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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의 선사와 진전사지 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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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향기 - 이근우 / 사학자 2008년 11월 321호
진전사지 <진전사지>
강원도 양양 땅 외진 곳에 진전사지 탑이 서 있고 그곳에서 산길을 따라 좀더 오르면 새로 지은 진전사가 나온다. 절 입구의 오른쪽 산자락에 도의선사의 것으로 전하는 부도가 있다. 부도는 무엇이며 도의는 누구인가?

부도浮屠, 浮圖는 선사禪師의 묘탑廟塔을 말한다. 탑을 부처의 무덤이라고 한다면 부도는 선사의 무덤인 것이다.

부도는 기본적인 성격은 탑과 유사하다. 9세기 중엽 경부터 본격적으로 세워진 부도에서 불탑에서 보이는 장식적인 요소莊嚴를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염거화상의 부도에서는 사천왕四天王,천부상天部像, 비천飛天, 사자상, 안상眼象, 향로 등의 장엄을 베풀었다. 부처를 꾸미는 장엄과 동일한 장엄이 부도에 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한 마디로 말하면 불탑과 부도는 동격이며 부처와 선사도 같은 격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깨달음을 얻은 선사가 곧 부처이기 때문이다.
비근한 예를 들면 티벳에서는 달라이라마를 전생활불轉生活佛로 여긴다. 마찬가지로 득도한 선사는 부처와 다르지 않으므로 부도를 만들어 공경의 뜻을나타낸 것이다. 그러므로 탑에 배례하거나 탑돌이를하는 것처럼 부도 역시 정중한 배례의 대상이다.

득도한 승려를 부처로 하는 것은 불교 교학에서 파천황의 전환을 가져온 일이라고 할 수 있다.그 발단은 바로 선종의 가르침이다. 교종이 경전에 의거한 끊임없는 수행을 지향하였다면 선종은 불립문자에 의거하여 참선을 통한 득오得悟의 가능성을 믿는다. 깨달음을 얻는 순간은 범부도 부처가 되는 것이다. 그런 선종의 가르침을 이 땅에 전한 사람은 다름아닌 도의道義 선사이다.


<도의선사와 선의 가르침>
도의선사에 대해서는 전남 장흥 보림사에 전하는 보조선사탑비에“달마는 당나라의 제1조가 되었고 우리나라는 곧 도의대사道儀大師를 제1조, 염거선사廉居禪師를 제2조로 삼고 우리 스님 보조국사 체징普照國師 體澄을 제3조로 한다.”라고 하여 이 땅에 처음으로 선종을 전한 분으로 기
록돼있다. 그러나 선종의 가르침은 당시 신라의 왕실과 귀족들이 이해할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마어魔語’나‘허탄虛誕’하다고 일컬을 만큼 심한 반발을 불러 일으켰다. 이에 당시 신라의 변방이라고 할 수 있는 양양으로 와서 머물면서 선종의 가르침을 제자들에게 가르쳤다. 그 사정은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있다.

처음에 도의대사는 서당西當에게 심인을 받은후 우리나라에 돌아와 그 선禪의 이치를 설하였다.당시 사람들은 경전의 가르침과 관법을 익혀 정신을 보존하는법 습관존신習觀存神을 숭상하고 있어 무위임운無爲任運(
평상의 삶에 마음을 맡겨 인위적으로 조작하지 않음)의 ㅇ드뜸가는 가르침을 허망하게 여기고 존중하지 않음이 달마가 양梁의 무제武帝에게 받아들여지지 못한 것과 같았다. 이런 까닭으로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음을 알고 산림에 은거하여 법을 염거선사廉居禪師에게 부촉하였다\"(보조선사탑비)
이처럼 도의서너사는 중국 선종의 초조라고 할수 있는 달마와 비견되는 존재이다. 그런만큼 도의의 가릋림은 통렬하다. \"선문보장록禪門寶藏錄\"에는 다음과 같은 일화가 실려있다.


