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과학이 나타나다
지금으로부터 5천년 전 지구상에는 문명의 형태가 뚜렷해지기 시작한다. 이에따라 학문도 싹트기 시작한다. 이집트․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는 숫자를 이용하기 시작하고 이것을 기록한 점토판이 남아 있다. 이것은 아마 피라밋을 건설하고 운하를 파는데 사용하였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농사를 위하여 천문학이 발전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 당시에 상형문자가 나타나 기록이 시작되는데 지금으로부터 3천년 전에는 현대문자체계와 비슷한 알파벳이 나타나 학문 발전의 도구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지금으로부터 2천5백년 전, 즉, B. C 5~6세기는 학문의 태동기이다. B. C 600년 경에 인도철학의 결정체인 우파니샤드철학이 완성된다. 그리고 고급종교인 불교와 자이나교가 나타난다. 중국에서는 공자가 나타나 유학의 기초를 확립하였으며 100년 후에는 제자백가가 나타나 학문에 백 가지 꽃이 피는 백화제방의 시대를 맞게 되고 추연은 음양오행설을 완성한다.
한편 그리스에서는 철학․수학과 함께 자연과학이 태동하기 시작한다. 기하학을 정립한 유크리트, 의술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 철학자 플라톤이 이때의 사람으로 학문 발전에 많은 공헌을 한다. 특히 B. C 4세기의 아리스토텔레스는 그 당시 학문을 집대성한 학자로서 논리학․생물화․물리학․형이상학․자연학에 많은 공헌을 하였으며 자연과학의 토대를 마련하였다. 이때의 물질관에 대해 탈레스는 물질의 기본을 물이라고 하였으며, 헤라클레이토스는 불이라 하였고 아낙시메네스는 공기라고 하였다. 그러다가 B. C 4세기 아리스토텔레스에 이
르러 물질의 기본은 4가지 원소 즉 지수화풍으로 집대성되었다. 그러나 아직 이들 물질이 모든 존재의 기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플라톤은 만물의 근원을 ꡐ이데아ꡑ라고 하였으며 우주의 삼라만상은 이 이데아의 표상이라고 하였다. 영혼과 물질은 구별되고 영혼은 영구불멸하여 유전한다고 생각하여 혜라클레이토스는 유전사상을 제창하였다.
이렇게 그리스를 중심으로 태동하였던 학문은 B. C 4세기 알렉산더 대왕의 동방원정으로 이집트․아랍․인도 등으로 교류된다. 그리고 그리스 학문은 그후 일어난 로마제국으로 이어져 계속 발전한다. 그리스 화문이 형이상학적이었다면 로마의 학문은 실질적이어서 토목․건축이 발전하였으며 헤론은 많은 기계를 제작하였고, 갈레노스는 방대한 의학저서를 남겨 해부학․생리학의 기초를 세웠으며, 프톨레마이오스는 천문학을 집대성한 「알마게스트」를 저술하였다. 이 알마게스트에는 우주의 천체가 지구를 중심으로 운동한다는 천동설을 주장하였다.
이렇게 그리스에서 발달한 학문이 로마시대로 이어져 발전하다가 A. D 6세기 정도가 되면 쇠퇴하기 시작하여 유라시아 대륙은 오랫동안의 암흑시대로 돌입한다. 그리고 학문의 중심은 점차 아랍지역으로 옮겨가 아랍학문의 전성시대로 접어든다.
불교의 변천과 삼장의 성립
불타는 각성 후 45년 동안 중생구체에 매진하였는데 그동안 많은 교설을 남겼다. 불타가 입멸한 후 이들 교설을 정리할 필요가 있어 마하가섭이 중심이 되어 교법과 계율을 결집시켰다. 이들 내용은 「아함경」으로 전해온다.
불멸 후 단합하여 유지되던 불교 승단은 사회적 변천으로 법의 해석과 계율의 완화 문제로 점차 보수와 진보사이에 괴리가 생기기 시작하였고 불멸 후 100년 경에 보수적인 상좌부와 진보적인 대중부로 나뉘게 된다. 이러한 부파가 시간이 흐를수록 심화되어 불멸 후 300여 년 경 즉, B. C l세기 때는 이런 부파가 20여 개로 늘어났다. 불멸 후 100여 년경부터 이때까지를 부파불교시대라 하고 이 이전을 원시불교시대라고 한다.
