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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어사 무비(無比)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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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계삼소 - 이철순 1990년 11월 105호
무비스님은 선객(禪客)이면서 학승(學僧)이다.
스님은 이 두 가지의 삶을 누구보다도 철두철미하게 살아온 분이다. 어느 때, 어떤 일을 하든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 철저하게 사는 게 스님의 삶이다. 그러나 결코 어떤 일이든 억지로 하지 않는 것도 스님의 신념이다.
그래서 스님은 자신의 삶을 ꡐ수연무작(隨緣無作)ꡑ의 삶이라고 표현한다.
스님을 처음 뵙는 순간, 장부(丈夫)로서의 기개와 온화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철저하게 살아온 스님의 삶을 무언으로 말해 주는 것이리라.

스님이 불법과 인연을 맺은 것은 마을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절이 있었는데, 그곳에 자주 들르면서 시작되었다.
어련 나이였는데도 불구하고 스님들의 불교 이야기를 들으면 눈이 번쩍 뜨여, 자신도 그런 높고 깊은 불교공부를 하고 싶은 생각이 바로 출가의 적접적인 동기가 되었다. 스님은 열아홉 한창 나이에 부산 범어사에서 여환(如幻)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스님이 출가하던 시절은 비구․대처승 간의 대립이 극심하던 때라 절을 지킬 비구스님들이 절대적으로 부족하였다. 스님은 수계 후, 잠시 범어사에 머물다가 곧바로 영천 은해사(銀悔寺)로 가게 되었다.
육십 년대 초엽, 그 당시만 하여도 요즘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절집 살림이 어려웠다. 특히 은해사는 빈곤, 그 자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궁핍했다고 스님은 회상한다.
ꡒ강원의 학인 신분으로 지내면서 절 살림이 몹시 어려워 날마다 탁발을 하러 다녔어요. 매일 산에 가서 나무를 두 짐씩이나 해 오기도 하고, 때로는 땔감을 구하기 위해 형편이 나은 이웃 절에 가서 일을 해 주고 그 품값으로 솔가지를 얻어 오곤 했어요.
큰 방에서 30여 명의 대중이 거처 했는데 이불이라곤 초라한 방석 세 개가 고작이었어요. 반찬이 부실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어느 여름 한철 동안은 쌀 한 톨 구경 못하고 완전한 보리밥으로 연명하기도 했어요ꡓ
말 그대로 찢어지게 가난했던 시절을 지내오면서 어렵게 공부했던 스님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ꡐ요즘은 건강을 따져 일부러 보리밥을 먹는다고 야단들인데ꡑ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를 두고 격세지감(隔世之感)이라고 한다던가. 스님의 은해사 시절 이야기는 계속된다.
ꡒ그때는 공부를 하고 싶어도 시간이 없어서 못했어요. 시간을 금싸라기처럼 아끼고 쪼깨서 일하는 틈틈이 공부했어요. 하루 일과가 시작되기 전에 그날 공부할 것을 종이에 적어서 허리춤에 차고 일하러 갖어요. 일하는 사이 사이 쉬는 시간에 쪽지를 들여다 보고 입으로는 외우면서 일했던 기억이 나요.그래도 아무 불평없이 모두들 열심이었지요. 은해사에서 보낸 값진 시간들은 인생에 많은 보탬이 되었고, 내 중노릇의 밑거름이 되었어요ꡓ
ꡐ궁(窮)하면 통(通)한다ꡑ는 말이 있듯이 어려운 환경 속에서 정진은 오히려 향상되는 게 아닐까. 물질적 풍요가 오히려 정신적 나태를 부채질하는 요즘의 현실이고 보면 말이다.

스님은 무슨 일이든 시작하면 뿌리를 뽑고야 마는 성품이다. 이는 매사에 기초를 튼튼히 해야 바로 설 수 있다는 스님의 평소 생각에서 비롯된다.
은해사에서 만 삼 년을 살고 나와 스님은 그곳에서 못다한 공부를 계속하기 위해서 해인사 강원에 들어갔다. 강원을 졸업할 즈음, 모두들 떠나갔지만 스님은 일주문도 나서지 않고 곧바로 해인사 선방으로 올라가 10여 년을 전국의 선문(禪門)을 두루 순례하면서 선방 수좌로서의 본분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동산․효봉․경봉․전강․춘성․향곡․구산․생철․범용스님 등 회상(會上)을 열고 있는 당대의 대 선지식들을 빠지지 않고 찾아가 한 철 이상씩 지내면서 가풍을 익혔다.
