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똥구리는 제가 굴리고 다니는 말똥덩어리를 아껴서 용의 여의주를 부러워하지 않고, 용 또한 자신이 여의주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말똥구리의 똥덩어리를 비웃지 않는다.
(박지원의 蜋丸集 序)
아름다운 여인을 관찰할 수 있다면 시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여인의 고개 숙인 모습에서 그녀가 부끄러워하고 있음을 보고, 턱을 괸 모습에서 그녀가 원망하고 있음을 보고, 혼자 서 있는 모습에서 그녀가 그리워하고 있음을 보고, 눈썹을 찡그린 모습에서 그녀가 수심에 차 있음을 보고, 난간 아래 서 있음을 보고 그녀가 누구를 기다리고 있음을 알고, 파초 잎사귀 아래 서 있는 모습을 보고 그녀가 누구를 바라보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만약 그녀가 재를 올리고 있는 출가승처럼 가만히 서 있지 않고 진흙 소상처럼 우두커니 앉아 있지 않다고 책망한다면 이는 양귀비에게 치통을 앓는다고 꾸짖고 전국시대의 미인 번희에게 쪽을 찌지 말라고 금하는 꼴이며, 미인의 맵시 있는 걸음걸이를 요망하다고 나무라고 춤추는 자태를 경망하다고 질책하는 격이다.(菱洋詩集序)
자신의 본분으로 돌아가라는 말이 어찌 문장에만 해당되는 것이리요.
일체의 만사가 모두 그렇다.
서화담 선생이 출타했다가 집을 잃어버리고 길가에서 울고 서 있는 사람을 만났다.
“너는 어찌하여 울고 있느냐?”
화담 선생이 물었다.
“저는 다섯 살 때 눈이 멀어서 지금 20년이나 되었습니다. 오늘 아침 나절에 밖으로 나갔다가 홀연 천지만물이 맑고 밝게 보이기에 기쁜 나머지 집으로 돌아가려 하니 길은 여러 갈래요, 대문들이 서로 어슷비슷하게 같아 저희 집을 분별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 울고 있습니다.”
선생이 이에 대답하기를, “네게 집에 돌아가는 방법을 깨우쳐 주겠다. 도로 눈을 감아라. 그러면 곧 너의 집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소경은 다시 눈을 감고 지팡이를 두드리며 익은 걸음걸이로 걸어서 곧장 집에 돌아갈수 있었더랍니다.
이 글 역시 박지원이 창애에게 준 두 번째의 가르침 내용이다.
보고 듣고 대하는 눈 앞의 색깔과 모양에 휘둘려 오히려 정신이 뒤죽박죽되어 살아가는 우리들의 일상을 너무나 교묘하게 일깨워주는 가르침이기도 하다.
늘 경계를 만나 주인이 되라고 말했으며, 보고 듣고 만지는 삶의 경계에 휘둘리지 말라는 충고도 빠뜨리지 않는다.
지팡이를 두들겨 길잡이로 삼으며 익숙한 걸음걸이로 걷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의 본분을 지키는 이치요, 집으로 돌아가는 방법이 된다는 것을 연암 박지원은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