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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로 또 같이, 공동체를 꿈꾸다 - 이겸의 세상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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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 & 피플 - 장향숙 2008년 11월 321호
인간은 언제나 혼자다. 하지만 혼자 살수는 없다. 사전을 덮으며 나 또한 장애인일 수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의 사고 체계는 합리성과 논리성에서상당히 멀리 벗어 날 때가 많다. 이로 인해 많은 편견을 지니고 살아가고 또 그로인해 일정 부분 사람들과 어울리는 사회생활에 불편함을 느끼곤한다. 언젠가 신문에 나온 통계를 보면 현대인의 7-80%가 조울증을 앓고 있다고 한다. 조울증은 일상의 균형감을 잃게하니 이 또한 장애일 수있다. 그렇다면 현대인의 대개가 모두 장애인이란 말인가. 어쨌든 분명한 것은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병을 앓기 전이나 그 이후거나 아니면 그 과정이거나, 대부분 한두 가지씩은 육체적 정신적 장애를 지니고 산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은 왜 스스로를 정상인, 비장애인이라고 생각하며 사는 것일까? 내가 나를 장애인이라 생각하지 않는 이유는 천박한 우월의식도 많이 섞여있기 때문이다. 장애는 표시가 나고 구별되야 비로서 장애인이라는우리 사회 아주 단단한 편견이 만들어낸 결과이기도 하다.

국회의사당 맞은편에 있는 그녀의 사무실을 찾았다. 대한장애인체육회 초대 회장이자 골든서클재단의 이사장인 장향숙 전 국회의원(48세). 배꽃처럼 환하고 해맑은 그녀의 미소를 보면서 나는 대뜸 선생님이란 호칭으로 인사를 나눴다. 그녀가 주는 밝고 친절한 분위기에 이끌려 아마도 편견 덩어리인 내 의식에서는 그녀를 부르는 의원님이나 이사장님, 회장님이란 식상한 호칭들에 대한 거부반응이 일었나보다.
“ 괜찮아요. 제가 제일 처음 들은 사회적인 호칭이 선생님이란 말이니 그냥 편하게 부르세요. 저도 좋습니다. ”

여느 중증 장애인들과 마찬가지로 그녀 역시 삶의 반을 집 안에 갇혀 살았다. 이렇듯 사회 한자리를 차지하며 제 몫의 삶을 살아내기까지 살아있는 매 순간 순간 모든 것이 용기였다.

\" 장애인들에게 용기는 생활필수품입니다. 자신을 세상에서 소외시키지 않으려면 습관적으로 살지말고 늘 자기 자신에게 열려있어야합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과 타인의 자유를 동일시 해야 합니다. 영혼이 젊은 사람들의 애인‘게바라’처럼.......”

깊은 절망과 소외로 말문조차 막혀버린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대신 싸워줬던 세계적인 혁명 게릴라 체 게바라의 피끓는 영혼과 투쟁적 삶에서 많은 위안을 받는다는 그녀.
한가지 모자람만으로도세상살이가 서러운 현실 앞에 그녀는 무학 . 장애인 . 여성 . 가난 이라는 무려 네가지나 되는 마이너리티를 딛고 장애인 인권 운동가로 세상에 우뚝섰다.

“ 어려서부터 방안에 갇혀 생활하다보니 혼자있는 시간이 많았어요. 나의 유일한 친구는 책이었습니다. 그렇게 혼자서 독서를 하며 지낸 시간이 20년 정도는 될거예요. 그 후 직장을 다니며 같은 처지의 동료들과 지낸 시간이 7~8년. 인권운동기간 10년. 국회의원 4년. 이렇게 해서 내 삶의 반을 보냈습니다. 이제 나이 오십을 바라보며 내 영혼은 오히려 더 젊어졌어요. 지금은 하루하루가 더 중요하게 다가옵니다.”

