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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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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마의 방 - 이동식 1990년 11월 105호
나는 우리 동포들이 나라의 운명을 잘못 타고나서 못된 지도자를 만나 남북이 두동강이가 나고 고생을 한다는 말을 가끔 듣는다. 이 말이 어디에서 연유하는지는 충분히 이해하지만 전적으로 동의한 적은 없다.
특히 이러한 말을 자주 했던 친구가 있었다. 이 친구는 우리집에 오면, 듣는 이가 골치아프다는 소리를 할 정도로 혼자서 무한정 떠벌리기 때문에 우리집 식구들은 그 친구에게 ꡐ떠벌이ꡑ라는 별명을 붙였다. 나이는 나보다 두 살 많았지만 그는 부모에 대한 의존심이 강해 어른으로 자라지 못한 어린아이와 같았다.
내가 정신과(科) 환자의 치료, 특히 정신치료를 주로 해서인지 아니면 평소에 사회문제에 관한 글들을 썼기 때문인지 최근의 사회병리에 관해 생각나는 대로 써달라는 편집자의 청탁이 있었다. 그래 붓을 드니, 늘 한국인에 대한 불평만 늘어놓던 그 친구가 떠올랐던 것이다.

일제시대부터 일본인들은 우리 한국인들을 멸시하는 의미에서 ꡒ조센징(조선인)은 할 수 없다ꡓ는 말을 자주 써왔다. 그런데, 한국인들은 이것을 그대로 받아들여 지금도 예사로이 사
용한다고 들었다. 나는 이 말이 생기게 된 이유를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이것을 받아 들일 수도 없었다.

정부 여당에서는 지금의 우리 사회를 총체적 난국이라 하고, 대통령은 범죄전쟁을 선포하기에 이르렀다. 왜 이러한 표현과 조치들이 나오게 되었을까?
현재 우리 사회에는, 뚝하면 부녀자를 폭행하고 강도질하는 20세 전후의 흉악범, 공중전화를 빨리 끊으라는 말에 살인을 하는 젊은이, 물품싹쓸이 해외여행, 과소비 등 사회병리적으로 위태로운 양상들이 많다. 또한 소수화된 야당에서는, 뜻한 바대로 되지 않자 집단적으로 국회의원직 사표를 내고 동원을 거부하였고, 그래도 목적이 성사되지 않자 오직 대통령이 되고자 꿈꾸는 당수가 단식에 들어가고 이에 동조하는 일부 야당의원의 동조단식을 하는 등의 행각을 벌이고 있다. 현재 우리 사회는 총체적 난국에 남북회담, 우루과이라운드, 무역수지적자와 일본의 자위대가 미국 대통령의 중동파병 요청을 기화로 해외파병의 선례를 남기려 하는 등의 이러한 여러 가지 원인에서 오는 국가적 위기와 극심한 민생문제를 안고 있으나 이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마구잡이 행동들은 상하․남녀노소․계층 여하를 막론하고 침투되어 있다.
이러한 현상들을 통틀어 보면 공통성이 있다. 즉 궤도이탈이다. 법이나 도덕, 상식을 벗어나고 사리사욕과 순간적․일시적 충동이 지배하여 국가나 민족 심지어는 가족도 보이지 않는 이기심이다. 자기욕심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와우아파트가 상징하는 부실공사는 지금까지도 내려오는 우리 사회의 상징적인 병폐이지만 내가 경험하고 관찰한 바로는 건설이나 건축공사뿐만 아니라 우리 생활의 모든 분야가 부실공사와 같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대학교수가 하는 연구나 공부도 대강대강 책을 읽기 때문에 철저하게 알고 읽는 것이 아니라 어림짐작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 특히 외국어로 된 소위 원서(原書)를 읽을 때 그렇다. 정부의 행정과 국회의 입법, 가정에서의 일처리 및 해외여행도 마찬가지다.
한번은 일류호텔에 숙박한 후 떠날 때 계산서에 먹지도 않은 음식대가 적혀 있는 것을 발견한 적이 있었는데, 처음에는 우연한 착오이겠거니 하였지만 이런 일이 거듭되었던 적이 있었다. 생각해보니 한국인은 국내에서 계산서를 따지는 것이 쩨쩨하다고 계산을 따지지 않는다는 것이 이들에게 알려져서 고의적으로 적어넣은 것이 아닌가 의심하게 되었다. 외국인들은 호텔을 떠날 때 계산대에서 계산서를 10분 이상 검토하는 것이 관례적인 듯 하였다.
