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래희망 난에 비구니라고 적어 넣은 여고생이 있었다,“간절히 원하고 최선을 다하면 이루어진다는 것,
너무 흔하고 구태의연한가요? 하지만 경험자라면 고개를 끄덕일 걸요. 후에 동국대학교 입학식에서 운문사 강원 도반을 만났는데 서로가 놀랐지요. 그때만 해도 중이 대학가면 환속한다하여 대학가는 것을 말리고 반대하던 시절이었는데, 그래도 같이 공부한 도반들이 곳곳에서 훌륭하게 수행하고 있지. 일 년에 한번 비구, 비구니 구분 없이 만나면 말을 아끼는 가풍임을 잠시 내려놓고 수행 현장을 이야기하고 공부는 얼마나 익어 가는지, 가슴 뜨거웠던 옛이야기까지 보태며 밤을 새우기도 합니다.”
-비구니가 장래희망이었는데 교사가 되겠다는 마음은 어찌 일어났을까요?
“대학원졸업 무렵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를 봤어요. 명문대 입학이 목적이 아니라 자신을 찾아가게 하는 교육을 시키는 Keating선생이 가슴으로 들어오더 라고.”그때부터 급해지기 시작했다.
마음은 길을 만들고 길은 그 곳에 이르게 한다했는가?
수소문 끝에 청소년들의 심성교육을 위해 종교시간을 편성해야한다는 당시 정부방침에 따라 서울대 학교에 종교학과가 개설되면서 다시 2년을 공부했다.
(에피소드 한 가지, 처음 마련된 서울대 종교학과에 불교학 전공자가 없어 학생신분의 스님이 불교관련 과목을 강의하고 교수에게 질문을 하기도..)
91년 3월에 조계종립재단 대구능인고등학교에서 교법사로 학생들과 함께 한지 올해로 18년째. 시커먼(?!) 남학생들을 만나야 하는 부담은 부임하는 날 교문을 들어서면서 날아가 버렸다. 어쩜 그리 착하고 멋지고 공부 잘하고 소박한지, 남자고등학교라기보다 어머님 품 같았노라 회고하시는 스님 얼굴이 창문 너머 배롱나무 붉은 꽃잎을 닮았다. 게다가 학교에서 인기투표라도 할라치면 담임선생님도 교장선생님도 모두 제치고 항상 스님이 1등이었다.
지난 2000년까지 능인고등학교에 입학하는 남학생들은 법정스님의 무소유를 의무적으로 읽고 독후감을 써내야했는데, 아이들의 독후감을 읽어 가다보면 성적 가늠은 물론 부모님의 직업까지 파악할 수있었다. 그렇기에 입학 후 두달이면 아이들의 이름을 모두 외워 이름을 불러주고, 개개인에 맞는 상담을 해 주다보니 점심시간만 되면 법사실은 아이들로 넘쳐났다. 오죽하면 선생님들이‘가끔씩은 스님을 우리에게도 양보해라’고 할 정도였다니 미루어 짐작 할 수밖에. 그나저나 그리 크지 않은 키의 아용 스님이 건장한 남학생들에게 둘러싸여 간식 먹이고 고민도 들어주고 짬짬이 부처님 가르침을 전하는 그 자리는 에너지로 가득했겠지만 참 아름다웠을 것 같다.
아이들이 그랬단다.‘우리 스님의 패션과 헤어스타일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한결같다고. 아마 앞으로도 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아이들 답다.)
눈높이를 맞추기에는 책이 최고였다. 지금은 없어진 하늘북 서점에서 아이들을 만나 읽고 싶은 책 고르게 하고 한 권씩, 두 권씩 옆구리에 끼고는 떡볶이 집으로 데려가기를 거듭하는 동안에 방학이 되면 대학 간 제자들까지 가끔 찾아와 ‘스님 책사주세요’
하기도 여러 번이었다. 세월이 지나 입시 압박이 갈수록 심해지니 이제 예전 같지가 않다 하시면서도 여전히 스님의 교무수첩에는 문화상품권이 준비되어있다. 수업 중에 발표를 잘한 아이나, 답변 중에 그 책을 읽었구나...가 감지되면 바로 그 자리에서 내려지는 즉석선물이다. 스님의 이런 마음들이 입시로, 입시로만 내몰리는 아이들의 고단한 영혼을 이불처럼 덮어주었으리라.
-올해도 입시 앞두고 이미 100일기도가 시작되었겠군요?
“능인학교의 특징 가운데 하나가 아이들은 교실에서 공부하고, 엄마들은 학교법당에서 기도하고, 그러다 수업마치면 아이 손잡고 같이 교문 나서는 모자의
정겨운 모습을 볼 수 있는 거죠. 그리고 인근에 사는 입시생 학부모들에게도 법당을 개방합니다.”
사실 필자도 큰아이 수능시험 날, 멀리는 못가고 능인학교 법당에서 기도를 했는데 참으로 감동이었던 것은 마지막 시험시간까지 목탁 내려놓지 않으시고 끝까지 함께 정진해 주신 스님, 그리고 졸업생 엄마들과 정성들여 준비한 점심을 법당에서 먹게 해준 것이었다. 기도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는 그 마음이라니.
-18년간 교법사로 학생들과 함께 해오셨는데 소임이 끝나면 회향은 어떻게 하실지 미리 정해 두셨습니까?
“중이 무얼 정해놓고 사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생각해 놓은 게 있냐고 물으니 말인데 초발심자경문부터 시작해 화엄경까지 경전을 모두 한 번 더 볼까합니다. 예불 모시면서 반야심경을 독송하다보면 지금도 울컥울컥 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거든요. 찬찬히 새기면서 경전에 푹 젖어보고 그 다음에는 선지식을 찾아다니며 정진할 것을 떠올리면 지금부터 벌써 기쁩니다.”
중3때 고은선생의 <聖 고은 에세이>로 불교를 처음 알았다는 스님은 월간해인과도 인연이 있다. 창간호부터 논문 <苦에 대하여>를 연재했다고 넌지시 일러 주신다.
-오랜 세월동안 제자들과의 특별한 사연도 많을것 같은데요?
“지금 능인학교에서 교사로 같이 근무하는 제자, 중매를 서 준 제자, 주례를 맡아 달래서 서울대학교 국제회의장으로 갔더니 예식장을 능인학교 동문회로 만들어버린 제자, 학생보다 학부모를 더 자주 만나는 인연..등등 그리고 설날에는 세뱃돈 봉투를 수월찮게 준비해야 되요.”
취재를 마치고 나오는데 한 무리의 아이들과 포도상자를 들고 오는 청년과 마주쳤다. 졸업한 제자였다.
스님과 선후배가 둘러앉아 무슨 이야기를 나눌까?
유쾌 상쾌한 기운들이 쓰나미처럼 밀려올 것 같은 기분 좋음을 안고 나서면서 한 생각이 일어난다. 인간의 품은 사랑으로 넉넉해진다고, 사랑은 감당할 수 없는 열정이라기보다 작은 배려들이며, 함께 밥을 먹는 것이며, 믿어 주는 것이며, 별거 아닌 이야기를 들어주며 별거인 관계를 만들어 가는 것... 아용스님은 어디에 계시든 사막 같은 이 세상을 사랑방처럼 따뜻하게 해 주실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