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가보고 싶었던 앙코르 유적지를 간다기에 무조건 따라나선 해인사 성지순례. 해인사에서 새벽 4시에 출발한 우리는 오전 10시나 되서야 베트남 항공VN973 비행기에 몸을 실을 수 있었다. 베트남 시간으로 오후 2시(한국 시간 오후 4시)경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 노이바이 공항에 도착했다.하노이에서 맛본 쌀국수는 일품이었다. 베트남의 대표음식인 쌀국수(PHO)는 주로 아침에 먹는데 뼈를 우려낸 국물에 향이 강한 소스를 넣고 쌀국수를 만든 것이 유래가 됐다고 한다. 일반 국수보다 칼로리도 낮고 맛도 담백해 다이어트에 안성맞춤이다.
하노이는 온통 오토바이 일색이다. 아찔할 만큼 무거운 짐을 싣고 금방이라도 넘어질 듯 달리는 오토바이, 한가족을 다 태운 오토바이, 젊은 여인들을 태우고 달리는 오토바이 그 용도도 제 각각이었다. 순박한 베트남 사람들에게 오토바이는 단순한 교통수단이 아니라 사랑, 우정 그리고 열정을 전달해주는 삶의 일부처럼 보였다.
그리고 가는 길마다 마주친 제복 차림의 군인들은 하나같이 다 무표정한 얼굴들이었다. 웃으면 죽기라도 하는지 무미건조한 표정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열정적이고 끈질긴 나의 인사에 결국 손을 흔들어주었다.
베트남에서의 첫 밤은 하노이의 북동쪽에 위치한 하롱베이에서 묵었다. 대한항공의 CF장면으로 더욱 유명해진 곳이다. 전설에 의하면 바다 건너 외적들이 이곳을 침략했을 때 하늘에서 용이 내려와 폭풍우와 격량을 일으켜 외적을 격퇴했는데 그때 내뿜은 천둥과 번개들이 바다로 떨어지면서 갖가지 모양의 기암이 되어 지금의 지형처럼 수천 개의 섬으로 변했다고 한다. 그래서 용이 내려 온 곳이라는 뜻으로 하롱베이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고 한다. 하롱베이는 바다라고 하기에는 이해할 수 없을 만큼 잔잔하다. 병풍처럼 펼쳐져 있는 수천개의 섬들이 서로 방패 역할을 하고 있어 파도가 거의 일지 않는다. 파도소리 하나 없이 정적만 흐르는 잔잔한 해면 위로는 자연이 만들었다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의 여러 모양의 섬들이 있었다.
유람선을 타고 이섬 저섬을 지나가는데 마치 한폭의 산수화를 보는 것 같았다. 선상에 앉아 하롱베이의 자연에 푹 빠져 있는데 작은 쪽배가 다가왔다. 여행객에게 과일을 팔러 온 가족이었다. 엄마는 노를 젓고 어린 아이는 작은 손 가득 과일을 들고 여행객들에게 과일을 팔았다. 이제 겨우 6살 정도 밖에 안 되어 보이는 어린아이에게 한 가족의 생계가 달려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까만 얼굴에 커다란 눈이 아주 예쁜, 아이의 모습을 기억하고 싶어 카메라를 들었다. 순간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내가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하니 아주 해맑은 미소를 지었다. 그 얼굴은 세상 어느 아이보다 행복한 얼굴이었다. 가방에서 초콜릿과 사탕을 꺼내 아이에게 건내주고 작별 인사를 했다.
캄보디아로 가기 전 호치민 박물관, 호치민 생가, 바딘광장을 들렀다. 바딘광장은 1945년 호치민이 독립선언을 낭독한 자리며, 호치민이 잠들어 있는 영묘 앞 광장으로 베트남의 심장이라고 할 수 있다. 주석 호치민 영묘는 1975년 대리석으로 세워졌는데 외부 모양이 연꽃을 연상케 했다. 붉은 천이 깔려 있는 계단을 따라 건물 내부로 들어갔다. 좁은 통로를 지나 들어간 방안에는 6명의 군인들이 호치민의 유해를 지키고 있었다. 큰 유리관에 고이 잠들어 있는 호치민은 자신이 죽으면 화장하여 북부· 중부· 남부에 묻고, 비석은 세우지 말 것이며, 장례식도 치르지 말라고 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 그의 유해는 1년에 한번씩 방부처리를 위해 러시아에 갔다 온다고 한다.
