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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사대사의 해결을 위한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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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자의 향기 - 경성 2009년 03월 325호
주마가편走馬加鞭, 달려가는 말에 계속 채찍
질을 하는 것은 최선을 다하여 열심히 하고 있
는 일을 격려하고 더욱 부추기면서 용기를 북돋
아주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지혜로
운 말이라면 채찍의 그림자만 보고도 속력을 내
어 달리게 될 것이며, 하루에 천리를 간다는 적
토마赤兎馬에게는 애초에 채찍이 무용지물無用
之物일 것입니다. 채찍질을 당해야만 빨리 달려
가거나 송곳이 다리에 꽂혀야만 알아채는 것은
지혜가 없는 둔한 말인 것입니다.
참으로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과는 아무런 연
관이 없는, 알지 못하는 누군가가 병들어서 죽
었다는 이야기만 듣고도 생사生死를 두려워하
며 생사를 해결해야겠다는 바른 생각과 신심信
心을 일으켜서 수행하는 사람입니다.
그 다음 두번째로 지혜로운 사람이란 죽은 사람을 화장터로 싣고 가는 장례행렬을 목격한 것
을 말미암아서 생사를 두려워하고 생사대사生
死大事를 반드시 해결하겠노라는 의지를 다지며
공부하는 사람입니다.
세번째로 지혜로운 사람은 가족이나 친척,
친지의 죽음을 지척에서 보고 경험한 것을 계기
로 생사를 두려워하여 바른 생각과 신심을 일으
켜서 수행하는 사람입니다.
네번째로 지혜로운 사람은 자기 스스로가 늙
고 병들어 고통을 받게 되어서야 비로소 생사를
두려워하게 되고 생사를 해결해야만 한다는 것
을 느끼고서 공부하는 사람입니다.
적토마라면 채찍이 애초에 필요가 없을 것이
며, 채찍의 그림자만 보고도 내달리는 말이라면
채찍으로 내리치거나 맞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채찍질을 당해야만 빨리 달리거나, 채찍
도 모자라 송곳으로 찔러야만 겨우 달려 나가는
말이라면 항상 고통과 괴로움과 신음에서 벗어
날 기약이 없을 것입니다.
과연 우리는 어떤 사람일까요. 누군가가 병들
어 죽었다는 이야기만 듣고도 생사가 무서운 것
이며 태어난 이상에는 반드시 필연적으로 해결
해야만 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아차리는 수승한
근기根機는 되지 못하더라도, 길을 지나다가 스
치는 영구차와 대면한 것을 기회와 인연으로 삼
아서 나 역시 머잖아 저런 신세가 될 것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올곧은 신심을 발하여 정진하
는 슬기롭고 현명한 사람이라야, 사람으로 태어
나 불법佛法을 만난 귀중한 인연과 은혜에 보답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가족이나 친지의 죽음을 경
험하더라도, 혹은 자기 스스로 늙고 병들어 신
음하게 된 뒤에도 생사윤회에서 해탈하는 것만
이 태어나고 죽는 위급하고 중대한 일을 해결하
게 된다는 것조차 의식하지 못하는, 탐욕貪欲과
진에瞋恚와 우치愚癡에 깊이 빠져서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이야말로 채찍과 송곳으로도 달리
지 않는 말처럼 어리석고 우둔한 것입니다. 그
렇기 때문에 가족과 친지의 죽음을 경험하고서
발심發心하게 되는 것과 자신이 스스로 병고病
苦에 시달리는 것을 기회로 삼아 수행하는 것
도 또한 지혜로운 사람의 소행所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종교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정신적인 지도자
로서 가난하고 아프고 소외되고 절망에 빠진 사
람들을 위해서 가장 낮은 자세로 달래고 어루만
지며 이끌어 주셨던 스승이자 선지식께서 자신
의 육신을 숨김없이 드러내는 것으로 위대한 일
생을 마치셨습니다. 혼란하고 어두운 시대를 밝
히는 희망의 등불과 같았던 어르신의 임종은 그
분을 추종했거나 따르지 않았거나를 막론하고
수없이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삶을 성찰하게
하고, 나아가 살아오면서 외면했던 어려운 이
웃을 보듬고 살피게 하는 귀중한 인연으로 다
가왔습니다.
또한 수승殊勝한 근기를 갖춘 지혜로운 사람
들에게는 생사를 두려워하고 바른 생각과 신심
을 일으켜서 분연한 의지와 각오로 정진하고 수
행하여 생사대사를 해결할 때까지 결코 퇴전退
轉하지 않겠노라고 명심銘心하게 하는 최상最
上의 법연法緣을 맺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 그
것이 바로 위대한 삶과 죽음을 헛되게 하지 않
는,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이자 화두話頭이기 때
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