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인사에서 성주 방향으로 가야산을 끼고돌아 경남북을 잇는 산도로를 따르다보면 산허리 굽이치는 마을 아래로 고령군 덕곡으로 들어서는 푯말이 보인다. 그 길을 따라 산골 마을로 들어서는 길목, 숯굽는 연기가 제법 운치를 더하는 ‘백운동 참숯가마’를 만난다.
이 곳에서 9년째 숯을 굽고있다는 쉰 살 노총각 유흥식씨(55세). 벌겋게 달아오른 숯가마 앞에서 숯장이 유씨가 들려주는 인생 유전을 둘어본다.
일주일에 한번씩 1톤이 넘는 생나무를 들고 나르며 숯을 굽는 일은 아무나 할 수없는 힘든 일로 웬만한 힘을 갖고는 엄두도 못낼 일이다. 그러나 500키로그램이나 되는 커다란 통나무를 혼자서 일으켜 세울 정도로 괴력에 가까운 힘을 지녔다는 숯장이 유흥식씨에게는 숯굽는 일이 오히려 감사하다.
넘치는 힘을 그렇게라도 소모시키지않으면 세상 향한 울분에 참던 주먹질이 어디로 나갈지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내 친구 중에 불경 공부를 열심히 하는 친구가 있어요. 공부를 많이 한 똑똑한 친구인데 그 친구 말이 내가 제일 무섭답니다. 내 마음에 담긴 화가 언제 이 주먹으로 실려나갈지 모른다네요...허허”
그러나 스무살 무렵 주먹질 한번으로 사람을 크게 다치게 한 후부터는 사람 앞에서 쓰는 주먹만큼은 자제하며 살아왔다는 유흥식씨.
“스무살 쯤인듯 싶어요, 그날도 아무 생각없이 친구들과 어울리다가 화가 나서 어떤 사람을 쳤는데 한방에 쓰러지더라구요. 안 일어나길래 엄살인가보다 했는데 친구 한 명이 놀란 표정을 지으며 죽은 것 같다는 겁니다. 당황해서 누워있는 사람을 흔들어 보니 겨우 숨이 돌아와 살아나더 라구요. 그 사람이 살아있다는게 어찌나 감사하던지...그날 이후 다시는 사람을 때리지 말자고 결심했어요. 내가 때리면 사람이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차라리 맞아주기로 한 겁니다. ......그게 납니다.”
스스로를 힘 쎈 바보라고 부르며 씁쓸하게 웃는 그의 눈가에는 세상을 살아내려는 지혜가 서려있는 듯했다.
속 모르는 사람들은 힘 좋고 순한 사람이라고들 하지만 한 대만 때려도 상대방이 죽을 만큼 큰 힘과 강한 주먹을 가진 탓에 억울해도 일단은 참는게 습관이 돼버렸고 그러다보니 속은 숯처럼 까맣게 타들어가버렸다.
넘치는 힘은 없느니만 못한 것일까? 어린시절치기어린 마음이지만 ‘정의, 인내(正義,忍耐)’라고 새겨넣은 팔뚝 문신의 글귀만큼은 솟구치는 힘을 누를 수 없어 세상을 바르게 이끌고 싶었던 패기어린 젊은 시절의 기상과, 동시에 세상과 부딪치지 않고 살아내려는 그의 노력이 그려온 평행선을 보여주는 듯했다. 때리면 맞고 시키는 대로 들어준다는 속 좋은 사람, 유씨. 자신을 죽이고 세상을 살다보니 마음 공부를 절로 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외롭다고 사람들에게 매달려서 마음주면 대부분 마음 허전한 일들이 생기더라구요 그러나 일은 매달리면 끝이 보이고 최고라는 소리도 듣게되니까 자꾸 일에 매달리게 되더라구요. 특히 뭔가 배우려고 하고 시작하면 또 끝장을 보는 성격이에요. 그래서인지 그간 뭔 일을 해도 일 못한다는 소리는 듣질 않았어요.”
숯을 굽는 일은 9년 전 단지 힘이 좋아 힘든 일을 마다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맡겨진 것이지만 지금은 기술에 있어서도 전국 제일의 숯쟁이가 무색할 만큼 자신감이 생겼다. 처음 그에게 숯굽는 기술을 가르쳐 준 사람은 한평생을 숯장이로 살아왔다는 45년 경력의 강원도 사람이었다. 워낙 새로운 것을 배우기 좋아하는 성격 탓에 유씨는 신이 났고 그 사람을 사부라고 부르며 서너달을 쫓아다녔다. 그러나 사부는 어느 정도에서 가르침을 멈추고 결정적인 몇가지의 기술은 내어놓지 않은채 어느날 불쑥 숯굴을 떠나버렸다.