무질서가 세계 일등 수준이지만 무질서 속에 질서가 숨어 있는 재미있는 나라 베트남을 가슴 한켠에 담고 2시간을 날아 캄보디아 씨에립에 도착했다. 그토록 고대하던 앙코르 유적을 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냥 즐거웠다. 특히 취침 전 받은 발맛사지는 그간의 여독을 풀기에 충분했다.
이른 새벽, 카메라를 3개나 챙겨들고 앙코르 유적지로 향했다. 화창한 여름 날씨다. 비포장 길 위로 자동차가 지나갈 때마다 모래바람이 일어났지만 그 마저 아름답게 보였다. 정글속에 감추어져 있던 앙코르 유적은 나비 채집을 위해 정글로 들어온 프랑스인‘앙리무어’에 의해 처음 발견되었다고 한다. 이 엄청난 유적을 발견했을 때 그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숨이 멎을 것 같은 이 느낌...
어느새 버스는 프놈바켕 입구에 도착했다. 9세기 말에서 10세기 초에 이르는 야소바르만 1세가 세운 힌두교 사원 프놈바켕은 앙코르 초기 왕조의 도읍지였던 롤로스에서 앙코르 지역으로 수도를 옮기면서 시바신께 바치기 위해 지어졌다. 꼭대기에는 평평한 언덕이 있고-요즘에는 남동쪽으로 1.5km 떨어진 정글 한가운데 위치한 앙코르 유적의 석양 노을과 일몰을 구경하는 장소로 더 유명해졌다- 탑의 숫자는 우주를 상징한다. 탑의 배열은 최고층에 5개의 탑, 그 밑단에는 5개의 층이 있고 각 단마다 12개씩의 탑, 기초 바닥 주위에는 44개의 탑들이 세워져 있다. 5개 층에
각각 세워진 12개의 탑은 황도 12궁의 12년 주기의 별자리를 뜻하며, 최고층의 중앙 사원을 제외한 나머지 108개의 탑은 달의 4가지 형상에 음력 월평균일 27일을 곱한 숫자이다. 층이 모두 7개인 것은 힌두교 신화의 7개 천국을 의미한다. 이제는 수많은 방문자들에 의해 앙코르 유적 중 가장 위태로운 유적지가 되어 버린 곳이지만 그 화려함 위대함은 아직 남아 있었다.
영화 촬영지로 더 유명해진 타프롬 사원은 바이욘 사원의 주인공인 자야바르만 7세가 어머니에게 바치기 위해 힌두교의 주신인 브라흐만 신에게 바친 신전이다. 이곳은 원래 왕실의 수도원과 같은 곳이었다.
현재는 커가는 나무들에 의해 심하게 훼손되어 있는데 프랑스 고고학자들은 자연의 파괴력이 어떻게 인간이 만들어 놓은 유적을 파괴하는지 알려주기 위해서 그대로 방치해 두었다고 한다. 사원 곳곳에는 유물들이 그대로 방치되어 있고, 담벽과 건물에는 팜나무가 자라 마치 뱀이 건물을 휘감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한때는 수백명의 수도승들이 머물렀다는 거대한 석조사원은 이제는 주인 없는 집이 되어 역사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타프롬은 기적이다. 위대한 창조의 기적이며 또한 위대한 파괴의 기적이다.
앙코르 톰은 12세기경 자야르바르만 7세가 앙코르 왓트 사원 이웃에 건설한 성곽도시이다. 옛 캄보디아 씨엠립에 있는 크메르 제국의 마지막 수도 유물군으로 \'대왕도\'라는 뜻이다. 앙코르 톰은 주변 3㎞의 수로와 8m 높이의 성벽에 둘러 싸여있다. 외부에는 남대문, 북대문, 서대문, 사자의 문 그리고 승리의 문으로 연결되어 있는데, 각 성문은 탑으로 되어 있고, 동서남북 사방에는 관세음보살이 조각되어 있다.
