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석가모니 부처님의 수행처였던 붓다가야의 이름을 본 떠 가야산이라고 했다.
그만큼 가야산의 기운은 청정도량으로서 손색이 없고 예로부터 고승대덕 스님들의 수행처로 제 역할을 해왔다.
해인사의 산내 암자 중 하나인 지족암知足庵. 원래이름은 도솔암으로 신라시대 고승인 희랑대사의기도처로 기록돼 있다.
33천 극락세계 중 하나인 도솔천의 이름을 딴암자의 옛 이름이 오늘의 지족암으로 바뀌게 된
것은 조선 말기 고종 30년(1893년), 환운스님이중창불사를 하시면서부터다.
오늘날 불려지는 지족은 옛 이름 도솔의 의역으로 소욕지족의 삶을 살아가는 수행자의 정신을
상징하기도 한다. 현대에 와서는 세납 14세에 출가하시어 20세 전에 팔만대장경을 섭렵하시고,
26세 젊은 나이에 당신의 네 손가락을 모두 불태우시는 소신공양을 했다는 일타 큰스님의 가르침
이 남아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곳에 가면 해인사 산문을 지나 일주문으로 오르는 산길 도로를 따르다보면 우측으로 돌에 새겨진 산내암자 안내석이 나타난다. 비구니 스님들의 수행처인 국일암, 보현암을 지나 비구 스님들의 수행처로 들어서는 길목, 더욱좁아진 산길은 희랑대, 지족암, 백련암으로 오른다. 모두가 한국 불교사의 정신적 스승으로 살다가신 도인스님들의 수행 역사가 담겨있는 곳이다.
지족암으로 오르는 계단을 지나 도량 안으로 들어서면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이 현판과 돌비석에 새겨진 필체이다. 춤을 추듯 써있는 돌비석의‘끽다거래喫茶去來’와 법당 현판인‘대몽각전大夢覺殿’. 모두 일타 큰스님의 친필로 네 손가락 12마디가 모두 없는 상태에서 엄지손가락 하
나만을 의지해 써내려간 필체이다.
구애가 없이 자유로운 듯 하늘을 날지만 한 획한 획에 담긴 힘 찬 기운은 굳은 일념으로 구도행
을 살다가신 일타 큰스님의 면면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새겨진 글귀는 화두인 듯 보는 이들의 마음을 자못 숙연케한다.
‘끽다거래喫茶去來’에는 평소 차담을 즐기시어 내방객들에게 누구든 마다않고 차를 내어반기셨던 스님의 소탈하고 다정다감한 모습이 그대로 담겨있다. 선방 수좌스님들이 즐겨쓰시는‘끽다거(여보게 차나 한 잔 하고 가세)’란 문구에 스님의 다정한 마음을 담아‘올 래來’자 하나를 더 보탠 글귀이다. 그로서 의미는‘여보게차나 한잔 하고 가세’가 아닌‘여보게 차 한 잔하러 다시 오세’라는 오고가는 인연의 소중함을담게 된다.
현판에 새겨진‘대몽각전大夢覺殿’은 세상사꿈인 것을 깨달아 소욕지족의 삶을 즐기는 수행자로 하루 빨리 거듭나라는 교훈으로 소박하면서도 지엄하게 중생심을 꾸짖고 있다. 이 세상에 태
어날 때 빈손으로 왔으니 가난한들 무슨 손해가 있으며, 죽을 때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없으니
부유한들 무슨 이익이 되겠는가.
작은 것과 적은것 속에 삶의 향기인 아름다움과 고마움이 스며 있다는 어느 선사의 말처럼 일타 큰스님 또한 삶에 담긴 지혜를 남겨주신 것이다. 또 하나 지족암에서 찾아볼 수있는 것이‘불족봉佛足峰’이다. 법당 뒷 켠에 솟은 바위로 불지족암 전경족적佛足跡을 새겨넣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불족적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발자국을 형상화한 것으로 불상이 나타나기 이전인 초기 불교 당시 법륜, 보리수 등과 함께 부처님을 대신한 성상으로 모셔졌던 것이다. 아직도 동남아 및 인도에서는 진리와 부처님을 상징하는 조형물로 인식되어 숭배되고 있는데 이는 부처님의 발자국을 보고 존경하고 기뻐하면 한량없는 죄업이 소멸된다는 생각이 전해내려오고 있기 때문이다.
열반드시기 10년 전 쯤 일타 큰스님이 인도에서 찍어 온사진을 보고 직접 조성해 놓은 것이라하니 구도와 중생제도에 대한 큰스님의 염원이 얼마나 간절했는가 느낄 수있게된다.
친·외가를 포함해 41명의 친척이 출가할 정도로 불연이 강한 집안에서 태어난 일타 큰스님은 계戒정精혜慧 삼학을 두루 섭렵한 현대불교에 있어 보기 드문 선승이었다. 그리고 해외 여행이 자유롭지 않았던 지난 60년대 중반부터 일찌기 전 세계 70여개국을 도는실천 참구의 만행을 통해 혜안을 열어 이후 지족암에 주석하시면서 참선정진과 중생교화에 매진해 오신 선지식이시기도 했다.
특히 불국토 이상을 실천하기 위해 무엇보다 포교의 중요성을 인식하셔서 평소 제자들에게“다음 생에는 불법이 미약한 서양, 특히 미국에서 태어나 고등교육을 마치고 한국의 해인사나 송광사에서 수도한 후 미국을 비롯한 서양에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파하고 싶다”며 미국에서 환생할 것임을 여러 차례 언급했고 또한“미국에서 20세 가량의 비구승이 찾아오면 나인줄 알아라”고 하시며‘死生出沒 月轉空中 東谷日陀 西岸月明사생 출몰 월전 공중 동곡 일타 서안 월명’삶과 죽음은 달의 공전과 같네동쪽 계곡에 해 저물면 서쪽 해안에 달 밝으리라는 의미 심장한 게송을 남긴 바 있다.
새 봄, 푸른 빛 돌기 시작한 숲 길따라 지족암에 올라 이 시대의 선지식 일타 큰스님의 가르침을
마음에 새기고 가야산이 굽어보이는 불적봉 위에서서 불족적을 향해 삼배를 올림을서 자신의 업
장 소멸과 참회 발원의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가야산 청정도량을 찾는 기쁨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