그 일은 사부라고 모시며 정성을 들였던 유씨의 마음에 커다란 배신감을 안겨주게 되었고 다시 세상 사람들에 대해 마음 문을 닫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배움의 끝을 보지 않으면 답답하여 견디지 못하는 집요함이 있기에 결국 지난 9년간, 나홀로 숯굴과 씨름하며 독학으로 지금의 숯굽는 기술을 터득해 냈다.
나무 본래의 모습을 잃지 않으면서도 단단하여 쇳소리가 나고 표면에 윤기가 흐르는 게 좋은 숯을 고르는 법. 이를 만들기 위해서는 제일 먼저 좋은 나무를 골라야 한다.
겨울철 생나무가 가장 좋은 재료가 된다. 두번째는 숯굴에 빼곡하게 나무를 쌓는 일이다. 어떻게 나무를 쌓아서 서로간의 공기 흐름을 만들어 내는가에 따라 또한 질 좋은 숯을 만들어낸다.
세번째는 불을 때는 일인데 이는 날씨와 당일 쓰는 나무의 종류 등 순간의 판단력으로 좌우되는 것들이기에 오랜 노하우를 가지고 순간순간 감각적으로 불을 지피지 않으면 나무들은 그만 제 형태를 잃고 부서지거나 하얀 재로 변하기 일쑤다.
일단 나무에 불씨가 지피면 공기구멍을 조절하여 타는 속도를 조절한다. 너무 빨리 타도 재가 되고 너무 늦게 타도 숯에 강도가 떨어진다.
이과정은 순전히 굴에서 나는 연기를 보고 공기구멍으로 조절한다. 연기가 멈추면 얼른 공기구멍을 막고 가능한 한 빠른 시간 안에 벌겋게 달아오른 숯을 꺼내 밀봉하여 불기운을 꺼버린다.
이렇게 일주일에서 열흘간을 꼬박 숯굴을 지키며 숯을 굽는다.
“모든게 알고나면 별개 아니지만 알기까지 과정이 그렇게 힘들 수가 없어요. 저도 이런 저런 체험과 실험을 통해 9년 걸려 알아낸 거니까요.
그런만큼 별거 아닌 기술에도 기술자들은 모두자기 기술에 애착을 갖게되는데 저는 그렇지 않더라구요. 배우고 나서 최고라는 소리 한번 듣고 나면 더 이상 집착하는 마음이 없어지고 새로운 일을 또 찾고자 떠나요. 매번 그랬어요. 그러다보니 여러 일에 종사하게 되었고... 인생이 편할 날이 없지요”
내 것을 갖고 삶을 안정되게 만들고자하는 마음이 집착을 만든다고 했던가. 그러나 갖고있는힘조차 맘껏 쓸 수없는 현실이 더욱 끝장을 보고 마는 성격을 부추겼는지 또 그 일을 정복해서 최고소리 듣고나면 더 이상 흥미도 미련도 없어져 버리는 성격 탓인지, 유씨에게 있어 내 것이라는 것은 그렇게 큰 의미가 없다.
더구나 마음을 온전히 내어 사랑하던 여자에게 가장 큰 상처를 입고 부터는 삶을 안정되게 살아내고자 하는 보통사람들의 평범한 행복에 대한 집착에서는 이미 마음이 멀어져버렸다.
“젊어 한때 10년을 살았던 여자가 있었지요. 둘이 너무 좋았는데 아이가 생기질 않더라구요. 하도 애를 바라길래 그 여자를 기쁘게 해주고 싶은 마음에 동생과 의논하여 새로 태어나는 조카 를 양자 입적시키기로 했지요.
애기가 태어나는 날 나는 그 아이를 기다렸다가 바로 받아서 오토바이에 싣고 아내에게 달려갔어요. 참 어리석은 행동이란 것을 후에 알았죠. ”
인간의 마음과 생명의 의미같은 복잡한 생각은 할 수도 없었다. 단지 사랑하는 여자가 아이를 갖고 싶어하면서도 못 낳으니 동생 아기라도 데리고 가서 그 여자를 기쁘게할 생각뿐이었다. 물론 깜짝 놀라게 해줄 마음으로 아기를 준비하는 과정은 비밀로 했다. 갑작스런 선물이 더 큰 기쁨을 줄거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녀의 기쁨은 곧 둘의 행복을 완성시키리라는 기대가 있었다.
그러나 현실은 유씨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쪽으로 흘렀다. 아내는 믿지 않았다. 밖에서 따로 본 내 자식을 입양해 온 듯 속였다는 생각을 하는 듯했다. 내 마음의 소박한 진실은 그녀의 마음 바깥에 존재할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집에 가보니 아기가 보이질 않았다. 아내는 “할머니가 와서 친정집에서 놀다
돌려보내겠다고하고 데려갔어요”라고 했다. 무조건 그녀의 말을 믿고 기다렸다. 며칠 지나 아기가 병원에 입원해 있는 것을 알았다. 주체못하게 커져만 간 그녀의 의심이 핏덩이를 던져버리게 했고 아기는 머리가 깨져 생명까지 위독할 지경이 되어 병원에 입원해 있었던 것이다.
