해를 즐기기로 했다. 자연
부부인양 가깝게 있는 시간들이 많아지고 생활을
오래한 사람들처럼 서로에게 익숙해져갔다.
(선희씨의 말이다) 내가 원래 식사량이 적거든요. 그
래서 병원 밥을 남기면 이 사람이 먹다 남긴 것을 스스럼
없이 먹더라구요. 그 모습이 어찌나 감동스러운지 이 사
람하고 살아보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병실에서의 데이트는 지난 3년 오가다 짬을 내
서 만났던 시간들의 빈 공간을 채워주었다. 그리
고 어느날 자신도 모르게 선희씨의 입에서‘우리
같은 작업실에서 그림 그리며 살면 좋겠다’는 얘기
가 자연스레 흘러나왔다. 함께 있는 시간들이 좋
아 별 부담없이 내뱉은 말이었지만 윤진씨의 표
정은 무척이나 심각해졌다.
(윤진씨의 말이다) 심각했지요. 집에 돌아와 식구들
에게 말을 하니까 여동생 하나가 오빠, 그건 프로포즈
야! 하고 소리를 치더라구요
윤진씨는 이 생각 저 생각으로 꼬박 밤을 새운 후
다음날 병실로 가서 손에 끼고 있던 반지를 빼 선희
씨 손에 끼워주었다. 윤진씨 방식의 프로포즈였다.
(선희씨의 말이다) 아무 말도 없이 너무 갑작스럽게
반지를 끼워주니까 나도 좀 당황이 됐어요. 그래서 왜
나에게 주느냐고 가져가라고 하니까 저이 하는 말이 끼
다가 싫으면 한강물에 버리라고 하데요-웃음-
그 날 이후 두사람의 결혼은 이미 결정이 돼버렸
고 만남은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얘기들로 채
워졌다.
윤진씨는 한국은행 지점장을 할 정도의 능력있
는 아버지를 둔 덕에 유복한 가정에서 자라났지만
그림 그리는 것을 반대했던 아버지와의 마찰로 스
물 두살 어린 나이에 버스토큰 한 개와 붓 한 자루
를 들고 이미 집을 나와버린 터였다. 그 후 지인들
의 도움으로 겨우 물감값을 충당하고 있던 처지다
보니 생활의 모든 것은 직장이 안정돼있던 선희씨
가 맡기로 했다. 그리고 늘 함께 식지 않는 사랑
을 유지하며 그림을 그리는 동반자로 삶을 살자는
것으로 결혼 서약을 나눴다. 평생 그림 밖에 모르
고 살아 온 윤진씨에 비해 현실감이 있는 선희씨의
고민이 시작됐다. 어떻게 하면 생활에 찌들지 않
고 맘껏 사랑하며 또 맘껏 그림을 그릴 수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둘이 했던 결혼 서약은 도시에서
는 엄두도 내지 못할 꿈이었다. 그러나 안되면 되
게 하라. 문제 앞에 더욱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순
간의 위기를 지혜롭게 넘기는 것이 B형의 기질. 거
기에 결심이 서면 일단 일을 벌려놓고 보는 배짱과
추진력까지 더해지니 B형 여자 윤진씨, 과감히 지
금의 모든 현실을 내려놓고 시골로 들어가기를 결
심한다. A형의 특징은 문제 앞에 장고를 하며 있을
수있는 여러 가지 난제들을 떠올려 미리미리 대책
을 준비한 후 결심을 실행하는 타입. A형 남자 윤
진씨는 도시를 떠나자는 선희씨의 결단에 무조건
동조는 했지만 자꾸만 다가 올 미래에 대한 걱정이
앞섰다. 능력없는 자신 때문에 사랑하는 선희가 안
정된 직장도 버리고 시골 아낙을 선택한 것은 아닌
지 배려하는 마음 또한 큰 탓에 결정 후 사표까지
시원하게 던지고 발빠르게 움직이는 선희씨의 뒤
를 따르며 계속된 질문을 던졌다.
A형♂ 윤진씨의 질문 첫번째 아프면 어떻하니?
B형 ♀ 선희씨의 답변 119부르면 되지!
A형♂ 윤진씨의 질문 두번째 산 속에서 돈도 없
고 쌀도 떨어지면 어떻게 하니?
B형 ♀ 선희씨의 답변 붕어빵 만들어 팔면 되지!
A형♂ 윤진씨의 질문 세번째 사람이 안찾아와
외로우면 어떻하니?
B형 ♀ 선희씨의 답변 애초부터 기다리는 마음
을 없애면 되지!
간단하고 깔끔한 선희씨의 답변은 윤진씨의 고
민을 한 순간에 날려줬고 두 사람은 본격적인 보
금자리 준비에 들어갔다.
가야산을 유난히 좋아하는 선희씨를 위해 이
곳 구원리에 450평 남짓한 공간을 마련했다. 그
리고 결혼식을 대신하여 지난 99년 서울 <장윤진
정선희, 부부가 되기 위한 그리움 전> 이라는 결
혼기념 작품전을 마치고 두 사람은 미련없이 도
시를 떠나 가야산으로 들어왔다.
빈 땅에 컨테이너 박스를 놓고 시작된 신혼살
림. 그러나 아침마다 일어나 대지를 바라보며 함
께 살 집을 설계하고 손수 지어올리는 재미가 있
었다. 그렇게서 1년에 걸쳐 지금의 갤러리와 작업
실 그리고 살림집까지 세 개의 건물을 짓는 대공
사를 마치고 결혼 이듬해인 지난 2000년 <장윤진
정선희, 자연으로 돌아가며>라는 주제를 가지고
산정 갤러리의 개관기념전을 열었다. 갤러리 오픈
전시를 겸한 신혼 집들이 잔치로 지인들을 초청하
여 떠들썩한 축제 한마당이 되었다. 초대된 많은
사람들은 전시를 통해 자신들의 새로운 삶 터를
알리는 용기있는 모습에 격려를 보냈지만 한편으
로는 이미 윤진씨가 던졌던 세 가지 질문을 던지
며 인적드문 외진 산골 마을에서의 삶을 걱정해주
었다. 그러나 당사자인 두 사람은 이미 깔끔한 답
을 갖고 있는 터, 도시에서 떨어져나온 삶에 대해
서는 하등 문제 될 것이 없었다. 이 곳에서 사랑을
위해 그리고 작가로서 최선을 다하며 마지막 삶을
살겠다는 각오로 매일매일을 살아가니 어느덧 늘
어나는 화폭마다 가야산 자락의 아름다운 서정과
삶의 냄새가 더욱 진하게 덮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