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호 보기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이전 게시물 다음 게시물
피플&피플 - 최현태/대구불방아나운서 2009년 01월 323호
지리산 시인 이원규씨와 지리산 시인 이원규를 만나러 가는 길은
결코 쉽지 않았다.
하지만 바리데기공주가 약물을 구하러 가는 그 고초에 비
할까. 그를 찾아가는 인연들이 이 마음을 그에게
하소연 했으리라. 그래서인지 마을 어귀에 도착하면 기별하
란다. 지리산 자락 운조루 기와지붕 바라보며 서성이는데 부릉부릉 오토바이 소리와 함께
나타난 이원규시인. 오토바이 꽁무니를 쫓아 산길
을 돌아돌아 가는데 방향지시등 역할을 하는 그의
오른손, 왼손이 너무도 익숙하다.
피아산방, 사방벽면이 책으로 가득할 것이라
는, 앉은뱅이 책상이어도 정갈할 것이라는, 시인
의 작업실이려니 하고 그곳을 찾아가면 기대는 한
방에 무너진다.
‘송이송이 화주花酒를 담그고/ 피아산방에 누
우니/ 천장이 온통 구절초 꽃이요/ 꿈속마저 구
절초 꽃들이 아른거립니다........이제서야 알겠
습니다/ 노랗고 붉기만 한 노을은 노을도 아니
고/ 희고 푸르기만 한 달빛은 달빛도 아니라는 것
을....’이런 그의 시들은 도무지 어디서 쓰는 것
일까? 객을 맞는 자리에 소소한 생활 집기들이 나
와 앉아있는 것을 보면서 너와 나의 경계가, 시와
우리네 살림살이의 경계가 무너지면서 말하는 이
가 글 쓰는 이를 만나고 있다는 분별도 사라진다.
이원규 시인이 지리산에서 겨울을 맞은 지 11년
째, 그를 만나러 지리산으로 가기 전에 그의 시를
한 번 더 읽었다.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이슬의 눈으로 , 온몸이 달아오른 절정으로 , 혁명
의 이름으로, 아무 죄도 없는 나무꾼으로, 겸허하
게, 반성하러 오시라.....고 했다. 왜 이렇게 주문
이 많으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그는 단번에 “아
무 생각 없이 오라는 건데”라고 대답했다. 그때
서야 마지막 구절이 다가온다.’그러나 굳이 지
리산에 오고 싶다면/ 언제 어느 곳이건 아무렇게
나 오시라/ 그대는 나날이 변덕스럽지만/ 지리산
은 변하면서도 첫 마음이니/...그랬다. 지리산은,
그리고 이원규 시인은 넉넉한 품으로 푸근하게 맞
아주었다.
다국어판 인터넷백과사전 위키백과에 보면 그
는 대한민국의 시인이자 환경운동가라고 나와 있
다. 그렇다. 한때 가출이 출가가 되어 절집에 머문
적도 있는 그는 어린시절, 나무하고 군불 지피고
법당청소 하는 틈틈이 고시생들이 두고 간 시집을
쭈그리고 앉아 읽으며 시를 처음 만났다. 대학가서
도 전공인 경제학보다는 국문과주변을 맴돌다가
이성복시인을 만났고 재학 중 <시문학>과 <월간문
학>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지만 문학판에서 느
낀 환멸과 교만으로 시를 접었다. 하지만 결국 기
자로 또는 시인으로 글을 써서 밥벌이를 하다가
도시에 염증을 느끼고 지리산 품에 안긴 것이다.
지리산에 든 후 도법 스님 수경 스님과 인연되
어 지리산 지킴이 역할이며 환경운동에 오체투지
했다. \'무분별한 개발중심주의를 경계하라\'는 목
소리에 한마음을 보태며 새만금에서 시작된 삼보
일배는 닫힌 양심과 이기심으로 가득한 우리의 가
슴을 열게 했다. 이어진 탁발순례, 그리고 2008
년 이른 봄 운하반대 생명의 강 순례에서는 시인
이 총괄팀장으로 맨 앞에 섰다. 지난 7년간 약 2
만리를 걸었다는 그가 지금은 동면을 취하고 있
다. 봄이 오면 재개될 ‘사람의 길, 생명의 길, 평
화의 길을 찾아가는 오체투지’일정을 재정비하
고 있는 그에게 길 위에서의 날들을 어떻게 견디
었는지 물었다.
“사실 사람과의 경계가 침낭하나밖에 되지 않는
좁은 천막에서 100일이 넘도록 공동체생활을 한다
는 것이 사람을 미치게 할 수도 있어요. 서로 예민
해져서 감정이 칼날같이 서 있던 어느 겨울날 새
벽, 수경 스님께서 간이공원 화장실 변기의 누런
때를 맨손으로 닦고 계셨어요. 그 순간 마음속에
맺혔던 것들이 싹 사라지고 한마음으로 다시 시작
할 수 있었지요. 평범한 인간의 감정이었다가 순례
자임을 알아차리게 하는 일이었기도 하구요 ”
빠름과 편리함을 버리고 느림과 힘듦을 선택한
이들이 구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렇게 길 위에서의 날이 이어졌음에도 불구
하고 지난해에는 시<강물도 목이 마르다>과 산문
집<지리산 편지>를 세상에 내보였어요. 글을 쓸 수
있는 동력은 어디에서 나오는지요?-
“책상 앞에 앉으면 글이 잘 써질 것 같지만 꼭 그
렇지도 않아요. 자기 복제나 간접경험에 불과하겠
지요. 그런데 마을마다 발로 딛고 다니며 메마른
현장과 세상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들의 아픔이 내
게 위로가 되었고, 역사 앞에 저항도 하지 못하고
오랜 세월 품고만 살던 한이 위령제를 통해 녹아내
리는 것을 보면서 함께 아파하기도 했었죠. 그것들
이 나로 하여금 쓰게 만들었을거에요.”
