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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인선사조륜청정탑과 혜철慧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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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선사 - 이근우 / 사학자 2009년 03월 325호
태안사적인선사조륜청정탑 혜철慧徹
혜철스님은 세간의 성은 박씨이며, 삭주朔
州에 속하였던 선곡현善谷縣, 지금의 영주·
예안 지역에서 785년에 태어나셨다. 15세에
이르러 인근에 있던 부석사浮石寺에서 출가
하여 화엄학을 배웠는데 한번에 다섯줄씩 읽
을 수 있을 만큼 총명하였다고 전한다. 그
래서 화엄경의 숨은 이치를 밝혀내어 종래
에 잘못 알려진 것들을 바로잡고, 배우는 이
들의 어두움을 떨쳐버리니, 동학들이 말하기
를“어제는 함께 학문을 닦는 벗이었는데,
오늘은 가르치고 이끌어 주는 스승이 되었
으니 참으로 불문의 안회顔回이다.”라고 할
정도였다.
22세에 수계하고, 814년에 당으로 건너갔
다. 그리고 도의선사와 마찬가지로 공공산龔
公山에서 제자들을 가르치고 있던 서당 지
장대사 西堂 智藏大師로부터 심인心印을 받았
다. 얼마 있지 않아 서당西堂이 돌아가신 뒤
에는 좋은 산과 영험한 장소를 찾아 두루 편
력하다가, 서주西州의 부사사浮沙寺에 이르
러 대장경을 본격적으로 탐구하였는데, 밤낮
으로 정진하여 3년 동안 침상에 눕지도 자리
를 펴지도 않았다고 한다.
당나라로 간 지 25년 만인 839년에 다시
신라로 돌아와 곡성군의 동남쪽에 있는 동리
산桐裏山에 대안사大安寺를 지었는데, 이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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름하였다. 두 소란스러운 지경을 떠났으므로
적寂이라고 이름하였다. 두 죽음을 넘어섰으
므로 멸滅이라고 이름하였다.
如來衣者柔和忍辱心是. 此卽寂滅忍. 生死
涅槃二邊與中道理不二不異. 故名柔和.
安心中道故名爲忍. 離二喧故名寂. 過二死故
名滅.
인忍은 분명히 있지만 보이지는 않는 진리
라는 뜻으로 쓰인다. 진리가 쉽게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마치 우리가 힘든 것이
나 아픈 것을 참고 있는 것과 같은 속성이라
는 점에 주목한 표현이다. 그래서 적과 인이
모두 깨달음의 경지를 뜻하는 말로 보는 편
이 온당할 것 같다.
선사가 이른 경지를 선사의 행적을 적은
「적인선사비寂忍禪師碑」에서는 다음과 같
이 기록하고 있다.
공空 가운데 유有를 설하고, 색色의 끝에서
공空을 알아, 바야흐로 육진六塵을 정화하며
스스로 십지十地를 뛰어넘으니, 체득한 바가
허공이 큰 것보다 크고, 헤아리는 바는 바다
의 깊이보다 깊다.
空中說有, 色際知空, 方淨六塵, 自超十地,
所體大於虛空之大, 所量深於瀚海之深.
선사 스스로는 또 이렇게 말씀하셨다.
부처는 본래 부처가 없는데 억지로 이름을 세
운 것이요, 나는 본래 내가 없는 것이니 일찍이
한 물건도 있지 아니하다. 견성見性의 깨달음은
바로 이 깨달음이니, 비유하면 법法은 공空하되
공空이 아니며, 묵묵한 마음이 바로 이 마음이
고, 적적한 지혜가 바로 이 지혜이다.
바로 선종 9산 중 하나인 동리산문이다. 많
은 제자를 배출하고 또한 신라 조정과 긴밀
한 관계를 유지하였던 혜철스님은 861년에
천화遷化하셨는데, 절의 송봉松峰에 안치하
고 돌로 부도를 세웠다고 한다. 이 부도가 바
로 적인선사조륜청정탑이다. 조륜照輪은 달
을 뜻하는 동시에 깨달음의 경지를 나타내
는 말이니, 그 경지가 청정하였음을 보여주
는 탑호塔號이다. 그렇다면 적인寂忍은 무슨
뜻일까?
적인寂忍
적인은 바로 혜철 스님의 시호이다. 적寂은
진리의 고요함을 뜻하는 말이다. 한편은
인忍은 인욕忍辱 등에서 보이는 것처럼 참는
다는 뜻이다. 그렇지만 두 글자를 합한 적인
은 결코 고요함과 참음이라는 뜻에 그치는
것 같지 않다.「마하지관摩訶止觀」에 마침
이 적인의 뜻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 있다.
여래의如來衣라고 하는 것은 유화인욕심柔
和忍辱心이 바로 그것이다. 이는 곧 적멸인寂
滅忍이다. 생사와 열반 두 언저리의 거칠고 추
악한 것과 중도中道의 이치가 둘이 아니고 다
르지 않다. 그러므로 유화柔和라고 이름하였
다. 중도에 고요히 안주하므로 인忍이라고 이
| 적인선사조륜청정탑과 혜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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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山寺·선사禪師|
佛本無佛, 强以立名, 我本無我, 未嘗有物.
見性之了, 是了, 喩法之空非空, 默默之心是
心, 寂寂之慧是慧.
이렇게 보면 과연 선사의 깨달은 경지가 공
과 유, 색과 공의 가운데, 즉 중도에 있으니
인忍이라 할 수 있고, 적적寂寂한 지혜에 도
달하였다고 하였으니 적寂이라고 할 만한다.
선사와 신통력
적인선사寂忍禪師 혜철慧徹 스님의 신통력
은 각별하였던 것 같다.