<화로속의눈>
승통 지원智遠이 도의에게 물었다.\"사법계四法界 이 외에 다시 무슨법계가 있는가? (화엄경의)53명의 선지식이 보여준 점차적인 수행외에 다시 무슨가르침이 있는가?\"
도의가 주먹을 쳐들고는 말하였다. 모든 존재는 화로속의 눈과 감을뿐이다. 그리고 53명 선지식의 설법따위는 물거품에 지나지 않는다. 사지四智니 보리니 하는것은 금이 섞인 광석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선사 귀종지상은 대장경은 무엇을 밝히는 것인가라는 질문에 주먹만을 쳐드신것이다\"
지원이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신해행증의 목적은 무엇이며 이것들도 무엇을 얻는다는 말인가?\"
도의가 대답하였다.
\"선은 헤아림없이 그리고 닦음없이 도를 믿고 이해하고 수행하고 증득하게 한다. 조사들의 법은 중생으로서는 이해할수 없다. 요는 자기마음의 참된본성을 바로 가리키는 것이다. 따라서 화엄에서 말하는 오교외에 조사들의 심인으로서 법이 별도로 전해내려오고 있는것이다. 불상이나 경배하는 것은 참된자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자들을 위한 방편에 지나지 않는다. 당신이 아무리 많은 경전을 오래 읽는다 하더라도 그것은 당신이 심인으로서의 법을 이해하고 증득하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이말을 듣고 지원이 일어나 예배하고 말하였다.\"저는 지금까지 경전만을 배우고 부처의 심인으로서의 가르침은 듣지 못하였습니다.

<도의선사 부도의 특이성>
이렇게 이 땅에 처음 선을 가르친 도의선사를 위하여 세운 부도는 현재 남아있는 부도 중에서는 가장 오래된 부도일 뿐만 아니라 아마도 승려를 위하여 세운 최초의 부도라고 불러도 좋다. 우선 그 모습이 특이하다. 2층의 기단 위에 팔각형의 원당願堂을 올린 모습이다. 그 제자인 염거화상의 부도는 팔각형의 대석위에 원당을 올린 것이지만 도의선사 부도는 통일신라시대의 일반적인 석탑 형식과 원당을 결합시킨것이다. 이는 탑과 부도의 중간단계에 해당하는 형식이라고도 할 수 있고 필자 이근우 교수는 현재 부산 부경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역사학자로 서울대학교와 일본 교토대학교에서 한국고대사를 전공하였다. 선사의 묘탑이 부처의 불탑과 다르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또한 도의선사가 부처의 깨달음에 이르렀음을 말해주기도 한다.
2층의 기단이라고 하는 것은 흔히 건물을 세우기 위해서 마련하는 축대 부분을 2층으로 만들었다는 뜻이다. 그만큼 그 위에 세우는 건물이 존귀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라 석탑은 대체로 2층의 기단 위에 3층의 건물을 세운 형식이다. 아래에 있는 기단 즉 하층기단下層基壇은 벽면에 해당하는 면석面石과 뚜껑돌에 해당하는 갑석甲石으로 이루어져 있다. 면석은 4개의 석재를 이용하였는데 2개의 긴 석재 사이에 그보다 짧은 2개의 석재를 끼운 형태로 네모꼴을 만들었다. 갑석 역시 거의 같은 크기의 4개의 돌을 덮어서 만들었는데 밭 전田이라는 글자를 연상시킨다.
상층기단上層基壇도 역시 면석과 갑석으로 구성되어있는데 면석은 모두 6개의 돌을 사용하였고 갑석은2개의 돌을 사용하여 날 일日자 모양으로 만들었다.
갑석 위에는 2단의 고임을 만들고 그 위에 다시 연꽃이 새겨진 8각형의 받침돌을 올렸다. 사리를 모시는 부분은 8각형의 건물 모양이고그 위에 다시 지붕돌과 보주 보주寶珠를 올렸다.
아무런 장식이 없는 단순한 형태는 40년 가까이 중국에 머물면서 선종의 심인을 체득하고 돌아왔으나(821년) 교종이 풍미하고 있는 현실로 말미암아 그 뜻을 크게 펼치지 못하고 산사에 들어와 유유자적하며 제자들을 양성하셨던 선사의 모습을 떠오르게 한다.
진전사가 소중한 것은 도의선사 때문이다. 선사의 부도 주변의 낡은 철책을 걷어내고 반듯한 돌이라도 깔아 탑돌이라도 하면서 선사의 깨달음과 발자취를 기릴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필자 이근우 교수는 현재 부산 부경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역사학자로 서울대학교와 일본 교토대학교에서 한국고대사를 전공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