이런 그의 이야기는 산문집<지리산 편지>에서
풀어 놓기를 ‘걷고 걷다가 문득 생각했습니다. 내
몸이 바로 움직이는 붓이요 펜이라는 것을!....봄
여름 가을 겨울, 온 세상이 거대한 원고지라면 나
는 그 원고지의 빈 칸마다 발자국을 찍으며 시를
쓰고 그대에게 편지를 씁니다.’
‘섬진강 첫 매화가 피었습니다. 망덕포구를 향
해 걷고 또 걷다가 닷새 만에 막 피어나는 매화꽃,
눈빛 선연한 그대를 만났습니다. 섬진강 매화나무
아래 쪼그려 앉아 그대의 안부를 묻습니다. 여여
하신지요?’
시인의 이런 봄 편지를 받으면 무지 행복할 것
같다.
-요즘 걷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일부러 걸을만
한 길을 찾아 나섭니다. 제주올레도 그렇고 지리
산 숲길도 그래요. 저도 한 번 걸어보고 싶기도 하
구요. 그런데 시인이 지금까지 걸어온 길들을 따
라 우리도 그냥 걸을 수 있다면 굳이 제주를 찾거
나 산티아고의 순례 길을 찾아가는 부산을 떨 필요
는 없을 것 같애요.-
“ 세상의 어떤 마을도 마을에서 마을로 이어지
는 길이 있어요. 그 길을 따라 그냥 걸으면 되는 겁
니다. 단지 숲길이든, 마을길이든 이어져야 한다
는 강박증에 매이다 보니 돈 들여 길을 만들고 있
는데 마을길을 걷다가 포장도로가 나오면 그 길을
따라가고 또 숲길을 만나고 하는 넘나듬을 즐겨야
해요. 그러다 달라지는 길에 몸을 내놓고 성찰할
수 시간을 가지는 거죠. 순례 길에 토끼비리, 개비
리라는 재미있는 길을 만난 적이 있어요. 비리는
벼랑길의 다른 이름인데 토끼와 개가 다녔다는 특
별한 길을 만나는 기쁨도 주어지구요.”
넘나들기~~ 참 좋다. 이 시대의 화두인 소통의
다른 이름일 수도 있겠다. 이 자유로운 영혼을 가
진 시인에게 어떤 시인으로, 어떤 남자로 살고 싶
으냐고 물었더니 정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살아가
는 원칙은 있단다.
“순천대학교와 실상사 작은 학교에서 아이들
에게 시를 가르치는데 그 약속만큼은 꼭 지켜야
겠고 문학적으로 대단한 성취를 이뤄야겠다는 것
은 없지만 내가 움직이고 느끼면 시는 발자국처럼
따라올 것입니다. 그리고 오체투지 같은... 세상
이 부르면 어쩔 수 없이 화답해야할 때가 오면 목
숨을 바치려 합니다. 그 나머지는 자유롭게 살고
자 합니다.”
격랑을 예감하지만 두려움 없이 나서겠노라는
시인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기축년 새해가 밝았다. 시인에게 신년, 새해...
하면 떠오르는 것으로 어떤 것이 있는지 무작위로
한번 이야기해보자 했더니 대뜸 단식이란다. 지리
산에서는 새해가 되면 일주일간 단식을 하며 정월
결사를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정작 시인은 늘 함께
하지는 않으면서 단식하는 인연들을 찾아가서 한
마디 날린다고, “지금 먹지 않으면서 위장은 비우
고 있지만 마음은 엄청 꿈꾸며 채우고 있지?”라
고, 사람들은 새해가 되면 소망을 이야기하고 계획
을 세우는데 시인은 비우자...라고 한다.
단식의 의미가 곡기만 끊는 것이 아니라 쓸데없
는 야망도 욕심도 끊자는 의미란다
그러면서 덧붙이기를 신경림시인의 산문집에
나오는 <이쯤에서 길을 잃어야겠다.>를 언급한다.
다들 길을 찾자고 발버둥치는데 이쯤에서 길을 잃
어야 한다는 선언은 이 보다 더 나쁠 수는 없다는
배수진이 아닐까, 그만큼의 여유를 가질 수 있지
않느냐며 호탕하게 웃는다. 새해라고 수선을 떨며
화려한 길과 헛꿈을 꾸는 도시사람들에게 전해주
는 지리산시인의 메시지 같다.
오토바이를 타고 지리산을 누비다 조금만 걸으
면 정상인 그곳에서 먼 산과 사람 사는 마을을 내
려다보며 누리는 행복은 그만의 것이다.
그가 보고 싶어 지리산으로 가면 그곳에서는 일
상의 흐트러짐과 계획의 무너짐으로 인하여 찾아
드는 무제한의 자유를 누릴 수 있다.
-참 자유로우세요. 이렇게 되기까지 얼마나 걸
렸나요?-
“바닥을 치면 겁날게 없어요. 지하막장에서 탄
캐던 그때를 생각하면 정신이 번쩍 나요. 그리고
외로움에 사무쳐 알고 있는 이름을 모두 불러보
던 어린 날 절집에서 절대고독의 옆얼굴을 본 것
같애요.”
미국발 금융위기로 끝없이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는 이즈음 불필요한 것을 위해 돈을 버는 대신
꼭 필요한 것만 구하기 위해 일을 하는 지리산의
이원규시인을 한번 생각해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