거대한 규모와 섬세한 조각들. 나는 이곳을 지배했던 크메르 제국의 화려했던 영광의 순간들을 상상해 보았다. 배고픔과 가난함을 해결하기 위해 어린아이 마저 거리로 나와 물건을 파는 현재와는 달리 크메르 제국의 용사들은 화려함과 용맹함으로 세상을 지배할 야망을 꿈꾸었을 것이다.
성지순례 5일째, 동양 최대의 호수인 톤레삽 호수에 도착했다. 믿기 어려울 정도로 큰 호수에는 베트남에서 이주 해 온 사람들을 비롯해 여러 민족의 사람들이 수상촌을 이루며 살고 있었다. 배 하나에 살림살이를 갖추고 가족들이 생활을 하는데 대부분 이웃과 모여살기보다는 한 집씩 따로 떨어져 있었다.
작은 수상가옥은 큰 배가 지나갈 때마다 일으키는 물결에 이리저리 흔들렸다. 한가족이 생활하기엔 너무 낡고 작은 배인 것 같은데도 그곳 사람들에게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은 모양이었다.
톤레삽 호수를 나와 점심 공양을 한후 숙소에서 잠시 휴식을 가진 후 앙코르 왓트로 향했다.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앙코르 왓트는 비슈누에게 헌정된 사원으로 앙코르 유적지 중 가장 큰 사원으로 크메르 건축의 극치를 이루는 역사적인 예술품이다. 구성, 균형, 설계 기술, 조각과 부조 등의 완벽함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 중 하나로 평가 받고 있다.
앙코르의 모든 건축물은 생명을 뜻하는 동쪽이 정문인데 반해 이곳은 죽음을 뜻하는 서쪽이 정문이다.
수리아바르만 2세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 지어졌다는 말이 있는데, 양각 부조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돌며 조각되어 있다. 이것이 힌두교의 장례식 절차에 쓰이는 법도라는 점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앙코르 왓트는 석조 건축물로 만들어진 우주의 축소판으로 지상에 있는 우주 모형이다. 중앙의 탑은 사원의 정 중앙에 세워져 우주의 중심인 메루산을 상징하며 5개의 탑은 메루산의 5개의 큰 봉우리를 나타낸다. 성벽은 세상 끝을 둘러 싼 산맥, 해자는 우주의 바다를 상징한다. 다시 말해 앙코르 왓트의 3층 중앙 탑들이 있는 곳은 천상계, 2층은 인간계, 1층은 미물계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영원하고 싶었던 크메르 제국의 꿈처럼 성지순례의 마지막을 영원히 기억하고픈 마음에 우리 순례단은 앙코르 왓트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었다. 다시 올 때까지 앙코르 유적지가 잘 보존
되어 남아있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발길을 돌렸다.
나는 앙코르 유적을 보겠다는 이유하나만으로 성지순례에 참가했다. 하지만 순례기간동안 내가 보고 겪었던 많은 일들과 그 속에서 만났던 가난하지만 행복해 보였던 순수한 사람들은 성지순례를 가게 된 목적이나 계기 같은 건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알게 했다.
나는 몇 달 전부터 건강이 극도로 나빠질 만큼 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었다. 스트레스의 원인은 바로 나 자신이었다. 나는 내가 늘 부족하고 가진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데 쉽게 만족하지는 못했다. 욕심이었다. 내가 가진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대단한 것인지 나는 미처 알지 못하고 있었다. 가난한 나라가 행복수치는 더 높다는 말이 있다. 반대로 가진 자들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한 감사함과 소중함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늘 다른 것에 집착하고 자기가 가진 것을 잃을까 늘 불안해한다.
나 역시 그런 사람이었다. 특히 여행중 만난 어린아이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 가끔은 어린아이의 시각으로 세상을 보라는 말이 떠오른다. 이것저것 세상을 보는 기준을 정하는 어른이 아닌 순수한 눈으로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어린아이가 되는 것도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