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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는 떡을 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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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경당 바람결 - 영덕 1995년 09월 163호
말로 얽어 만나는 것이 아니다. 뜻에 두고 마음을 얽어 만나는 것도 아니다. 만나야 할 것이 만나는 것은 흘러가는 물같이 내버려 두어도 언젠가는 만나야 할 곳에서 만나게 된다. 혹시 오랜 기다림의 회한이 없지는 않겠지만 인위나 작위로 인한 무리는 오히려 때(時)가 되어 자연스레 이루어지는 만남을 상하게 할 뿐이다. 그래서 나는 바다를 기다리기로 하였다. 오래 전부터 바다의 이미지는 등잔불을 밝혀 놓고 먹을 써는 한석봉의 어머니 그것으로 다가왔다. 불을 끄고도 고른 떡을 썰 수 있는 어머니 앞에서 비뚤어진 획과 행의 글씨를 보며 참담했을 아들의 심경, 꼭 그 심경으로 자신이 대치되는 것도 묘한 일이다. 바다를 앞에 하고 있으면 바다보다 고른 떡을 썰고 싶고 떡보다 고른 공부를 이루고 싶다는 생각이 끝없이
밀려 온다. 흔히 시원 始源의 바다라고 한다. 태초부터 생명을 생장시켜 온 모태에 비유하며 모든 것을 포용하는 웅지의 힘을 지닌 것이 바다라고 한다. 탄허스님께서는 일렁이는 큰물이 바다이며 엄청난 저력을 담은 것이 저 바다라고 하였다. 그래서 지치고 힘들 때 새로 시작하고 싶은 많은 사람들이 바다를 찾아가는 것이리라. 내가 아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바다를 좋아한다. 그러나 바다의 이미지는 추상적인 것만은 아니다.

생업의 터전으로 삼는 이들에게는 땀과 눈물의 밥일 수 있고. 긴 항해 끝에 만난 폭풍은 한 치 앞에 죽음이 있는 실존의 고난 그것일 수도 있다. 흔히 산 너머 저 하늘이 그리운 것은 고향의 어머니가 그립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에게 있어 산과 어머니는 뗄 수 없는 것이나 바다를 의지해 자란 사림들에게는 아득한 수평선에서 크나큰 어머니의 품을 느끼고 그곳에서 품기를 바란다. 눈앞의 바다를 핑계로(?) 헤어지는 사람들에게는 이별의 긴 고통이 바다일 것이며, 바다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이들에게는 살아 남은 자의 슬픔으로 화인火印과 같이 남을 것이 바다이다.
내게 바다가 바다일 수 있는 또 다른 의미는 자신이 뼈와 깃털로 이루어진 무엇이 아니라 어떠한 것에도 제한 받지 않는 자유와 비상 그 자체라는 것을 깨달은, 세상에서 가장 눈부신 하얀 갈매기 한 마리.이 세계께서 무엇을 배우는지에 따라 우리가 갈 다음의 세계를 선택하게 된다는 것을 깨달은 조나단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飛) 법을 배우려는 강한 의지,
우리들 하나하나가 사실은 위대한 갈매기이며 끝없는 자유나 다름없단다. 날개 끝에서 날개 끝까지 먼저 너희들이 가진 생각의 사슬을 끊어라 그리고 너희들의 몸에 달린 사슬도 역시 끊어야해. 참된 자신의 모습을 꾸준히 발견해 가는 것 그것이 바로 자네의 스승이야 가엾은 플레처 ! 눈으로 본 것만을 믿으려 말게. 자네 마음으로 보고 자네가 이미 알고 있는것을 찾아야 해...ꡑ