839년에 당나라에서 신라로 돌아온 스님
은 무주(武州) 관내의 쌍봉난야 곧 현재의 쌍
봉사에서 여름 안거를 하였다. 그런데 그때
심한 가뭄이 들어 산과 내가 말라붙고, 비가
내리지 않는 것을 말할 것도 없고, 구름 한
조각조차 없는 형편이었다. 그래서 그 지역
을 다스리는 관리가 선사에게 간절히 청하
니, 선사가 고요한 방에 들어가 좋은 향을 사
르며 하늘과 땅에 기원하였다. 잠시 후 단비
가 조금씩 내려 무주 관내의 들을 적시더니,
나중에는 큰 비가 좍좍 쏟아졌다고 한다.
또 이악理嶽이라는 곳에 머무르면서 묵언
수행을 하고 있을 때, 골짜기에 갑자기 들불
이 일어 사방에서 불길이 치솟아 암자를 태
우려 하는데 인력으로는 막을 수 있는 상황
도 아니었고, 또한 도망갈 길도 없었다. 선사
가 단정히 앉아 묵묵히 생각하는 중에 소나
기가 세차게 쏟아져 불을 모두 꺼버리니 온
산이 불탔으나 오직 선사가 있던 건물만 화
재를 면하였다고 한다.
선사는 미래를 내다보는 신통력도 가지고
있었다. 일찍이 중국의 천태산天台山 국청
사國淸寺에 머무를 때 화가 있을 것을 미리
알고 옷을 털고 떠났는데, 사람들이 그 까닭
을 알지 못하였으나 오래지 않아 온 절에 전
염병이 돌아 죽은 자가 십여 명이었다.
또 처음 당나라에 갈 때 죄인의 무리와 함
께 같은 배로 취성군取城郡에 이르렀는데 그
곳의 관리가 죄인의 무리인 줄 알고 칼을 씌
워 가두고 추궁하였다. 선사는 자신이 승려
이며 당으로 가기 위해서 그 배를 탔다는 말
을 하지 않고 죄인들과 같이 하옥되었는데,
군감이 죄인들이 배를 타고 온 사실을 왕에
게 아뢰고 왕의 명령을 받아 30여 명의 목
을 베었다. 마침내 순서가 선사에게 이르렀
으나, 선사는 얼굴이 온화하여 죄인같지 않
았고 또한 스스로 형장에 나아가니, 관리가
차마 바로 죽이라고 하지 못하였다. 곧 다시
명령이 있어 석방되니 오직 선사만이 죽음을
면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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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륜청정탑照輪淸淨塔
적인선사조륜청정탑을 세운 것이 861년으
로 생각되므로, 승탑 중에서는 844년에 세
워진 염거화상탑을 잇는다고 할 수 있다. 그
래서 염거화상탑과 비슷한 모습을 가지고 있
다. 그래서 염거화상탑과 비교하면서 탑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염거화상탑의 경우는 땅과 맞닿은 지대석
부분이 제 모습이 아닌 것으로 생각되는데,
적인선사승탑은 두 단의 4각형 지대석이 깔
려 있다. 그 위로 하대석, 중대석, 상대석, 탑
신받침이 차례로 올라가 있는데, 각각 한 개
의 통돌로 이루어져 있다.
8각형의 하대석의 하단에는 내부에 특별한
문양을 넣지 않은 안상眼象을 배치하였고, 상
단에는 사자상을 조각하였다. 각 면의 사자
상이 예사롭지 않은데, 갈기털이 선명할 뿐
만 아니라, 모두 다른 자세를 취하고 있다.
앞발을 들어 혀로 핥고 있는 사자가 있는가
하면, 뒷발을 들어 몸을 긁고 있는 것 같은 사
자도 있다. 사자의 모습을 잘 관찰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생각해 내기 어려운 다양한 자세
를 표현하고 있다.
사천왕상의 힘찬 역동성과 아울러, 참된
진리란, 정靜과 동動, 공空과 유有 사이의 중
도中道임을 보여주려고 한 것인지도 모르겠
다.
중대석은 하대석에 비해서 낮고 좁으며 특
별한 장식도 없다. 다만 아래쪽에 4단의 고
임을 두었는데, 첫번째 고임은 높고 넓으며,
나머지 3단은 낮고 좁게 만들었다.
상대석은 아래쪽에 3단의 받침을 둔 다음,
3겹의 연꽃을 화려하게 조각하고 그 사이로
또 꽃잎이 보이도록 하였다. 엄밀히 말하면
4겹으로 연꽃을 배열한 셈이고, 그만큼 연꽃
이 풍성하게 보인다. 연꽃 위에는 한 면에 2
개씩 안상을 조각하고 그 안에도 꽃문양을
넣었다. 상대석 위로 탑신받침을 두었는데,
중대석의 고임과 비슷한 모양이다.
탑신석은 팔각원당형이고 앞뒤로 문모양
을 새기고 그 좌우에 사천왕상을 배치하였
다. 지붕돌은 넓은 편으로 밑면에는 서까래
를, 윗면에는 기왓골과 막새기와까지 표현하
여 목조건축의 지붕양식을 사실적으로 나타
냈다. 추녀의 곡선은 완만하지만, 각 귀퉁이
는 급하게 치켜올라간 모습이다.
상륜부는 솟은 연꽃 모양의 앙화仰花, 엎어
놓은 그릇 모양의 복발覆鉢, 바퀴 모양의 보
륜寶輪, 연꽃봉오리를 닮은 보주寶珠 등을 화
려하게 배치하였다.
이처럼 적인선사의 승탑은 화려함과 간소
함, 역동성과 고요함이 조화를 이룬 아름다
운 탑이다. 적인寂忍이라 부르는 깨달음의 경
지 또한 그러한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