불교는 부파불교시대를 거치는 동안 점점 이론에 빼져들면서 난해하고 힘든 불교가 되어 갔고 그래서 점차 대중들에게서 멀어져 갔다. 이때 불교의 진정한 정신을 되찾아 대중들에게 친밀한 불교를 만들려고 했던 운동이 일어나는데 이것이 대승불교(大乘佛敎)이다. 이 대승불교는 중국을 거쳐 극동지역에서 꽃이 핀다. 대승불교에서는 자리이타(自利利他)적인 보살을 이상적인 인간상으로 추구한다. 이에 비하여 각자의 열반을 최고의 이상으로 삼는 부파를 소승이라 부른다. 동남아시아 지역의 불교가 이 부류에 속한다.
부파불교시대에는 각 부파들이 각자 교법에 대해 독자적으로 연구하여 불교에 분파를 초래하기는 하였으나 이 시대를 통해 다양한 이론이 전개되었다는 수확을 낳았다. 이 시대를 통해 종전의 교법, 계율에다 이에 대한 연구인 논(論)이 추가 되어 교(敎)․율(律)․논(論)의 삼장이 성립되었다. 이때 만들어진 각 부파의 삼장들은 거의 유실되고 없으나 두 부파의 것이 전해전다. 특히 세친(A.D 320~400)이 저술한 30권의 구사론이 그 당시 한 부파의 교리를 잘 집약해주고 있다.
여기서 관심이 있는 것은 논장의 내용이다. 교장의 내용은 불타가 설하신 기본 교리에 관한 것이고 율장은 계율에 관한 것인데, 논장은 이들의 해석과 그 기본이 되는 이론에 관한 연구들이다. 그래서 이 논장의 내용이 과학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보는 것이 우리들의 관심이다. 논장은 부파불교시대를 거치는 동안 처음 만들어졌는데 이것은 불교이론의 기초를 이룬다.
이 논장이 만들어질 때 그 당시의 과학이론을 흡수하였으리라 상상하는 것은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특히 물질은 무엇으로 되어 있으며 세계는 어떻게 생겼고 생명이란 어떻게 이어져 가느냐 하는 이론은 바로 그 당시의 과학이론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물질의 기본은 4대 즉 지수화풍이라는 이론은 그 당시 희랍과학이 정립한 이론과 일치한다. 그리고 부파불교시대에 정립된 수미산 세계관, 즉 허공에 중생의 업으로 대기층이 생기고, 또 그 위에 물이 쌓여 수륜이 생기며 그 위에 딱딱한 황금층이 생기는데 그 황금층의 표면이 땅이다. 이 땅위에 수미산이 솟아 있는데 수미산 정상에는 33천이 있으며 수미산 주위에 4대륙이 있어 지옥도 있고 향내나는 산도 있는 등 각종 세계가 있다는 이런 세계관은 그 당시 지구를 평편하게 보고 그 위에 별들이 떠 있다고 보는 소박한 세계관에 종교적 요소를 덧붙인 것으로 볼 수 있다.
생명관 역시 생명이란 육체와 영혼이 있고 영혼은 유전한다는 생각은 그 당시 이론을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
바람직한 관계
불타는 생존당시 허황한 논쟁을 금했는데 부파불교시대를 거치는 동안 처음으로 물질관, 우주관, 생명관을 정립하게 된다. 이것은 그후 불교이론에 깊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부파불교시대를 지나 대승과 소승불교시대에 들어와서 많은 경전이 만들어졌으나 물질관, 우주관, 생명관에 대해서는 별로 변동이 없다. 이것은 종교는 행위가 더욱 중요하며 불타가 직접 설하신 교법을 더욱 중요하게 생각하여 이의 기초이론에는 무관심하여 왔다고 해석될 수도 있다. 그러나 기초이론이 발전하지 못하면 결국 교리발전이 어려워진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결코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다.