달빛과 불빛이 반짝이는 바다 위에서 부드럽고 다정한 목소리로 플레처를 가르치는 조나단 리빙스턴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눈에 보이지 않는 삶의 완전한 원리를 이해하기 위한 노력과 배움과 연습을 멈추지 말라고 속삭이는 그의 가르침 속에서 물질에 발을 적시며 감로병을 잡고 달빛에 짖어 있는 수월 관음의 모습을 보았다. 화엄 현담에서는 호한대수지모 (호)汗大水之貌라 하여 물이 광대한 모양, 그것이 해海라고 하였다. 청량의 왕복서 기운데 동시구족상응문 同是具足相應門 을 설명하면서 십지경十地經을 의지해서 바다의 열 가지 덕德을 말하고 있다. 첫째, 차제로 점점 깊어짐이오(次第漸深). 둘째, 죽은 시체를 머물게 하지 않음이오(不宿死屍). 셋째, 나머지 물이 가운데 들어옴에 다 본명을 잃음이오(餘水入中皆失本名). 넷째, 널리 동일한 짠맛이오(普同一味). 다섯째, 무진진보를 갖춤이오(具無盡珍寶). 여섯째, 깊어서 밑을 알기 어려움이오(深難淂底). 일곱째, 광대해서 헤아릴 수 없음이오(廣大無量). 여덟째, 대신이 거하는 바요(大身所居). 아홉째, 조수가 한계를 넘지 않음이오(湖不過限). 열째, 널리 큰 비를 다 받아들임이라(普受大雨). 차제로 점점 깊어지는 것은 예의와 법도를 아는 것이니 바다의 예덕이 될 것이며, 뭍을 의지해 살던 중생이 바다에서 목숨을 잃었을지라도 제 살던 곳으로 돌려 보냄은 생명의 존엄을 아는 바다의 의리이니 의덕義德이 될 것이다. 오십이경에 따르면 사천하에 이만오천 개의 강(河)이 있어 바다 기운데 유입하며 또 팔십억 개의 모든 용왕궁이 있어서 각각 그 물이 대해에 들어온다고 한다. 자기의 본디 이름을 버리고 한바다가 되는 것은 대大를 위해 소小를 버리는 화합의 정신이니 화덕和德으로 볼 수 있겠다. 물은 물맛이로되 지기地氣와 천기天氣에 따라 음양수마다 제 나름의 개성이 있을 것이나 바다에 들어와 짠맛으로 동일해지는 것은 피차를 두지 않는 평간덕平竿德이 될 것이다. 보배란 인간의 지혜에 해당하니 무진장한 보배를 간직한 것은 지덕智德이 될 것이요, 깊은 마음씀으로 설혹 불리한 일이 있어도 끝내 의리를 지켜 믿음을 성취해 내는 대인의 기개, 이것은 바다의 신덕信德이다. 사람의 마음에 아픔을 주지 않고 오히려 비고 모자란 것을 따뜻함으로 감싸 안는 자를 어질다고 하니 광대하여 헤아릴 수 없는 것은 바다의 인덕仁德에 해당될 것이다. 비사론에 따르면 아비지옥의 화기 속에서 고통이 치성할 때 해수를 삼키면 능히 지옥고를 소멸한다고 하니 이 엄청난 사실을 회현기에서 보았다. 산 같은 고래에서 아주 작은 고기까지 바다의 품에서 자유로우니 이것은 바다의 포용덕이 될 것이며, 조수가 한계를 넘지 않는 것은 모자라지 않고 넘치지 않는 중용의 덕을 아는 까닭이리라. 드넓은 바다임에도 불구하고 겸허하게 무시로 오는 비를 다 받아들이니 이것은 겸손의 덕이 될 것이다.
인간의 덕목에 바다의 십덕을 나름대로 대치시켜 보았다. 열반경에 이르되, 마치 사람이 대해大海에 들어가 목욕함에 곧 이미 모든 강의 물을 쓰는 것과 같아서 여기에 칭합해 수행하면 일행 一行의 안에 일체一切의 덕德이 가이 다하지 못하리라 하였다. 어찌 바다를 닮으려 노력하지 않을 수 있을까.
먼 길을 달려온 아들을 하룻밤 재우지도 않고 그 밤에 돌려 보내며, ꡒ아직 멀었다. 이것도 글씨라고 썼느냐. 나를 볼 생각 말고 뒤도 돌아보지 말고 떠나거라. 십 년 공부 이루어 내 떡보다 고른 자획이 되기 전에는 돌아올 생각 말거라.”
서릿발처럼 준엄한 어머니. 이제 바다는 그렇게 떡을 써는 어머니가 되어 나의 등을 밀었고 나는 뒤도 돌아보지 못하고 젖은 눈으로 대관령을 다시 넘었다. 채곡채곡 안으로 차는 것이 그리움인 줄 아는 까닭에 본분을 다하며 열심히 살기로 하였다. 정녕 만나야 할 곳에서 마땅히 만날 수 있는 날을 위하여 그리고 나를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또 다른 바다가 되기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