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표율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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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의 등불을 이어온 이 땅의 스님들 - 편집실
1990년 11월 105호
스님은 전주 벽골군(碧骨郡) 도나산촌 대정리에서 진내말(眞乃末)의 아들로 태어났다. 본래 스님의 집안은 백제 귀족출신으로 그 당시에도 완산주 지역의 지방귀족으로 그 아버지는 5두품에 해당되었다.
스님은 성덕왕 17년인 서기 718년에 태어났으며 12세 되던 때에 금산사의 숭제(嵩濟)법사에게 나아가 출가하였다.
금산사에서 10여 년 간의 기초적인 수행을 끝내고 더 높은 수행을 위하여 스승의 말씀을 좇아 명산을 두루 참방한 뒤 선계산(仙溪山) 불사의암(不思議庵)에 머물면서 정진을 3년간 하였으나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
이에 발분(發憤)하여 바위 아래 몸을 던지니 문득 청의동자가 손으로 받들어 돌 위로 올려놓았다. 율사는 다시 분발하여 21일을 기약하고 밤낮으로 부지런히 수도하고 돌로 몸을 두드리면서 참회했더니 3일만에 손과 팔뚝이 부러져 땅에 떨어졌다. 7일이 되는 날 밤에 지장보살이 손에 금장(金杖)을 흔들면서 나타나 그를 도와주니 손과 팔뚝이 다시 전과 같이 되었다.
그에게 보살이 마침내 가사와 바리때를 주니 율사는 그 영험한 감응에 감동하여 더욱 더 정진했다. 21일이 다 되니 곧 천안(天眼)을 얻고 도솔천중들이 오는 모양을 볼 수 있었다. 이때 지장보살과 미륵보살이 앞에 나타나더니 율사의 이마를 만지며 말했다.
ꡒ착하구나 대장부여 ! 이처럼 계를 구하기를 몸과 목숨까지도 아끼지 않고 간절히 참회하는구나.ꡓ
지장보살은 계본(戒本)을 주고 미륵보살은 목간자(木簡子) 두 개를 주었는데 하나에는 아홉째 간자, 다른 하나에는 여덟째 간자라고 씌어 있었다. 미륵보살이 율사에게 말했다.
ꡒ이 두 간자는 내 손가락 뼈이니 곧 시(始)와 본(本)의 두 각(覺)을 이르는 것이다. 또 이 아홉째 간자는 법이고, 여덟째 간자는 신훈성불종자(新薰成佛種子)이다.ꡓ
율사는 교법을 받은 후에 금산사를 세우고자 하여 산에서 내려왔다. 도중에 대연진(大淵津)에 이르렀을 때 문득 용왕이 나오더니 옥가사를 바치고 8만 권속을 거느리고 그를 호위해서 금산사로 가니 사람들이 사방에서 모여들어 며칠 안에 절이 완성되었다.
이에 미륵보살이 감동하여 도솔천에서 구름을 타고 내려오더니 율사에게 계법을 주었다. 이에 율사는 시주를 권하여 미륵장육상(彌勒丈六像)을 만들고 또한 미륵보살이 내려와서 계법을 주는 모습을 금당 남쪽 벽에 그렸다. 상(像)은 갑진년 6월 9일에 완성하여 병오년 서기 766년 5월 1일에 금당에 모셨다.
이밖에도 스님에게는 신기한 일이 많았는데 특히 속리산 법주사의 창건설화와 금강산 발연사(鉢淵寺)의 점찰법회 등의 기록은 진표율사의 위대성을 전해주는 중요한 사료(史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