그녀가 어두운 골방에서 사회로 나 온 것은 스물두살무렵. 생계가 이유가 되는 가난은 골방조차그녀에게 허용하지 않았다. 식구들이 저마다 한 푼이라도 보태야만 했던 시절, 그녀는 장애인 복지를 위해 정부가 마련했다는 한 공장에 취업을 했다. 그곳에서 장애인들이 당하는 성추행과 성폭력을 눈으로 직접 목격하면서 그녀는 더 이상 침묵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 함께 뭉쳐서 우리들의 목소리를 내지않으면 이 세상 누구도 내 자리를 내주지 않습니다. 요구하고 설득하고 하나씩 개선시켜나가려는 순간순간의 의지와 용기가 필요합니다. 용기는 긍정의 힘에서 출발합니다. 늘 잘 될거라는 자기 암시가 바로 어두운 현실을 밝은 내일로 만들어가는 힘이지요”

바쁘고 치열한 현대인의 삶 앞에서 장애는 더 이상 이유가 되질 못한다는 그녀. 무조건 혼자서 스스로를 해결해 나갈 때 비로서 세상은 나에게 눈길이나마 던지는 작은 아량을 베푼다는 사실읅 지난 삶을 통해 알았다.

좌절이 있으셨나요?

“ 글쎄요! 좌절이 있었다면 좌절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는 것이 좌절이지요. 좌절을 경험해 보지 못했습니다. 기회조차 없었으니까요. 나는 스스로 일어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모든 장애인들이 그렇습니다. 내 경우가 특별하지는 않죠. ”

좌절이라는 단어조차 장애인들의 삶 앞에서는 사치라고 말하는 그녀. 사회 속으로 뛰어들어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기회조차 없는 골방 속의 많은 장애인들에게 좌절은 그저 당연한 일상이니 갈등일 수없고 그나마 좌절이 뭔지 뼈저리게 느끼고 사는 장애인들의 경우는 신체의 고통보다 더한 것이 마음의 고통이라는 것을 알기에 더 열심히 사회 속으로 자신을 열어놓고 살다보니 좌절할 시간조차 없다고 했다. 세상에서 제일 바쁜 사람 중 하나로 자타가 공인하는 그녀의 요즘 관심사는 아시아 소외 장애인들의 인권과 복지문제이다. 내 방에서 내 집 그리고 사회, 내 나라로자신의 활동 영역을 점차 넓혀 온 그녀가 이제 국회의원으로서의 경험을 토대로 아시아 장애인들과 연대를 꿈꾸고 있다.

“ 앞으로 저의 목표는 공동체라는 단어로 표현 할 수 있습니다. 각기 다른 사람들이 모이는 것이 공동체 아닙니까? 제가 하는 황금고리재단이 바로 그런 일을 해내는 곳입니다.장애인 문제는 장애인 혼자의 힘으로는 해결할 수없습니다.
알아야 면장도 하듯 비장애인들이 장애인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고 장애란 삶을 불편하게 할 뿐특별한 그 무엇도 아니라는 인식이 비장애인들의 자각으로 확산될 때 비로서 장애인 문제는 실마리를 찾습니다. 따라서 장애, 비장애 특별한 구분없이 함께하는 삶의 공동체를 만들고 싶은 겁니다.
그것은 누구에게나 필요한 일이구요. ”

17대 국회의원을 지내면서 그녀는 활발한 의정활동을 통해 실력을 갖춘 많은 비장애인 동지들을 얻었다.

“내가 국회의원이 되자 당시 나를 보는 두 가지 시선이 있었어요. 같은 동료로 대하는 분들과 과연 장애인이 의정 활동을 잘 할 수 있을까? 하며 미덥지않게 여기던 분들이죠. 그러나 이제는 그저 한때 동료 의원이었던 인간 장향숙으로 편히들 대해주십니다. ”

특히 그녀가 대표발의를 했던‘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안을 준비하면서 그녀는 한국 장애인 정책의 새로운 전환점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몸에 밴 부지런함과 삶을 대하는 치열함이 만든 결과다.

“ 그땐 장애인 차별 금지법안, 장애인 교육법안 같은 큰 이슈만 챙겨도 바빴습니다. 동료 의원들보다 3배 정도는 바빴어요. 덕분에 보좌관들도 바빴죠. 의원으로서의 시간은 나에게 참 많은것을 알게했습니다. 모든 것을 법질서라는 제도권 속에서 해결될 때 비로서 안정이 온다는 것, 이제 제가할 일은 새로운 입법안을 만들어 가는 것보다 기존의 방치돼 는 법들을 재정비하면 장애인과 소외계층들이 도움 받을수 있는 사회 기준이 만들어 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그녀가 꿈꾸는 세상은 장애인이 편한 세상이 아니라 두가 편한 세상이다. 인간 모두는 늙음을 경험하게 되고 늙어간다는 것은 신체 어느 기능 하나를 퇴화시키는 것이며 결국 모든 인간은 기능장애인으로 죽음을 맞는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다고 한다.

