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인사에는 참으로 여러 가지 문이 있다.--------------------------------------------------
일반적으로 문은 안팎을 연결해주는 통로이다.
세속적 잣대로 볼 때 문은 밖으로부터 나를 지키기 위한 방어벽이자 세상과 나를 연결하는 자유로운 출입구이며 울타리 안에 갇힌 나를 세상으로 나오게하는 일종의 해방구이다.
그러나 사찰에서의 문은 밖으로 향하는 내 마음을 단속하는 경계의 문이다.
첩첩산중에 첩첩산문으로 안과 밖을 여러 겹 구분지음으로서 은둔수좌로서 살아내고자하는 간절한 마음을 담고 있다. 인간사 밖으로 향하는 모든 인연을 끊어낸다는 강한 의지인 것이다.
이런 많은 문들 중 제일문은 사자문이다.
사자문은 산문의 또 다른 이름으로 결제 중에 있는 스님들은 절대 산문을 넘어갈 수 없었다.
이는 오랜 승가 전통으로 수행자에게 산문은 죽어서야 나가지 살아서는 나갈 수없는 문이라는 지엄한 계율이기도 하다.
현재 해인사의 사자문은 매표소이다. 그러나 그 옛날 도량 규모가 그리 크지 않았던 시절, 해인사의 사자문은 한참을 더 올라가 구불구불 고갯길이 시작되는 지점에 있었다. 지금 룸비니동산이 들어서 있는 곳으로 아직도 그 자리에 새겨진 글귀로 흔적으로 대신하고 있다.
길 양 쪽 기둥 아래 놓인 자그마한 바위돌 두 개. 이것이 바로 예부터 내려오는 해인사의 사자문이다.
옛날 스님들은 이렇게 돌 두 개를 놓고 사자문을 삼으셨다. 그저 주변에 있는 흔한 돌 두 개를 놓고 경계를 삼으면 안이 되고 밖이 되고 그것이 곧 규범이 되었다. 요즘은 벽을 치고 담을 쳐야 비로소 경계가 살아난다지만 말이 곧 법이 되는 스님들은 실제 돌 두개를 놓고도 경계를 삼는다면 그게 곧 경계가 된다.
이런 모든 결정은 결계를 통해 이뤄진다.
결계는 대중들이 함께 살아가기 위해 만든 규칙, 즉 계율의 범위를 정하는 것으로 이 또한 부처님 당시때 부터 있었던 승가 전통 중 하나이다.
결계는 스님들이 모두 함께 참여하는 대중 공의, 대중 공사를 통해 이루어진다.
돌을 갖다놓고 우리는 이를 산문으로하는 동일 결계로 친다. 아니면 저 나무에서 나무까지를 우리의 울타리로 삼는다고 합의되면 그 순간부터 약속은 지엄함을 발하고 이후 어떤 순간에도 벗어나면 안되는 계율이 된다. 계율은 글자의 형상을 봐도 그 엄격함을알 수 있다. 울타리 모양의 상형문자와 창을 나타내는‘戈’자로 구성돼 있는 계戒는 창을 들고 울타리를 지키는 뜻으로 약속된 선 밖을 넘어가면 안된다는 의미를 담고있다. 이는 지키고자하는 의지가 없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 계율은 즉 사람과 사람간의 살아있는 약속이기 때문이다.
아무런 표시가 없어도 계율이기에 사자문에 대한 약속은 지금껏 지켜져 내려오고 있다.
문도 없고 아무것도 없이 덜렁 돌 하나, 두 개로 사자문을 삼는 정신. 계율이 되는 순간 의미없는 돌맹이가 나를 단속하는 엄청난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이를 지키고 따르는 마음이 생겨나니 사자문에 담긴 뜻만으로도 산중 수행자들의 면면을 새길 수있다.
사람간의 약속을 중히 여기고 지켜가고자하는 그 살아있는 정신, 바로 그런 정신이 오늘날 해인사의 천년 역사를 만들어 온 것이다.
사진 우영철
정리 편집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