해인사 선방에서 보낸 처음 결제기간 동안은 그야말로 뼈를 깎는 아픔을 감내하면서 용맹정진했다. 그때의 수행담이라고 하시면서 한 토막 들려주셨다.
ꡒ그때는 세 시간 밖에 자지 않고 공부했어요. 매일 열두 시가 넘어야 잠자리에 들곤 했지요. 졸음이 너무 엄습해 와서 목에 끈을 걸어서 천정에 매달아 놓기도 했어요.ꡓ
이렇게 다져지기 시작한 스님의 참선 공부는 송광사 문수전에서 특별한 계기를 맞는다.
ꡒ송광사 문수전에서 공부할 때인데 하루는 예불을 드리려고 관음전엘 갔어요. 전기불도 없는 시절이라 법당문을 열고 짐작으로 더듬어서 성냥을 찾아 불을 켜는 순간, 지금까지의 어둠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을 보았어요. 그때, 어둠이라고 하는 것이 본래 있는 것이 아님을 체험했어요. 어둠이 본래 있는 것이라면 빛에 의해 사라질 리가 없다는 이론을 확연히 깨달을 수 있었어요.
흔히 ꡐ번뇌본공(煩惱本空)ꡑ이라고 말하는데, 그 순간 번뇌라는 것은 실존하는 것이 아니라는 진리를 체득할 수 있었어요. 본래 없는 것을 무지와 착각에 의하여 있는 것으로 여길 뿐이지요. 깨닫거나 깨닫지 못하거나 간에 번뇌는 본래 없는 것 아니겠어요.ꡓ
스님은 눈 뜬 사람에게나 눈 감은 맹인에게도 태양은 항상 빛을 발하여 비추고 있는 것처럼 불성과 번뇌의 관계 또한 같은 이치라고 부언해서 설명하신다.
스님의 두번째 체험 또한 송광사에서 얻은 것이다.
ꡒ한번은 잠을 자면서 꿈을 꾸었어요. 꿈 속에서 여러 가지 현상들을 보았는데 꿈을 깸과 동시에 잠을 꼈어요. 잠을 깨고 나니 꿈 속에 있던 모든 현상들이 동시에 깨어남을 느낄 수 있었어요. 나 혼자만 꿈속을 빠져나온 게 아니라 꿈속에서 보았던 온갖 것들도 꿈을 깸과 동시에 깨어난 것이지요.ꡓ
승가에서 흔히 진리라고 일컬는 것들을 스님은 꿈으로 직접 체험하면서 말할 수 없는 기쁨을 맛보았다고 한다.
때때로 ꡐ부처님은 성불했는데 왜 나는 하지 못할까ꡑ하는 의문을 갖는다. 이런 의문은 결국 자신의 입장에서 본 견해이다. 부처님의 눈으로 보면 중생은 이미 성불이 된 상태인데, 중생이 어리석어 그것을 모르는 것이 아닐까.
스님은 이렇게 선수행을 하는 사이 사이에도 경학(經學)공부에 힘썼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한동안 수원 용주사에 있었던 역경연수원에서 탄허스님을 모시고 공부하기도 했다. 그래서 스님은 탄허스님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고 그 법맥을 이은 분으로 교계에 잘 알려져 있다.
화엄경을 비롯하여 사교․사집 등의 불교 역경사업에 남다른 관심과 안목을 갖고 헌신적으로 일한 분이기도 하다.
이처럼 스님의 삶은 선수행과 경전공부를 철저히 병행하면서 살아온 삶이다. 남들은 한 가지도 하기 어려운데 스님은 그 둘을 웬만한 ꡐ경지ꡑ까지 해 마쳤으니 참으로 존경스러운 마음에 고개가 숙여진다.
스님이 그렇게 공부한 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을 것 같아 여쭈었더니,
ꡒꡐ선시불섬(禪是佛心) 교시불어(敎是佛語)ꡑ라는 말이 있듯이 부처님의 마음과 말이 본래 둘이 아니에요. 마음 없이 말이 나올 수 없고, 말은 곧 마음의 표현이므로 두 가지를 병행하며 공부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 했어요. 다시 말하면ꡐ정(定)은 곧 선(禪)이고 혜(憲)는 곧 교(敎)ꡑ에 해당되니 그 두 가지를 함께 공부해야 함은 당연한 귀결이 아니겠어요.ꡓ

스님은 그동안 통도사․범어사에서 강사직을 역임했으며, 그밖에 해인사․중앙승가대학 등에서 강의를 맡기도 했다.
스님이 하신 또 하나의 빼놓을 수 없는 치적은 총무원에 최초로 교육부를 신설(1980년)하여
출가자들이 단일계단에서 수계할 수 있도록 제도화한 것이다.
