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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의 선정성과 우리의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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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리포트 - 편집실 1995년 09월 163호
잊어버린 사건
1993년 6월 27일 오후 9시 뉴스에 방영되어 교계는 물론 사회적으로 큰 파문을 일으킨 사건이 있었다. MBC의 가장 영향혁 있는 보도 프로그램인 뉴스데스크 시간에 ꡐ카메라 고발’을 통해 불국사의 통일대종이 부정과 비리에 의해 날림 제작되었다는 보도였다. 이 보도는 불국사만이 아니라 불교계가 마치 무슨 복마전이라도 되는 양 매도하여 한국 불교의 명예에 큰 타격을 주었다.
당시의 보도 내용을 간추리면 이렇다. 1989년 타종식을 가진 불국사 통일대종이 4년도 채 되지 않아 고철이나 다름없이 되었으며, 그 원인은 20억 원에 달하는 공사비 가운데 막대한 불사금이 전용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대종의 곳곳에 금이 가서 빗물이 새는 등 실로 있을 수 없는 부정이 불교계에서 자행되어 대종은 장식물에 불과하다는 보도였다.
그러나 MBC의 이 보도는 사실과 전혀 다른 왜곡이었다. 의도적으로 공사대금의 총액만을 부풀려 20억 원이라고 했으나 사실은 13억 원이었고, 주불 과정의 특성상 기포가 발생한 것이며 금이 갔다는 보도도 사실과 달랐다. 부실하게 주조한 결과 한국 종 특유의 장중하면서도 은은한 범종 소리 대신 깡통소리가 난다는 것도 정밀하게 음향을 측정한 결과 허위보도라는 것이 입증되었다.
불국사측은 곧바로 언론중재위의 중재를 신청했으나 중재가 성립되지 않아 법적인 소송을 제기했다. 같은해 7월 27일 불국사 대중 스님을 비롯하여 전국승가대학인 연합, 교권수호협의회 등 사부대중 이천여 명이 MBC 본사를 점거하는 등 허위 왜곡보도에 대해 항의했다. 물론 당시의 총무원은 전혀 미동도 하지 않고 오히려 통일대종 문제를 기회로 삼아 종권의 안정화만을 꾀하려 했다.
어쨌든 그렇게 큰 파문을 일으킨 통일대종 사건은 정정 보도라든가 사과 방송을 얻지 못한 채 법정에서 시비를 가리조자 했으나 MBC라는 배경의 힘으로 재판은 지루하게 시간만 끌고 결말을 보지 못하고있다.
통일대종을 만든 범종사는 오랜 전통을 가진 회사였으나 방송의 위력 앞에 힘없이 무릎을 꿇어야 했으며 지금은 거의 문을 닫은 상태이다. 방송에 의한 피해와 소송에 들어간 비용 등이 주된 원인이다. 교계의 어느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은채 잊혀진 과거의 피해자가 되었다.

MBC에 대한 의문들
통일대종 사건이 있기 앞 해에는 이런 사건도 있었다. 현행 특정 종교를 선전하는 프로그렘을 방영할 수 없다. 그런데 MBC는 여의도 순복음교회가 특정 시간대를 선교방송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였다. MBC의 설명에 따르면, 광고 방송처럼 순복음교회가 대금을 지불한 것이기 때문에 법을 어긴 것은 아니라고 항변했다. 결국 교계의 뜻 있는 몇몇 사람들의 힘에 의해 선교 방송이 저지 되긴 했으나 법적인 처벌에까지 이르지는 못하였다.
대중에게 공개되지 않은 사건도 있다. 지난해 개혁불사가 한창일 즈음에 개혁회의 관계자에게 긴급 제보가 들어왔다. 그 내용은 예천 연꽃마을의 비리를 기획 취재하여 폭로하려는 움직임이 있다는 내용이었다. 물론 MBC의 특별 취재팀이 기획하고 있다는 제보였다. 다행히도 사전에 제보를 받아서 총무원 호법부의 내사를 통해 종단 내부에서 해결할 수 있었다.
호법부가 예천 연꽃마을을 내사한 결과 당시 연꽃마을을 운영하던 아무개 스님의 생활에 적지 않은 문제가 있음이 밝혀졌으므로 적법한 조치를 했다고 한다. 그러나 만일 방송사측이 선정적인 폭로물로 다루고자 했을 때는 작은 문제가 뻥튀기되어 세인의 안주 거리로 장식되
었을 것은 명약관화하다. 문제는 사실을 누가 어떤 관점에서 접근하느냐에 따라 방송의 내용이 전혀 달라진다는 언론의 횡포에 있다.
우리 사회에서 언론 선정성의 대표적인 사례는 1993년 서해 위도 여객선 침몰사건일 것이다. 수많은 사람이 바다에 빠져 죽고 있는데 가장 큰 책임을 진 선장은 살아서 도망갔다는 보도였다. 그래서 선장은 가장 비도덕적인 인물로 전국에 지명수배 되었다. 하지만 나중에 그 선장은 침몰한 여객선 안에서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마지막까지 한 명의 승객이라도 더 대피시키려다 선장은 죽었다. 가장 비도덕적인 인물이 졸지에 가장 인간적인 사람으로 바뀌었다. 언론의 보도에 의해 선장의 가족이 입은 정신적 피해에 대해서는 어떠한 보상도 없었다. 단지 사실을 확인하지 않고 주변 사람들의 제보만 믿고 앞질러 보도했다는 변명만 있었
다. 참으로 가증스러운 일이아닐 수 없다.
