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책상머리에서만 맴돌던 내가 직접 농사를 짓겠다고 나선 것은 고추밭에 연일 제초제를 뿌려대는 농부들 때문이었다. 요즘에는 백화점이나 대형마트에 비싼 유기농 코너가 따로 있을만큼 전환농이다 유기농이다 하는 친 환경적 농법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지만 대개의 전통적인 농부들은 아직까지 제초제를 농사 필수품 쯤으로 여기는 분위기다. 별로 힘들이지 않고 꺠끗하게 풀을 없애면서도 수확량을 높일수 있으니 일거양득이 아니겠느냐는 생각에서다. 제초제에 그 끔직한 고엽제 주 성분인 다이옥신이 듬뿍담겼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곳의 농부들은 제초제와 농약을 무슨 보약이라도 먹이듯이 자꾸만 부려댔다. 농심은 천심이라는 말이 무색해진 순간이었따. 그간 아무것도 모르고 저런 고추를 태연히 사먹었구나 하는 생각이 미치자 시골 머거리에 대한 의심증은 날로 더하고 급기야 생전 처음하는 농사일에 뛰어들고만 것이다.
우리 동네 사람들은 제초제를 \'풀\'약이라고 한다.
감기가 들었을때 감기약을 먹고, 체했을떄 소화제를 먹듯 제초제를 다만 풀을 없애주는 편리한 약 정도로만 여긴다.
빨갛게 익은 얼굴로 연신 흐르는 땀을 닦아가며 밭골에 앉아 풀을 매고 고춧잎을 들춰가며 일일이 진딧물을 털어내는 나를 보며 이웃들은 딱하다는 듯 혀를 찬다. \"풀약을 쳐요..풀약을 치면될껄......\"\"진딧물약 치면 되는데...\" 진딧물약을 치면되는데\" 라는 말을 한마디씩하고 지나지만 난 그냥 한번 웃어주는 걸로 답을 대신한다.
처음에 전쟁을 치루듯 그리 열심히 잡초를 뽑고 벌레를 잡던 내가 요즘 밭일에서 한걸음 물러났다. 샘솟듯 번번이 오르는 잡초들에게 손을 들고 만 것이다.
천성이 그리 부지런하지 못한데다 몸도 약해 욕심껏 농사일을 따라가기가 힘에 부치는 탓도 있지만 땅에 생계를 대고 사는것이 아닌만큼 더 많이 거두겠다는 욕심 한자락을 내려놓았다. 내심 먹을 만큼만 건지면 되지하는 생각에 이르면서 땅의 반은 잡초에게 내주고 남은 반으로 먹거리를 챙기게 됐다.
이렇게 반포기 된 동사 임에도 지난해 제법 풍성한 수확을 거뒀다. 오랜시간 농약을 치지않고 지켜온 땅이다보니 살잡좋고 심 좋은 자연그대로의 토질을 유지할수 있었던 덕이다. 지난해 거둔 검정콩만도 수확량이 두 서너말은 족히 넘어오가는 지인들에게 내가 지은 농산물을 한봉지씩 들려보내는 흐뭇한 재미도 양껏 맛 보았고 남은 콩은 조금씩 불려서 일년내내 밥에 놓아 먹었다. 이렇듯 여유를 가지고 농사일을 대하다보니 자연을 대하는 마음에도 전전긍긍이 없고 그저 게으른 주인앞에서 무럭무럭 커주는 것만이 고마워 내 밭에서 자라나는 곡물뿐아니라 잡초까지도 그리 사랑스럽고 대견할수 없다.
잡초는 때론 울타리가 돼주기도 한다.
어느 해인가 태풍이 모질게 불어서 농작물 피해가 컸던 때가 있었다. 고추보다 훨씬 더 키가 큰 우리 집 잡초들은 그 모진 폭풍 속에서도 밭골에 쫙 버티고 서서 주렁주렁 달린 고추를 지켜주는 튼튼한 지줏대 노릇을 해주었다. 잘 다듬어진 이웃집 고추밭이 쑥대밭으로 변해 한해 농사를 망쳤다고 울상짓는 상황에서도 우리 고추밭은 고스란히 제모습을 지키고 있었다. 남편과 함께 이를 지켜보면서 “ 태풍이 와도 우리 고추는 끄떡 없네~~ ”하며 그간의 게으름에 대한 변명거리 하나를 찾은 즐거움을 맛보았고 동네 사람들도 덩달아 “맞아,맞아” 맞장구를 쳐주며 태풍 피해에 대한 시름을 잠시 웃음으로 돌리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렇게 어설프게 지은 농사지만 식탁은 제법 풍성하다.
고추는 고추장이며 김장 양념이며 일년 내내 충분히 먹고 남을 만큼 열려주고 이웃에서 얻어다 심은 무와 배추는 두어번의 벌레잡는 손길만으로도 나폴나폴 예쁘게 자랐다.
자연 속에서 살다보면 절로 깨우쳐지는 게 많다. 심은대로 거둔다는 因果의 이치가 뼈저리게 가슴을 파고 들고 어느 생명 하나라도 의미없는 삶이 없다는 것도 깨닫게 된다. 땅에 떨어진 작은 씨앗 하나에 깃들여있는 생명의 의지에 때로 흠칫 시선이 멈추고 자연 스스로 잡아가는 생명의 질서에 또한 놀라며 그 씨앗이 싹을 틔우고 자랄 수 있도록 쏟아지는 햇빛과 빗방울과 바람결, 포근한 휴식을 주는 까만 밤과 아침이슬의 영롱함까지 대자연이 품고있는 무한한 사랑과 생명력은 끝이 없다.
게으른 농부여도 늘 앉을 시간도 없이 밭고랑을 종종거려야만 가을철 허리펴고 환한 마음하나 건질수있는 시골 생활. 오직 제대로 된 먹을거리 하나 식탁에 올려보겠다는 마음 한가지로 시작된 농사 일이지만 이제는 내 마음을 가꾸는 밭이 되고 자연 앞에 한없이 기대고 사는 여유를 내어주니 감사함이 절로 솟는다. 또한 피고지는 변화들을 바라보며 도시의 편리함에 쉬이 마음 내어주지 않고 어려운 시골살이를 잘도 이겨냈다는 자신에 대한 뿌듯함도 이 가을을 빛나게하는 이유가 됐다.
이제는 \'대한민국에 농약 한번 안 한 고추 있으면 나와 봐라.\' 는 은근한 자기 과시까지 생겼고 \"검정콩엔 남성 호르몬이 많아서 남자에게 좋대..\" 라는 말 때문인지 내가 열심히 심고 가꾸어서 식탁에 올려주는게 기특해서 인지 싫은 내색은 커녕 맛있다며 기꺼이 먹어주는 울 남편이 고맙다. 올해도 내 밭의 콩은 잡초들과 삶터를 나눠쓰며 열심히 잘 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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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정구인 선생은 충남대 동양철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유발수행자로 현재 남편과 함께 경북 상주에 거주하며 자연농법을 실천하고 있는 농부이자 참살이 실천 주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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