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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각사靈覺寺 산신도山神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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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성보 - 이재연/해인사 성보박물관연구원 2008년 02월 312호
영각사靈覺寺 산신도山神圖 영각사靈覺寺 산신도山神圖
이재연 / 해인사 성보박물관 학예연구원

우리나라에 오래 전부터 뿌리내리고 있었던 전통신앙인 산악숭배 사상은 불교가 전래되는 과정에서 수용되었다고 보인다. 산신도는 이러한 우리의 토착신이 불교의 수호신으로 받아들여지면서 그려진 것으로 사찰의 여러 전각 가운데서 가람에서 떨어진 산기슭이나 언덕에 자리하여 산이 지닌 정기를 제일 먼저 받는 산신각에 모셔진다.

산악숭배에 관한 기록을 살펴보면 중국의《후한서後漢書》<동이전東夷傳>에“그 풍속은 산천을 존중하고 범에게 제사 드리며 그것을 신으로 섬긴다”는 내용이 있다. 이승휴의《제왕운기帝王韻紀》<본기本紀>와《삼국유사》<기이편奇異篇>등에도 환웅의 아들 단군왕검이 아사달에서 산신이 되었다는 내용이 나온다. 또한《삼국유사》와《삼국사기》에도 왕이 산천에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이 여러 곳에 보이고, 고려·조선시대에도 왕조의 산악숭배사상은 계승되었으며 민속신앙에서도 산신은 지역수호신으로서 받들어졌다.

산신각이 사찰 내에 정착된 과정과 산신도가 그려지기 시작한 시기는 불확실하다. 산신이 한국불교 수용 당시부터 사찰에 모셔졌다는 견해도 있지만 현재로서는 산신각이 17세기 이전에 사찰경내에 존재하였다는 증거는 찾기 어려우며, 현존하는 산신도의 화기를 살펴보아도 대부분이 19세기의 것이고 18세기의 작품은 찾아보기 어려운 실정이다.

해인사 성보박물관 소장 산신도는 덕유산 영각사靈覺寺삼성각에 봉안되어 있던 것으로 1992년 해인사로 옮겨져 현재는 박물관 회화실에 전시되어 있다. 삼베채색에 가로 72.7, 세로 85.2 cm 크기의 이 산신도는 1831년 작품으로, 연대를 알 수 있는 산신도 중에서는5번째에 해당하는 이른 시기의 작품이다.
화면 전면에 눈을 부릅뜬 호랑이를 타고 있는 산신이 등장하는데, 몸집이 크게 그려진 산신은
백발의 눈썹과 긴 수염을 휘날리고 있다. 적색 도포의 상반신을 벗어 어깨 반쯤 내려 걸친 듯하고, 포대화상 같은 배 아래쪽 허리에 나뭇잎 띠를 둘렀다. 왼손에는 지성과 학문을 상징하는 파초선을 들고, 오른손에는 구불구불한 지팡이를 대각선으로 들고 지팡이에 경책, 두루마리, 불자를 붉은 천으로 묶어 매달았다. 경책이나 불자 등을 들고 있는 모습은 산신신앙이 불교에 동화된 것으로 보인다.
두 발을 벌리고 서 있는 신장神將은 산신과 호랑이에 비하여 비교적 작은데 칼을 짚고 서 있는 모습이 당당하다. 산신도에 신장상이 나타나는 것은 불화와 산신도의 모습이 결합된 것이라 생각된다. 조사영정 속에서 화불이 표현되거나 불화의 모습이 반영된 것은 몇 점 있지만 산신도 속에 신장이 표현된 것은 19세기 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용광사龍光寺산신탱을 제외하고는 유일한 것 같다.
갈색 배경에 상단의 오색구름과 그 구름에 가려진 소나무 잎과 가지가 희미하게 보이고 산신 뒤로 양쪽에 두 명의 동자가 그려졌다. 산신도에 자주 등장하는 동자는 복숭아나 석류 등의 과일을 들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 산신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연대가 확실한 산신도 중에 산신이 호랑이를 타고 있는 형식의 도상으로는 처음 등장하는 그림인데, 어떤 연유로 산신도에 호랑이가 등장하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범을 신처럼 섬겼다는 기록의 산악숭배 사상에 근원한 것으로 짐작된다.
화면의 아래에 보이는 화기에 도광道光11년신묘辛卯에 금암천여錦庵天如가 그렸다고 쓰여 있으며, 뒷면에 붉은색 범자梵字로 <전신사리보협다라니全身舍利寶多羅尼>를 쓴 종이가 붙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