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스름 무렵, 두꺼운 침묵이 내려앉은 산사에 법고소리 울려 퍼져 만물의 고통을 다독일 때쯤, 세상 사람들은 마음을 흔들던 그 소리를 기억하며 라디오를 켠다.
그 어둑한 빛깔과 향기 때문일까? 집 나갔던 영혼이 찾아드는 시간에 정성껏 공양 올리는 정목스님을 만나고 싶은 것이다.
방송준비를 하면서 그것을 청취자들에게 공양 올린다는 표현을 하신 스님의 첫 말씀이 나를 때린다.
나는 매일같이 방송을 하면서, 또는 법회현장에서 공양의 귀한 마음이 있었던가 싶어서, 결국 우리를 감동하게 하는 것은 진솔함이리라.
생을 살아가면서 가장 감사한 일이 부처님 법 만난 것이라는 정목스님~~
하여 매일오후 7시 불교방송<마음으로 듣는 음악>을 통해 나직나직하게, 그러나 분명하게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행복과 평화의 바이러스를 전파하는 스님.
-방송을 통해 그동안 받은 사랑을 나눠드릴 뿐이라 하셨는데 이 또한 보살도 실천인가요?-
“보살도 실천은 너무 거창하구요. 진리의 길을 만나고 보니까 그것이 너무도 행복하고 기뻤던 만큼 나누는 것은 당연한거에요. 다른 사람이 부족하고 모자라서 나누는 것이 아니라, 다만 잠시 잊고 있었던 것을 함께 행복할 수 있도록 공간과 분위기를 만드는 거죠. 그게 지금 하고 있는 방송이에요.”
1990년 불교방송 개국과 함께 비구니스님으로는 처음으로 방송진행을 시작해 대중의 마음을 어루만져주었고 그로 하여 상도 여러 차례 받았다.
1995년 수행정진을 위해 방송을 떠났다가 2005년, 돌아온 누이처럼 다시 마이크 앞에 자리한 스님.
스님의 목소리는 결코 곱지 않으나 풀 먹인 무명옷처럼, 또는 빨아놓은 이불호청 같은 맑음이배어있다. 많은 이들이 스님의 목소리를 두고 카리스마가 느껴진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느냐 여쭈었다.
“그런 소리 자주 듣긴 해요. 아마 열여덟, 열아홉쯤이었나 봐요. 아침예불 후에 하는 축원문이 어떤 내용인지 궁금해졌어요. 은사스님께서 조목조목 새겨주시는데 그때 일러주신 문아명자면삼도聞我名者免三途 견아형자득해탈見我形者得解脫 대목이 귀에 쏙 들어왔지요.
나의 이름 듣는 이 모두 다 삼악도를 면하고, 나의 형상 보는 이는 모두 다 해탈을 얻게 하소서......이 때부터 그 축원문은 수행자인 저의원력이고 발원이 되었던 것 같애요.
원대로 된다고도 하고, 입이 보살이라고도 하잖아요. 내안의 내가 오랫동안 꾸준히 한 생각을 염해왔기에 그것이 그리 나타날 수도 있겠지만 달리생각해본 적은 없어요.”
생방송으로 전해지는 청취자들의 메시지에서 세상살이의 고단함과 힘듦을 읽어서일까? 방송을 통한 스님의 명상수행은 많은 이들의 아픈 마음을 치유해주고, 스님이 진행하는<마음으로 듣는 음악>은 길 찾아 헤매는 이들의 등대가 되어주는 인로왕보살이다.
아날로그시대를 지나 디지털시대를 발맞추고 있는 스님은 호흡이 안정되어 있을 뿐 아니라 그것을 십분 활용해 인터넷방송까지 꾸려가고 있다.
-인터넷방송 유나(You & I ; 너와 나를 뜻하며 화합과 조화의 세상을 상징하는 造語)는 마음공부전문방송이라 들었습니다. 하루 한 시간의 공중파방송으로는 한계를 느껴서인가요?-
“한 15년 전부터 이 바쁜 세상에 처처가 법당이면 얼마나 좋을까하고 마음만 내고 있었는데 좋은 인연들이 지어졌어요. w.w.w(world wide web)로 온 세상이 연결되니 일중일체다중일 일즉일체다즉일一中一切多中一 一卽一切多卽一 화엄의 세계, 화엄의 시대지요.
세계25개 국 1만5천이 넘는 사람들이 접속해서 부처님 말씀을 듣고 함께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나갑니다.
우리말과 음악이 보이지 않는 선을 타고 세계로 퍼져간다니 놀랍지 않나요?” 거부할 수 없이 디지털시대를 살아 내야하는 숨 가쁜 이들에게 스님은 명상과 요가로 대중에게 다가선다.
천천히~ 느리게~ 우리세포가 원하는 아날로그방식으로.
인터넷방송유나에서 스님은 마음을 펴는 요가를 진행한다. 마음을 펴는 요가... 누군가와 충돌이 일어나 마음이 찌그러지고 굽어지고 헝클어 졌을 때 스님께 손 내밀어보라.
<내 생각만이 유일한 것은 아닙니다. 관점은 상황에 따라 바뀔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번 깊게 심호흡을 하고, 내가 그랬던 것처럼 이사람도 인생에 대해 배우는 중이다..라고 속삭이십시오.>하며 다정히 손잡아 주실 터이니,
정목스님을 만나러간다는 내말에 지인들이 너~~무 좋겠다.. 하며 많이들 부러워했다. 대중이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을 대신 만날 수 있는 이 복됨에 감사하며 스님을 기다리는데, 하루를 오전 오후 저녁 새벽으로 쪼개 사신다는 스님답게 시간 맞춰 나타나셨다.
