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호 보기


무구자 김경직(无咎子 金敬直)이 고전에서 보는 세 개의 마음 心자

이전 게시물 다음 게시물
지혜의 샘 - 김계유 2008년 11월 321호
.. 기재 신광한은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늙은 하녀의 손에서 길러졌다. 나이가 18세가 되어도 글을 알지 못하였다. 하루는 이웃 아이와 냇물에서 장난을 치다가 그 아이가 기재를 발로 차는 바람에 물 속에 엎어 지게 되었다. 기재는 성을 내며 그 아이를 꾸짖었다.

“ 너는 종의 몸인데, 어찌 감히 공자를 업신여기느냐? ”그러자 그 아이가 답했다.
“ 그대와 같이 글을 모르는 자도 또한 공자란 말인가? 아마 무장공자無腸公子(게蟹의 별칭)일 것이다.”

기재는 크게 부끄럽게 여겨 마음을 고쳐 먹고 글을 읽었는데, 문장이 물 쏟아지듯 하였다. 그래서 그 이듬해에 만리구萬里鷗라는 부를 지어 과거에 장원하고 얼마 안 가서 대과에 급제하였으며, 문형을 맡은 것이 20년이나 되었다.

이처럼 세상은 마음가짐에 따라 길이 달라진다. 출세지향적인 세상의 변화뿐만이 아니다. 그 변화를 바라보는 세상의 의미 또한 마음의 자취에 의존하여 그 색깔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곧 마음이 어두우면 세상도 어둡고, 마음이 따뜻하면 세상도 따뜻하다. 그래서 마음은 실력이 뛰어난 화가의 붓 놀리는 솜씨에비유되기도 한다. 우리의 신분이 만약 화가라면 세상을 어떤 눈으로 그리며 살아가고 있을까? 세상은 어떻게 마음에 비추어지느냐에 따라 그 의미와 색깔이 달라진다. 이에 우리가 바라보는 마음의 눈이 허깨비의 안목에 지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임을 자각해야 한다.

무구자 김경직无咎子 金敬直은 학문의 이치를 살핌에 마음 心자 세 개로 간단하게 요약해 말했다. 무구자 김경직无咎子 金敬直은 자가 희중熙重, 무구자无咎子는 호였다. 사람됨이 강직하면서도 오만하지 않고 공손 하면서도 아첨함이 없고 검소하면서도 인색하지 않았다. 사람과 더불어 사귀되 충고할 때에 조용하고 강요하지 않아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감사하고 후회하게 하는 장점이 있는 사람이었다. 또 사람들의 분란을 잘 해결하고 사람들의 궁색하고 급한 일을 잘 처리하여 모두들 칭찬하였다. 또한 학문을 좋아하여 이치를 늘 염두에 두며 살았는데, 일찍 논어를 읽을 적에 매일 한 장씩 읽어 오묘한 뜻을 궁리하다가 혹 이삼 일에 이르기도 하고, 삼년을 읽자 스스로 얻어지는 바가 있다고 느꼈다. 그가 말하길,
\"논어 20편 498장은 장마다 차례가 있어 하나도 어긋나게 잘 못 엮어진 것이 없다.
편 가운데 마음 心자가 세 개 있으니, 마음에 하고자 하는 대로 하여도 규범에 넘지 않는다는 것은 성인의 마음이요, 그 마음이 석달동안 어진 마음을 거슬리지 않는다는 것은 안자顔子의 마음이요, 배불리 먹어도 종일토록 마음 쓸곳이 없다는 것은 보통사람의 마음이다.\" 또 말하길“『맹자』<호연장>은 도를 전하는 글이다. 북궁유·맹시사의 용기가 있은 뒤라야 능히 증자의 용기가 있을 수 있고 능히 호연지기를 기를 수 있다.”라 하였고 도연명의 귀거래사에도 역시 마음 心자 세 개가 들어 있으니 그 말의 뜻이 모두 도를 닦는 뜻에 있다. 그러나 이를 아는 사람은 드물다.”고 하였다.
-겸산필기 中

그럼 도에 뜻을 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공자의 말을 빌리면 덕에 근거하며, 인에 의지하고 문예를 익히는 일이다.
이에 대해 성호의 해석을 잠시 빌려보면,“도에 뜻을 둔다는 것은 당연히 행할 세상의 이치에 뜻을 두는 것이고, 덕에 근거를 삼는다는 것은 마음 속에 얻어 굳게 간직하여 잃지 않는 것이며, 인에 의지한다는 것은 모든 일을 반드시 어질고 사랑하는 마음에 의하여 행하는 것이니, 화평을 중히 여기고 충성을 주장하는 이유가 이것이고, 문예를 익힌다는 것은 마음이 밖으로 달리지 않고 익히는 학업이 도의 사물에서 떠나지 않는 것을 말한 것이다. 사람이 이와 같이 한다면 비록 의식 문제에 마음을 쓰려 해도 되겠는가? 이로써 미루어 보건대, 도에 뜻을 둔다는 것은 제방을 쌓아 물을 끌어대고 내를 깊이 파서 새는 것을 막으며 물이 웅덩이를 채우고 멀리 흘러 바다에 다다른 후에 그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 공정이 처음에는 험한 옷차림과 음식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니 배우는 자의 급선무가 되는 것이다. (중략)
그래서 옛 사람들은 화려한 의복이 지조 있는 선비의 몸에 맞지 않고 고량진미는 뱃속의 글을 해치는 듯하다.”고 하였다.
-성호사설 中-

학규에서도 학문을 하는데는 먼저 도를 행하는 것으로 자기의 뜻이 맞추어져야 함을 강조하면서 그 열쇠는 오로지 사람의 의지에 달려 있음을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도란 높고 먼 것이 아닌데도 사람이 이를 행하지 않는 것이다.
모든 착한 것이 나에게 갖추어져 있으니 다른 곳에 가서 구하려 하지 말고
어렵게 여겨서 머뭇거리지 말고 이것이 눈앞에 있으니 곧 손을 댈 것이다.
이처럼 가장 중요한 일은 마음으로 생각하고 힘써 실천하며 좇아 행하고 또 행하기를 그침없이 하면 마침내 도달하는 곳이 있을 것이다.”
이 땅의 우리에게는 구름을 걷는 듯한 문구로 새겨들을 만한 가르침이 분명하다.
-----------------------------------------------------
필자 김계유 선생은 불교에 뿌리를 둔 한학자로 현재 거창의 대동서숙과 서울에서 후학들에게 한학을 가르치고 계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