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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과 예술, 그것은 바로 자유/연극 연출가 - 김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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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겸의 세상 속으로 - 이겸 2008년 10월 320호
김아라 연극이란 수많은 삶들을 무대에 담아냄으로서 극을 통해 다시 세상을 보게하는 회광반조回光反照의 예술이다. 관객들이 극을 통해 자신의 현재를 돌아보고 때론 위로받을 수있게 하는 것이라 늘 관객과의 소통이 전제된다. 따라서 그녀는 변화하는 사회를 어떻게 무대로 끌어들여 함께 호흡할 수있는 지 끊임없이 고민한다.

금요일 저녁 데이트. . 약속 장소는 젊은이의 거리 홍대 앞 그녀 친구의 작업실이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싶어 일찌감치 인터뷰 장소에 도착해 들리는 발소리에 귀를 귀울여본다. 약속 시간을 조금 넘긴 시간.
경쾌한 웃음 소리와 함께 계단을 발소리가 그 녀임을 알게 한다.

카메라에 불이 들어오고 순간을 잡으려는 렌즈에는 긴장 흐른다.
찰칵, 찰칵, 찰칵...
몸에서 자유로워야 마음에서도 자유롭다는 연극 연출가 김아라(54)씨.
지난 80년대, 유학에서 돌아 온 그녀는 국립극단 최초의 여성연출가, 그리고 최연소 연출가라는 화려한 명성으로 첫 귀국 무대를 마쳤다. 그로부터 시작된 연극 연출가
로서의 20여년. 실험성 짙은 작품들을 연출해 내면서 그 녀는 이제 세계 연극인들에게 회자되는 예술인이 됐다.

특히 오십 고개를 넘어서면서 연출한 지난 2003년 경주 세계엑스포 주제공연 <천년의 소리.에밀레>를 통해 나이들어 가면서 내면으로 관심을 돌리는 연출적 완숙미를 보
여주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어 한국불교의 천도재 의식을 현대적으로 재현한 작품‘앙코르-경주 세계문화엑스포 2006’의 전야제 작품 <앙코르와트의 꿈>에서는 실제로 100여명의 스님들을 직접 참여시킨 실험적 무대를 보여줌 으로서 세계 연극인들로부터 그 예술적 기량과 실험정신에 대한 찬사를 받았으며 앙코르왓트의 비극적인 역사를 살육과 전쟁를 넘어 선 인류 평화에 대한 발원으로 재 구성해냄으로서‘소통과 회향’이라는 한국 불교의 근본 사상을 세계에 널리 알리는데 또한 기여하기도 했다.

중견 연출가가 된 지금까지 그녀가 한결같이 고민해 온 문제는 관객과 함께하는 무대였다. 일상의 삶들과 함께하는 문화로서의 연극 운동이 그것이다. 예술로서의 연극행위가 대중, 즉 관객들과 거리를 만들어감에 대해 연극인의 한사람으로 깊은 자기반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70년대 탈대학로 운동으로 시작된 대중 문화 운동과 그녀의 연극적 뿌리이자 한국 연극운동의 모태가 된 극단 실험극장의 실험적 극예술 정신을 이어오면서 그녀의 연극 무대는 시간이 갈 수록 일상의 삶 속으로 옮겨지고 표현 양식은 더욱 과감하게 실험성을 더해왔다.

연극이란 수많은 삶들을 무대에 담아냄으로서 극을 통해 다시 세상을 보게하는 회광반조回光反照의 예술이다. 관객들이 극을 통해 자신의 현재를 돌아보고 때론 위로받을 수 있게 하는 것이라 늘 관객과의 소통이 전제된다. 따라서 그녀는 변화하는 사회를 어떻게 무대로 끌어들여 함께 호흡할 수있는 지 끊임없이 고민한다. 그러다보니 때론 연극을 넘어 장르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지금의 무대 예술가가 되었다. 연극 연출을 한다 싶으면 어느 순간엔가 무용 연출가로 이름을 내고 그래서 무대연출가다 싶으면 다시 지역문화운동가로 자신의 목소리를 높이곤 했었다. 정해진 건 재미가 없다. 재미가 없는 건 창작이 아니다. 연극을 플레이(play)라하는 이유 또한 그 과정 속에 놀이성을 전제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연극은 고대로부터 내려 온 삶의 놀이 문화, 바로 그것인 것이다.
요즘 그 녀는 지역문화운동으로서의 연극 무대에 관심이 많다. 연극 특구라고도 불릴 수있는 서울 대학로에 관객을 불러들여 연극인이 주인된 입장에서 무대를 만들어가는 연극보다는 지역민인 관객들이 자신들의 공간에서 손님을 맞아 파티를 열 듯 그렇게 편안한 자기 공간에서 주인으로서 연극에 참여하는 그 열기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그 녀는 지난 97년 자신이 이끄는 야외극장 ‘M.캠프 씨아터’를 서울 아닌 죽산에 열고 주변 자연 환경을 무대로 끌여들여 그대로 활용한 작품, <오이디프스>(97), <인간리어>(98), <햄릿 프로젝트>(99) 등 기존 대학로는 물론 서울 어느 무대에서도 상상할 수없는 실험적 작품을 이어왔다. 또한 나무 하나, 풀 하나, 연극이 이뤄지는 공간의 주변 자연환경이 그대로 무대가 되면서 연극이 갖는 축제성은 열기를 더 한다. 이 밖에도 경주 엑스포를 비롯해서 안성, 광주까지도 그는 마다 않고 찾아가는 연극으로 새로운 지역문화를 만들어가는데 참여하고있다. 또한 일본과 캄보디아, 베를린까지 전쟁의 비극으로 출발한 인간의 소외 역사가 담긴 세계를 돌면서 평화와 인권에 대한 화두를 던지는 실험 연극들을 연출해 왔다.

시간이 갈 수록 욕심보다는 포기라는 말이 더 가슴에 담긴다는 김아라씨.
요즘은 자기 무대를 만들어 가는 것보다 남의 무대를 돌며 관객의 입장에서 연극을 보는 관조자의 예술을 즐기고 있다. 무대, 배우, 관객 이라는 삼박자가 맞아야 비로서 구성되는 것이 연극인 바, 그녀의 관극 행위는 그 녀만의 또 다른 연극 행위인 것이다. 경계를 넘나들며 세상이 모두 무대가 될 수 있다는 그 녀. 그리고 인간의 모든 행위가 연극이자 곧 현실일 수 있다는 전제를 하고 있는 그 녀는 자신의 삶을 하나의 작품으로 보여주는 듯했다.
너와 내가 따로 있었던 기존의 예술은 무너지고 현장에서 늘 새롭게 역할을 만들어 갈 줄 아는 삶의 예술가 김아라씨. 어째면 이 넘나듦의 자유로움이 우리 시대 최고의 연출가 김아라를 만든 그 녀만의 에너지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