한국사람은 외국인이 볼 때는 정부나 개인 모두 세계의 봉이 되고 있는 데에 대한 자각이 부족한 것이다. 언젠가 TV화면에 한국상품을 수입하는 일본인이 한국사람은 ꡒ괜찮아요ꡓ
라고 하는 것을 고쳐야 한다고 우리에게 충고하는 것을 보았다.
이 일본인이 경험한 실례는 한국산 와이셔츠를 수입했는데 때가 묻어 있어서 한국수출상에 말을 했더니 ꡒ괜찮아요, 빨면 되지 않아요ꡓ라고 하더라는 것이다. 이것은 정말 어처구니 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일들은 내 자신의 주변에서도 늘 볼 수 있는 일이고 아마도 내 자신에게도 부지불식간에 스며들어 있는 지도 모를 일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나에게 배우고 지도를 맡고 있는 교수나 의사․심리학자들은 학교에서 배웠던 것을 다시 배우는 기분이라면서 여태까지 책을 거꾸로 읽었다고들 한다. 그러면서 다른 동료들에게 나에게 배운 것을 이해시키기가 힘들다고 한다.
금년초인가 우연히 TV에서 빙점(水点)이라는 연속극을 보고 나는 충격을 받았다. 알고 보니 일본에서 많이 팔려서 우리나라에서도 번역이 되어 많이 팔린 일본소설을 극화한 것이었다. 우리나라 여자들에게도 인기가 있다고 했다. 그 내용은 우리 한국사람으로서는 공감할 수도 없는, 이질적이고 사악한 일본인 특유의 복수심리를 그리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지명이나 인명은 한국이다. 마치 한국에서 한국사람이 그러한 행동을 하는 것처럼 되어 있다. 나는 별 자각없이 보는 시청자 대부분이 부인들이라고 생각하는데, 좋지 않은 영향을 받고 자녀들에게까지 전파되지 않을까 생각이 되어 방송위원회에 전화를 걸었더니 서면으로 제출해 달라고 해서 서면으로 국민정신을 파괴하는 방송이라는 것을 지적하면서 어떻게 그런 것을 방송하게 되었는가 조사를 하고 방영을 금지시키라고 했다. 곧ꡐ빙점ꡑ뿐만 아니라 유사한 방송에 대해서도 방송을 삼가하도록 방송국에 시달했다고 서면으로 답이 왔는데, 지금 그 ꡐ빙점ꡑ을 일요일에 재방송하고 있다고 한다. 바로 이러한 방송국의 처사나 방송위원회의 처사야말로 우리나라의 현주소를 말해주는 것이고 또한 사회병리의 핵심을 말해주고 있는 한 단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감독할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막무가내로 방관만 하고 있고, 모든 사람이 잘못된 것을 알면서도 아무도 고치려고 하지 않는다. 이러한 현상들은 우리나라 도처에서 볼 수 있다. 방송국 아나운서들이 우리말 바로쓰기와 국어순화운동을 벌여서 외부 문의에까지 응해 주는 등 갸륵한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는 기사를 읽고 그래도 한국을 바로 잡자는 움직임이 살아 있구나 하고 나 자신도 용기를 얻고 있다. 하지만 TV에 나오는 국어학자나 국문학자 중에는 나같이 철자법도 제대로 익히지 못한 사람이 들어도 이상한 말들을 하고 있는데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ꡐ보여진다ꡑꡐ지어졌다?ꡑꡐ…네요ꡑ기자들도 ꡐ절대절명ꡑꡐ방기ꡑꡐ일응ꡑ 등 우리말 사전에도 없는 일본말을 마구 쓴다. 이런 말은 일제시대에도 쓰지 않았던 말이다. 나는 이런 현상을 검토함으로써 여러 가지 중요한 것을 알게 되었다. 일제시대에는 훼손되지 않았던 우리말이 왜 이렇게 일본화 되어 가는가? 처음에는 피동체를 쓰는 것이 우리가 자주 서양발로 된 책을 봐야 되기 때문에 서양말 번역체가 몸에 배어버린 결과일 것이라고 짐작을 했다. 