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해제 방학 때였다. 은사스님을 따라서 충청남도 대둔산 태고사에 계신 노스님께 인사드리러 간적이 있었다. 마침 그 날은 태고사에서는 정기적으로 하는 신중기도 날이었다. 노스님께서 느닷없이 나에게 신중기도를 해 보라고 권하였다. 순간 웬지 모를 화가 치밀어 오름을 느꼈다. 내가 마치 ‘무당 같은 삼류급 종교인ꡑ취급을 받는 기분이었다. 나는 단호히 거부하였다. “저는 산신기도나 신중기도 따위를 하지 않습니다. 기도를 한다면 관음기도나 지장기도를 하고 싶습니다.ꡓ 관음과 지장기도의 우월성을 떠벌이며 그렇게 말하였다.
그러자 노스님은 벼락같은 독화살을 맞은듯 당돌한 나의 거부 반응에 아무런 얘기가 없더니 “어허허허 ..” 웃음 지었다. 옆에 있던 사숙 스님이 화엄신중 어쩌고 저쩌고 하며 나를 설득하였으나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더욱이 그때의 신장들에 대한 나의 불신과 분노는 예리한 칼날과도 같았다. 왜냐하면, 송광사 16국사 진영이 도난당했다는 기사가 신문지상을 도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 도대체 호법신장들은 뭘 하는 거여? 맡은 소임이 ꡐ호법’ 이면, 법을 잘 보호해야 하잖음감? 요즈음 신장들은 신심도 없나..” 나의 이런 호법 신장에 대한 불만 성토에 은사스님은 조금 황당한 듯 눈을 크게 뜨며 , “너는 그렇게 생각하냐? 나는 중들이 중노릇을 제대로 하지 않으니까 그런 일들이 생긴다고 생각한다.”
... 이제 말복도 지났으니 더운 여름은 가고, 서늘한 가을이 성큼 다가올련가. 가을이 오면 비구계를 수지할 터이고, ꡐ사언아시비구便言我是比丘로다 하야..’ 하며 목에 힘을 주겠네 .
실로 부끄러운 일이다. 행자때는 조왕대신께 밥 잘되게 해주십사 하고 마냥 조아리더니 , 그래도 사미계를 받았노라하여 신장들을 나도 모르게 업신여기고 있다.
“중노릇을 제대로 못하니까..” 거듭 되살려지는 은사 스님 말씀에, 한참을 참회의 테두리에 갇혀 ‘나의 중노릇 실태’ 를 반조하였다. 백 일, 천 일 절을 하면 뭐 하고, 백 일, 천 일 관음기도 지장기도를 하면 뭐 하나... 세월이 흐른 만큼 오히려 교만심만 높아지는 것을, 그것을 이른바 ‘我相’ 이라고 한는 걸까.
가을이 성큼 다가오기 전에, 초발심의 자세를 추스르고서 부루나존자의 전도 자세를 흠뻑 배워야겠다.
코살라국의 바라문 출신으로 늘 수행과 전도에 전념해 오던 부루나 존자가 어느날 부처님께 나아가 고하였다.
ꡐ부처님 , 이제 저는 멀리 서쪽의 수로나국으로 가서 정법을 전도하려 하오니 허락해 주소서 .ꡓ
ꡒ부루나여, 수로나 백성들은 성격이 아주 사납고 모질고 거칠다.
만일 그들이 너를 꾸짖고 조소하고 매도하여 모욕하면 어찌하겠느냐?”
“부처님, 만일 그러한 일이 있다면 저는 그 때에 ‘수로나 사람들은 어질고 착해서 , 나를 주먹으러 치고 돌을 던지지는 않으리라.’ 이렇게 생각하겠습니다.”
“부루나여. 맏벌 그들이 주먹으로 치고 돌을 던진다면 어찌 하려느냐”
“부처님, 저는 그때에 ‘수로나 사람들은 어질고 착해서, 나를 칼로 해치지는 않으리라,ꡑ 이렇게 생각하겠습니다.”
ꡒ부루나여, 만일 그들이 칼로 헤친다면 어찌 하겠느냐?”
ꡒ부처님 , 저는 그때에 ‘행자는 부처님의 정법을 구하기 위하여 기꺼이 이 육신을 버리기를 원하는데, 수로나 사람들은 어질고 착해서 나로 하여금 육신의 속박에서 벗어나 큰 공덕을 짓게 하는구나,’ 이렇게 생각하고 미련없이 이 몸을 버리겠습니다.ꡓ
“착하고 착하도다. 부루나여,
너는 잘 수행하여 능히 인욕忍辱과 자제自制를 얻었도다. 너는 이제 수로나로 가라. 가서 여래의 정법을 널리 전하라. 사납고 모진 백성들을 제도하고 부처의 나라로 인도하라.ꡓ
부루나는 곧 수로나로 가셔 남녀 오백 명씩의 백성들을 제도하고, 흉폭한 자들의 박해로 순교하였다.
이 소식을 들은 부처님은 찬탄하시며,
“장하다. 부루나여 ! 그대는 무한 생명을 성취 증득하였구나.ꡓ불교 역사가 있는 한 부루나의 순교는 정법수호의 신장으로 거듭 환생하기 마련이다.
단지 16국사 진영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였다 하여 호법신장들을 비난하고 분통을 터뜨린 나의 모습은 얼마나 볼 품 없었던가. 내 스스로가 정법수호의 신장으로 나서야 할 터인데, 세월 앞에 서면 온통 부끄러움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