MBC가 지난 7월4일 ‘PD수첩ꡑ 을 통해 방영한 소쩍새 마을 관련 보도도 그런 점에서 여러 의문점을 갖게 한다. 한마디로 그 동안의 MBC가 보여준 선정성을 유감없이 발휘한, 그래서 ’MBC의 불교 죽이기’가 관철된 보도였다. 그것은 막연한 주관적 판단이 아니다.
먼저 소쩍새 마을의 비리를 제보한 두 사람은 MBC에 앞서 KBS와 SBS를 찾아갔으나 거절당했다고 한다. 그런데도 유독 MBC만이 접수를 했고 함정 취재를 통해 일력 스님이라는 인물이 카메라에 잡혔다.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몰래 카메라’ 라는 유치한 수법으로 인기인들의 허점을 시청자들에게 보내주어 재미를 본 방송사의 상업성과 선정성이 일력과 소쩍새마을을 요리한 것이다. 교계 기자들의 확인에 따르면 MBC측은 방송 이후에도 소쩍새 마을가족이 다니는 학교까지 찾아가 수업중인 여학생을 불러내서 회유한다고 한다. 실제 MBC는 며칠 뒤 ‘소쩍새 마을의 진실ꡑ 후속편 을 방영했으나 전편의 주요장면, 그것도 가장 선정적인 내용을 재편집한 것에 불과했다. 왜 새로운 내용도 없는 후속편을 방송에 내보냈을까. 말할것도 없이 불교계의 항의를 사전에 봉쇄하겠다는 치졸한 의도에서이다. 통일대종의 경우처럼 방송사 점거와 같은 불자들의 항의를 방송의 힘으로 사전 방지하겠다는 협박에 불과한 연출이었다.

손질할 곳을 단단히
소쩍새 마을은 개인의 원력으로 출발하여 공공의 보금 자리가 된 곳이다. 비록 그 원력의 당사자가 개인적인 흠집이 있다손 치더라도 이미 137명의 지체부자유자가 공동으로 생활하고 있는 자비의 공간이다. 그것은 불교인이다 아니다를 떠나 사회가 책임지지 않는 버림받은 자를 따스히 받아들인 보살행이 실천된 현장이다. 그 동안 불우이웃돕기 행사를 그렇게 벌이며 야단을 떨었던 정부나 언론기관도 하지 못한 ꡐ선한 행동ꡑ 이다. 행사 따위를 거나하게 벌여 일약 유명해진 곳이 아니라, 오로지 입에서 입을 통해 전국의 수많은 후원자가 지원을 자처하고 나섰을 뿐이다. 산간 오지의 폐교터에서 머지 않아 총 공사비 150억 원이 드는 복지시설로 이전하기 위한 대불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일력과 소쩍새 마을의 관계자들이 실제로 얼마만큼의 돈을 착복했는지 방송은 밝히지 못했으나 현재 무려 44억이라는 돈이 투자되었다. 결코 적은 돈이 아니다. 이만한 공사대금을 모으려면 얼마나 많은 공덕이 있었겠는가. 재벌의 뭉텅이 돈으로 모아진 대금이 아닌 후원인들의 작은 보시로 모아졌으니 그 과정이야 어떠했겠는가.
일력이 승적이 있느니 어쩌니 하는 것도 사실은 책임을 회피하려는 소극성에서 비롯된다. 방송의 위력 앞에 일단 종단에 미칠 영향을 줄이고 보자는 태도는 유감이 아닐 수 없다. 특히 방송에 앞서 조계종 총무원에 알아본 결과 조계종 승려는 아니었다는 방송사측의 얄팍한 행동과 맞물려 이 점은 깊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 혹 사전에 방송의 내용을 알고도 승적이 없다는 구실로 내부에서 조치하려 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중요한 과오일 것이다.
사이비 승려의 개인적 사리사욕에 의해 발생한 사건으로 치부하려 한다면 문제를 정확하게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방송이나 신문 등 언론에서 수도 없이 생기고 있는 반불교적인 행태에 대해 교단은 왜 애써 회피하려는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비록 ꡐ선교는 전쟁ꡑ 이라는 살벌한 구호로 무장한 집단처럼 갖은 방법을 다 써 사회를 망치는 무리들과는 다른 전통을 지닌 불교 집안이지만, 남의 집 지붕 위의 기와를 걷어내는 훼불 행동만큼은 좌시하지 말아야 한다.
소쩍새 마을의 한 관계자가 “방송국의 과장 보도로 불교계와 소쩍새마을이 입은 오명을 씻고 소쩍새 마을 가족의 앞날을 위해 공신력 있는 중앙승가대학에 모든 권리를 이양한다”고 말했고, 중앙승가대 관계자들이 현지를 방문하여 원만한 합의를 가짐은 퍽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번 사건으로 MBC에 대한 모니터를 조직적으로 할 필요가 더욱 절실해졌으며 우리가 손볼 곳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알아야겠다는 점을 덧붙인다. 상황을 똑바로 봐야 한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