기독교에도 불교의 교장에 해당하는 성서가 있고 이 성서를 해석하고 교리의 기본이론에 관한 논장이 많다. 기독교는 교리를 정리하면서 우주관은 그 당시 ‘알마게스트’에 정립된 우주관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이것을 바탕으로 교리를 발전시켜 그후 거듭된 과학자들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천체가 지구를 중심으로 돈다는 천동설을 바꾸지 않았다. 그 결과 천동설의 오류를 범하기까지 했다. 이것은 종교와 과학사이의 알력이 얼마나 어리석은가 하는 좋은 예가 된다.
자연과학은 부파불교시대 이후 많은 변화가 있어왔다. 이 부파불교시대의 자연과학은 동양이나 서양을 구별없이 주로 자연현상의 관찰에 의존한 지식이 주류를 이루었다. 그래서 체계적 이론보다는 백과사전식 지식이 대부분이었다. 이것이 13세기 르네상스 문예혁명을 지나면서 자연과학의 방법론이 발달하고 근대자연과학이 비약적 발전을 이룩하게 된다. 1543년을 그 기점으로 삼는다.
코페르니쿠스는 1543년 그의 사후 그 동안의 관찰과 연구의 결과로 지동설을 발표하게 된다. 그동안 우주의 운동에 대해서는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이 정설로 되어 있었다. 코페르니쿠스는 오랜 관찰을 통해 더욱 합리적인 지동설을 발표하였는데 이것을 코페르니쿠스의 혁명이라고 부른다. 이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은 그 동안 모든 분야을 지배하고 있던 신학으로부터 자연과학의 해방을 의미하는 것으로 큰 뜻을 가지고 있다.
지동설은 그 후 갈릴레오의 연구를 거쳐 17세기에는 뉴튼의 가장 획기적 역작인 ‘프린키피아’를 통해 고전 물리학이 기반으로 다져진다. 물리학은 그 후 계속적인 발전으로 우주의 물체운동에 대한 보다 정확한 이론을 제시하고 있다. 그리하여 이 우주는 어떤 절대자의 의지에 지배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법칙(물리학적 이론)에 의해 움직인다는 인식이 일반화되기 시작했다.
한편 화학 분야에서는 18세기 중엽에 라보아제가 그 동안의 이론을 깨고 연소이론을 정립하고 달톤이 물질이 기본원소는 원자라는 원자가설을 세우면서 화학혁명이 일어난다. 그 후 끊임없는 연구로 물질의 기본이론을 정립하였다. 생물분야에서도 19세기 중엽에 다윈이 생물의 종은 적자생존의 원칙에 따른다는 자연선택설을 주장하면서 인간도 특정 종류가 아니라 생물계의 한 종류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상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나아가 왓슨과 크릭이 생명체의 비밀인 유전인자의 구조를 밝혀내면서부터 생명의 신비도 밝혀지고 있다.
이와같이 17~18세기 근대자연과학이 기틀을 잡으면서 우주, 물질, 생명과 자연현상에 대한 보다 뚜렷하고 명쾌한 해답을 주고 있다. 이것은 곧 자연과학은 자연현상에 대한 보다 참된 지식을 제공하고 있고 현대는 자연과학이 다른 어느 학문보다 두드러진 역할을 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다른 여러 학문들이 과학적 지식을 받아들이고 과학적 연구방법을 이용하고 있으니 말이다.
자연과학이 이렇게 발전하고 자연과학이 오히려 종교교리의 진리성을 다루면서 종교와 자연과학이 알력은 자연스레 일어나게 되었다.
기독교의 경우 이런 알력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과학의 지식이 쌓이기 전인 중세기 이전에는 알력이 생길 때마다 종교의 판정승으로 끝났다. 그러나 이것도 16세기 지나면서 그 흐름이 달라져 과학이 우세해졌다. 그래서 점점 과학적 지식을 받아들이고 오히려 이런 과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교리를 발전시켜 가고 있다.
불교와 과학은 기독교가 겪었던 극심한 알력은 없었으나 그렇다고 불법과 과학이 합치한다는 것과는 다르다. 불교는 진리종교이기 때문에 오히려 과학과의 알력이 일어날 소지가 많다.그래서 불교는 과학과 상호보완적인 관계를 유지해 나가지 않으면 안된다. 아인시타인은 이런 관계를 ꡐ과학이 없는 종교는 장님이며 종교가 없는 과학은 절름발이이다ꡑ라는 말로 설파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