시인 김상옥은 정목스님을 두고‘상모相貌가 알토란이나 깎아놓은 밤’이라 했는데 그의 말에 별 한 개를 추가하고 싶다.
-스님을 나타내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최초의 승려MC이며 자비의 전화 개설자, 삼소회를 만든 이, 인터넷유나방송진행자, 책을 펴낸 저자, 앨범을 낸 가수 등등..-
“어떤 모습도 진실이지만 어떤 모습도 진실이 아닐 수도 있어요. 보여지는 것은 꼬리표에 불과하죠. 붙여진 이름은 필요에 따라 달라지구요. 중요한 것은 타인들의 평판이 아니라 내가 나를 뭐라 생각하느냐, 규정하느냐하는 거죠.
내 수행의 위치에서 끊임없이 나를 바꾸고 점검하며 극복하다보면 온 세상은 이미 온전하다는 것을 알게 되어요. 내가 무엇으로 불리워지는 것은 중요하지 않아요”
어쩌랴, 그 무엇이 되고 싶어 애를 쓰고, 기를 쓰고 용을 쓰는 내 꼴이 보이는 것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뻔한 답변이 돌아올 것 같은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스님은 얼마 전 시사저널과 미디어 리서치가 조사한 가장 영향력 있는 50대미만의 차세대인물 불교부문 1위, 그리고 법보신문이 조사한 영향력이 큰 비구니스님에서도 1위에 뽑혔습니다. 어떤 마음이세요?-
“글쎄요. 영향력의 순위를 매긴다는 것은 진리의 순위를 매길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 아닐까요? 스님들께서 일반대중을 만날 기회가 적은데 비해 저는 인터뷰라든지 대중매체를 통해 그나마 알려졌기 때문에 아는 이름이 그것뿐이어서 그런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까 해요.
저는 언제나 꼴찌에서 정진해간다는 마음이지 1등이다 하는 것은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없어요. 항상 나를 밝히는 정진을 하다보면 열매도 맺겠지요.”종교인은 세상에 도움이 되는 존재여야 하며 그들과 함께 걷고 고뇌하며 발전해야 한다는 정목스님. 그래서 산속 암자에서의 깨달음도 좋으나 번잡함 속에서도 고요하고, 널리 평안을 구하는 이로 살아가기로 원력을 세운 스님이기에 세상과의 끈도 여러 갈래 닿아 있을것 같다.
오래전의 일이라고, 방송을 듣던 80노인이 명주옷을 한 벌 지어오셨는데‘중이 비단옷을 입으면 안 된다.’는 말에 걸려 3년이 넘도록 그냥 있었단다.
누굴 주려해도 스님체구가 워낙 작아 맞는 사람도 없고 해서 두고 말았는데 어느날 그 노인의 정성이 보이는 순간 턱 내려놓으니 온갖 부끄러움이 다 보이더라고.
뭐든지 반듯해야하며, 왜 중이 저리 많이 먹고 저리 많이 자야하는가에 마음상해 기도하고 절하고 염불하며 자신을 몰아갔으니 오죽했으면 은사스님께서 기도 좀 고만 하라 하셨을까.
다시 보니 누구나 그가 선택한 길이 있고 그것대로 귀하고 소중한 것이었음이 눈에 들어 왔단다.
그리고 며칠 전 병원에서 걸려온 전화~, 늘 술에 취해 살다가 스님 방송시간에만 제정신으로 살았다는 인연은 죽기 전에 스님과 통화해보는 것이 마지막 소원이라고 의사의 주선으로 연결이 됐다.
그의 목소리는 꽃놀이 앞둔 사람처럼 들떠있었고 선물을 했으면 하더란다. 이제쯤 그는 저세상으로 소풍 떠나고 스님처소에 곶감이 도착했으리라.
-가르침을 준 큰 스승 또는 귀한 만남이라면 어떤 장면이 있을까요?-
“9년간 면벽하고 제자를 기다린 달마대사는 수행자인 제게 절대적 귀감이구요. 일본에서 만난 달라이라마께서‘수행자들이여, 만인에게 친절 하라’는 말씀은 지금도 쟁쟁합니다.
나는 수행의 길에서 힘든 짐을 덜고자 찾아온 이를 아프게 한 적은 없었는지, 가르치려고만 한 적은 없었는지 늘 나를 돌아보게 하는 경책입니다. 내안에 사랑이 깃들지 않으면 친절이 어려운데 오늘날 모든 수행자가 가져야 할 덕목이 친절이지요.
그리고 열여섯 출가하던 해 은사스님 따라서 경봉스님을 뵈었는데 행사가 있었는지 다들 통도사 큰절로 내려가고 저 혼자 큰스님 곁에서 먹을 갈았어요. 서너 시간 먹을 갈다가 두어 시간은 툇마루에 고요히 햇살 받고 앉아 있었는데 그 미소와 침묵의 시간이 가슴에 남아있어요. 지금도 번다하고 분주한 뒤끝이면 큰스님 법의 향기를 기억하곤 합니다.”
방송시간 임박했음을 알리는 PD의 재촉이 없었다면 정목스님과의 이야기자리는 걷고 싶지가 않았지만 합장으로 마무리하는 스님을 어쩔 수 없이 놓아드렸다.
곧이어 묵직한 첼로소리와 함께 비올라를 닮은 스님 목소리를 라디오로 들으며 나는 택시기사에게 서울역으로 가주세요! 하고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