하지만 80년대에 와서 회사원과 공무원 공부한 사람들이 일본말이 쉬워 일본어를 조금 공부해서 마구 한국말로 번역을 한 것들이 사회에 유포되어 일본말은 모르는 사람에게까지 침투되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예를 들면, 이류 주간지에서 일화견주의자(日和見主義者)라는 것을 보고 신문사에 전화를 걸었던 적이 있다. 이것도 그 큰 신문사 안에는 나보다 우리말이나 일본말을 잘 하는 사람이 많을텐데 감독하는 사람이 방관만 하고 있는 까닭이다. 위의 말은 일어를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번역을 하려면 기회주의자라고 해야 하는데 한자는 그대로 두고 다른 부분만 번역한 일어다. 우리말도 제대로 모르는 사람의 소행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일본인들은 800년 동안이나 왕은 이름만 있었고 실권이 없이 무사(武土)가 지배하여 책임을 지면 목숨이 달아나기 때문에 모든 표현에 피동체를 많이 쓰게 되었고 책임 표현을 주로 써왔다. 우리말로는 보이다를 보여진다, 지었다를 지어졌다라고 하고, 무엇이 어떻다라고 하는 것을 무엇 같애요라고 한다. 우리는 일본말이나 서양말에서는 피동체로 표현하는 것을 능동체로 표현한다.
우리말은 항상 주체적으로 표현한다는 것을 국어학자나 국문학자는 어떻게 보고 있는지? 그들에게 이런것을 국민에게 알려서 국어를 바로잡아 달라고 해도 별 반응이 없이 방관만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어느 부분을 떼어 보든지 잘못된 점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문제는 우리나라 지도층의 40~60대 심지어 70대까지도 대부분 일제식민지교육이나 서양교육을 받았을 뿐 한국에 대한 교육을 제대로 받은 적이 없다는 것이 큰 원인이다. 이런 일이 생기게 된 원인은 해방 후에 미군정이 일본인의 말대로 친일파를 등용하여 그들에게 행정을 맡기고 그후 이승만대통령도 정권유지를 위해서 개인적으로는 반일주의자이면서 친일파를 등용하였다고, 친일파 민족반역자를 처단하는 반민특위는 공산주의자가 들어 있다는 구실을 들어 해산시켜버렸다. 그리하여 민족정기가 완전히 말살되어버리고 친일파 민국반역자를 규탄하기만 하면 빨갱이로 몰아붙이는 풍토가 지속되어 오늘과 같은 사회가 된 것으로 생각된다. 뿌리부터 썩어 있다고 볼 수도 있으나 한편으로 건강한 뿌리가 소생하는 조짐이 보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요사이 지도층에 있는 사람 중에도 지금 일시적으로 중병에 걸려 있고 한국사람을 보고 본래 한국인의 국민성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데 사실은 정반대라는 것을 알려줄 필요가 있다. 다니다보면 우리가 잘못된 것을 방관하지 않고 그때 그때 그 상황과 상대방의 상황에 따라 교육을 하면 한국사람같이 교육하기 쉬운 국민도 없다는 것을 매일 경험하게 된다.
빨리 전화를 끊으라는 사람이나 전화를 빨리 끊으라는 말을 듣고 상대방을 죽인 사람이나 똑같은 점은 둘이다 상대방에 대한 고려가 없고 자기 멋대로 했다는 점이다. 근본적인 해결은 우리의 뿌리인 우리의 전통을 발굴해서 현대에 맞게 사는 길 뿐이다. 홍익인간(弘益人間)보다 더 큰 이념이 인류역사에 어디 있는가? 노동운동 역시 회사를 잘되게 하고 좋은 물건을 값싸게 만드는 운동을 일으키는 것이 바른 운동이 아니겠는가. 자신들의 마음대로 안된다고 민생이나 국가위기를 외면하는 것이 빨리 전화를 끊으라고 하자 사람들 죽이는 것과 다른 점이 무엇이겠는가?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고 나라와 민족, 이웃과 가족을 사랑하며 전통을 존중하고 가정․사회․직장에 모범이 되는 행동이나 태도를 보여주는 ꡐ어른ꡑ이 확실하게 자리를 잡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