“인간이 어떻게 그럴 수있나요. 그것도 내가 사랑하는 여자가....내 집에서 벌어진 그 엄청난
사건을 나만 며칠 모르고 지냈고 아기가 사경을 헤매는 그 시간에 나는 사랑하는 여자의 말이라고 무조건 믿고 웃으며 지냈다는 말입니다. 나도 사람이 아니고 그 녀 또한 사람일 수없는 그런 상황인거죠.”
그 일로 그 여자와는 헤어지고 형을 위해 자식을 내어준 동생과 동생댁에게는 평생 씻지 못할 죄를 짓고 말았다.
아이는 다시 동생네로 보내졌지만 한번 맺은 부자인연이기에 아직도 조카 아닌 소중한 유씨의 아들로 생각하고 있다.
그 일은 유씨에게 모든 것을 앗아갔다. 오손도손 사랑하는 사람과 한평생 예쁘게 살고픈 평범한 꿈도, 인간에 대한 믿음도 다 깨져버린 순간이었다. 그로부터 3년을 방에 틀어박혀 술로 세월을 보냈다.
“그때 알았어요. 인간의 목숨이 얼마나 질긴지....죽으려고 먹은 술인데 죽지도 않데요. 어느
날 방문이 열리면서 어머니가 들어서는데 갑자기 너무 미안한 생각이 들었어요. 그 길로 툭툭 털고 일어나 총 한자루를 들고 산으로 들어갔지요.”
포수였던 아버지의 대를 이어 유씨도 사냥꾼의 길로 접어든 것이다. 미치도록 산을 타고 동물을 쫓고 총을 쏘아대고..세상에서 쌓인 분노를 미친듯이 전국 온 산을 헤집고 돌아다녔다.
동물에게 물리든 산을 타다 지쳐 쓰러지든 어쨌든 스스로 산목숨을 끊지 못하니 그렇게라도 해서 죽고 싶었다.
“고령 땡포수라고 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어요. 산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거친 일과 험한 일은 다 찾아다니며 했으니 사람만 죽이지 않았지 거의 미친 사람이었어요. 그런 삶이 얼마 전까지 계속됐지요. 근데 손가락이 끊어진겁니다.”
4년 전, 사고로 방아쇠를 당기는 손가락을 잃어버리는 바람에 전국 최고의 실력을 가진 포수로서의 삶은 저절로 막을 내렸다.
“열 발 중 다섯 발만 맞춰도 명포수 소리를 듣는 법인데 나는 아홉 발을 명중하는 사람이었지요. 그러다가 4년전쯤인가, 방아쇠를 당기다가 그만 손가락이 잘려나가는 사고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더 이상 총을 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그 순간 아! 벌을 받는구나! 하는 생각이 떠오르더라구요.
그간 포수 일을 하면서도 내 마음에 뭔지 모를 죄의식이 있었나 봅니다. 어쨌든 지금은 그나마 남은 인생 조금이나마 살생업을 닦고 가라는 자비 부처님의 뜻일거라 생각하니 마음도 편하고 이제나마 손가락 잘린 것도 어쩜 다행일지 모른다는 생각도 듭니다. 미치듯 죽음으로 치닫던 지난 삶을 돌아보면 온통 부끄럽기만 합니다. ”
삶이 부끄러워 고개를 들지 못하겠다는 유흥식씨. 이제 반백의 나이, 자신의 주먹이 가진 파괴력이 두려워 힘을 감췄던 시절은 가고 오히려 이제는 배신당할까봐 사람들을 피해 산다는 유씨.
배신과 파괴의 운명을 피해 미친듯이 일에 매달려 끝장을 보고나면 또다른 일을 찾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유랑의 삶! 남은 꿈은 가족을 대신할 개 몇마리, 우유를 공급해 줄 양 몇마리, 그리고 농사를 함께 지을 소 한 마리를 데리고 인적없는 심산유곡으로 들어가 조용히 살다 초야에 묻히는 것뿐...
“지난 어리석음을 어떻게 다 참회해야만 하는지... 세상이 부끄러워 더이상 돌아다닐 수가 없어요. 이제 숯굽는 일도 배움을 마쳐 흥을 잃었으니 다시 떠나렵니다. 산속으로요. 세상으로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거예요”
일에 미침으로써 참을 수 없는 분노를 억누르고 인간적 삶의 끝자락을 놓지 않으려고 애쓰다가 반백의 나이에 들어서야 어리석음과 참회를 알게 됐다는 유씨. 자신의 몸과 마음을 자연에 맡기고 마음을 쉬고 싶다는 유씨의 마지막 바램이이루어지기를 함께 발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