“ 발이 구르든 바퀴가 구르든 모두 편하게 만들면 됩니다. 예를 들어 장애인들을 위한 특별한 계단을 만들 필요없습니다. 그건 예산 낭비입니다. 모두가 한가지로 누구나 편한 길을 만들면 됩니다. 엉금엉금 기는 갓난아이까지 스스로 편하게 오를 수있는 길을 만들면 되는 겁니다. 그것은 인간에 대한 깊은 성찰과 배려에서 나옵니다. 건강한 젊은이만 사람이 아닙니다. 계단은 장애인뿐만 아니라 노인들에게도 힘든 길입니다. 또 임신한 여성들이나 아이들에게는 더더욱 위험한 길이 계단입니다. 비장애인용 길은 계단이고 장애인용 길은 매그러운 안전도로라는 기준 자체가잘못된 편견에서 비롯됐다는 거지요. 그런 것들을 하나씩 깨우쳐갈 때 비로서 진정한 복지사회가 가능합니다. 그것은 인간이 인간을 들여다보며 애정을 가지고 개선해 나갈 때 비로서 가능한 사회입니다. ”

가장 용기있고 자신감에 쌓인 사람들이 남을 먼저 배려할 줄 안다고 했던가. 이제 그녀는 자신읜 관심사를 더 이상 장애인 문제에만 국한시키지 않는다. 나의 불편과 소외를 극복하기위해 도망치듯 그렇게 책 속으로 빠져들며 밖으로 향하는 욕망과 분노에 눈을 감아 버렸던 어린시절, 짧은 직장 생활을 통해 소외는 나만의 문제가 아닌 장애인 전체의 문제라는 생각에서 용기를 얻고뛰어든 장애인 인권 운동가로서의 젊은 시절, 그리고 이제 인간이면 누구나 소외를 경험한다는 제법 익은 생각으로 남의 불편을 내 것으로 같이 아파 하며 대안적 삶으로서의 공동체를 꿈꾸는 그녀다. 세상살이에 하나씩 눈을 뜨고 스스로 깨어있음에 감사하며 하루하루를 살아낸다. 삶이란 살아내는 자의 몫이라고 했던가. 시간이 갈수록 할 일은 더욱 많아지고 그런만큼 지쳐가는 건강이 안타깝다.

“ 나이가 드니까 살이 찝니다. 신진대사 능력이 떨어진다는 것이죠. 혈액순환이 안 되면 소아마비에겐 치명적입니다. 발이 차가워지죠. 그러면 외부에서 열을 공급해야 합니다. 골다공증 위험도 증가하고 뼈도 약해지죠. 젊었을 때 보단 기억력도 감퇴되었죠. 하지만 이것이 장애의 조건인가? 하면 아닙니다. 의식을 확장시켜야 합니다. 자신을 의식하고 깊이 천착해야 합니다.‘내 몸은 날로 쇠하나, 내 영혼은 오히려 날로 승한다.’ 라고 했던가요. 지금 몸이 건강할 때 아시아를 순회 하고 싶습니다. 골든써클의 후원 활동과 기금모금을 위해서요. 아시아에는 1억 5천 만명의 장애인들이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여성과 어린이 문제는 정말 더욱 심각합니다. 공동체를 만들고 개선해 나가야 합니다.”

수행의 가장 좋은 스승은 끄달림이라고 했던가. 굳이 요중선搖中禪이다, 인중수도人中修道다 라는 수식화된 언어를 끌어다 대지 않아도 그녀는 이미 자신의 삶을 통해 절로 세상과 나를 함께 이롭게 한다는 불교의 자리이타의 정신이 몸에 배어버린 듯 싶다. 삶이 곧 수행이 되어버린 셈이다. 취재를 마치고 돌아서는 길,처음 그녀를 만나 얼떨결에 나 온 선생님이라는 호칭이 그저 쌩뚱 맞은 실수만은 아니었다는 생각을 해보며 조복받은 나의 건강한 육체를 민망한 마음으로 매
만져본다.

글·사진 이 겸
필자 이겸은 사진작가이자 월간<해인>의 객원 기자로 활동 중이다.

장 향 숙: 1961년 2월 3일 경상북도 영주 출생. 2002년 장애인의 날 대통령 표창. 제17대 통합민주당 국회의원. 제1대 대한장애인체육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