이 제도는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이런 일을 하면서 교육부장, 교무부장, 종회부의장 등 종단의 소임을 맡아 보기도 했다.
이야기를 돌려 스님께 승려교육에 관해 질문을 드렸더니,
ꡒ승려들의 교육목표는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수행중심이 되어야 해요. 요즈음은 교육, 교육 하다보니 잘못 인식되어 지식의 습득이나 기능을 익히는 게 교육인 양 착각하는 수가 많아요. 그래서 승려들의 사상이 확립되어 있지 못한 수가 많은데, 몸으로 실천하는 수행력이 부족하니까 사상이 확립될 수 없는 것 아니겠어요. 행과 앏이 일치될 때 비로소 올바른 사상이 깃들 수 있다고 생각해요.
불교에서 학(學)이란 계(戒)․정(定)․혜(慧) 삼학을 말하는데, 계․정․혜 삼학이란 지식을 위한 학(學)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앞으로 수행중심의 교육이 이루어지려면 먼저 우리 스스로 수행중심의 환경을 만들어야 해요. 또 한 가지, 완벽한 교육이라고 할 때 사회성이나 시대성을 도외시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해요. 현실감이 결여된 교육은 결국 절름발이 교육이 되고 말지요.ꡓ
스님은 얼마 전에 중국을 방문한 적이 있다면서 그곳 불교학원에서의 교육과정을 관심있게 살펴보고 놀란 점이 많다고 한다.
ꡒ영어와 일어는 필수과목으로 되어 있고,ꡐ경(經)ꡑ 중심의 공부가 아니라 ꡐ논(論)ꡑ 중심의 공부를 위주로 하고 있었어요. 이것은 세계성과 함께 지극히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것에 초점을 맞춘 것이라고 보여졌어요. 세계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기본을 닦으면서 불교의 심오한 가르침을 펴야한다는 것을 감안해서 체계있게 짜여진 교과과정을 학인들에게 가르치고 있었어요. 현재 우리의 승려교육은 철저하게 수행중심도 아니고, 현실에 발맞추려는 교육도 이루어지지 않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어요. 앞으로 승려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수행은 물론이거니와 시대성과 사회를 감안하여 이런 분야의 공부도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 두 가지 점이 이원화되지 않고 수행과 연결되는 체계 안에서 교육과정을 짜고, 교육환경이 만들어졌으면 하는 바람이에요.ꡓ
스님이 말씀하시는 교육이론은 어떻게 보면 너무 이상적인 것처럼 보인다. 누구나 꿈은 이상을 지향하는 쪽으로 꾸게 마련이다.
이런 스님의 꿈이 우리 승단에도 속히 이루어지길 염원하면서 스님이 계획하고 있는 일을 여쭈었더니 그것도 꿈이라고 웃으시며 말씀하신다.
ꡒ승가대학이나 강원, 동국대 등을 나온 승려들을 재교육시키는 전문 연수원을 구상 중에 있어요. 말하자면 대학원 과정이 되는 셈인데, 강도 높은 훈련과 전문적이고 세분된, 심도 있는 교육을 통해서 강사․포교사․행정승 등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지요. 이런 교육을 받은 사람이 늘어갈수록 우리 불교의 질도 높아지리라 믿어요.
다른 한편으로 필요한 자료를 제공할 수 있는 자료실을 동시에 운영하고 싶어요. 이런 기구를 만드는 일은 뜻있는 사람들이 힘을 모아야 할 거예요.ꡓ
최근에 스님이 꾸준히 하시는 일이 하나 있다. 그것은 자칭 ꡐ일지경(一紙經)ꡑ이라 일컫는 한 장짜리 법공양문을 만드는 일이다. 절을 찾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져가서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기존에 나와 있는 많은 불교 출판물이 대부분 불교도인 회원에게 보내지고 있음을 안타깝게 생각하여 시작하였다고 한다.
ꡒ이제 불교 언론도 비불교인들에게 부처님의 말씀을 전할 수 있어야 해요. 내가 하는 일이 비록 실날 같은 작은 일이지만 이런 인연으로 불교를 접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된다면 더 바랄 게 없겠어요. 특히 관광 사찰을 운영하는 곳에서는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해요.ꡓ
이야기를 마치고 스님은 열여덟번째로 만든 일지경을 내밀면서 해인사에 가면 바로 이 운동을 실천하라고 힘주어 말씀하셨다. 긴 시간 동안 대담에 응해 주신 스님께 삼배를 올리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발길을 돌렸다.

글/이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