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과 씨름하다 눈(雪)을 만나다 그림을 고르려고 그림책을 뒤적이다가 어느 한 작품에 눈이 머물렀다.
중국 북경 고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그림으로 당唐나라 때 한황韓滉(723~787)이 그린 것이라고 한다.
문원도文苑圖라는 제목이 붙은 것으로 네 사람의 선비들이 나무 아래 앉고 서서 장차 문장을 다듬거나 글을 추리고 쓰는 모습의 그림이다. 그들 중에는 혹 의논하는 사람도 있고, 혹은 그것을 물끄러미 보는 사람도 있는데, 그 중 큰 바위 위에 몸을 앞으로 의지하고 손에는 붓을 들고 턱을 괴고 서서 하늘만 망연히 보고 있는 주인공의 모습이 오늘도 하염없이 책상머리에 앉아 허공만 바라보고 있는 내 모습과 어찌나 그리도 같은지 한참을 웃었다.
그림을 보아하니 당나라 때 그림이라고 하기엔 그 전해 내려오는 말이 과장된 것이라고 생각되기는 하나 남송 황제였던 휘종이 왼쪽 상단에“한황이 그린 문원도(韓滉文苑圖), 정해년에 쓰다(丁亥御札)(1107), 천하일인天下一人”이라고 적었으니 적어도 남송 이전에 그린 것만은 확실하다 싶다.
한황은 당나라 때 유명한 재상이었는데 그림과 글씨에 뛰어났다고 전한다.《 선인전仙人傳》에도 그 이름이 언급되는 것으로 보아 행적이 예사 인물은 아닌 듯하다. 선인이라고 전할만한 그도 글쓰기는 어려운 바가 있었는지, 아니면 항상 머리 속에서 손끝으로 글이 바로 직선 연결되어 나오는 달필達筆이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내 경우만 보더라도 생각을 적어야 하고 게다가 기한이 있는 글쓰기는 참으로 난감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일전에 전해들은 이야기로 아침에 눈을 뜨면 허공에 글 쓸 거리가 날아다닌다던, 그래서 그것만 추려 모으면 된다던 유명한 시인의 이야기에 얼마나 감탄에 경탄을 더했는지 모른다. 나 같은 둔재鈍才로 말하자면 별것 아닌 글을 쓴다고 며칠을 두고 책상과 한판 씨름에도 결판이 안 나서 삼세판에 다시 연장전까지가 하루 이틀이던가…. 그래서 세상은 참으로 공평하지 않다. 이런저런 망상으로 내 눈길도 다시 창窓을 건너 허공으로 가려는데, 소록소록 내리는 눈(雪)과 덜컥 마주쳤다. 어제 밤 꿈결에 언뜻 눈이 오더니, 아, 어제부터 하늘이 벼르고 벼르던 눈이다. 간밤엔 그리 춥지 않아 눈이 오겠는가 의심하였지만 밤새 추워진 새벽 공기가 사라락 빗물을 말려버렸는가 보다. 샅바 잡고 씨름하던 책상을 팽개치고 밖으로 나가 아직 밟지 않은 눈을 바라보다가 또 그위에 발자국을 내보기도하며 한참을 놀았다.
다시 들어와 그림을 보니 화면 속의 턱을 괸 선비도 나름대로 고민스런 표정이기는 하다. 그럼 그렇지, 그의 표정을 보니 나도 안심이다. 고금의 문인 논객들이 모두 그 아름다운 문장들을 고민 없이 썼다고 하면 내속이 별로 좋지 못하다.
그림 속 턱을 괸 선비의 표정에 나도 안심이다. 고금의 문인 논객들이 모두 그 아름다운 문장들을 고민 없이 썼다고 하면 내 속이 별로 좋지 못하다.
우러러 우주의 한 없이 크고 무한함을 보고 仰觀宇宙之大
고개 숙여 지상만물의 무성함을 살피며, 俯察品類之盛
눈을 놀리며 마음 가는대로 생각을 달려 所以遊目騁懷
보고 듣는 즐거움을 마음껏 누리기에 충분하니 足以極視聽之娛
참으로 즐길 만한 것이었다. 信可樂也
동진시대 서예로 유명한 왕희지王羲之(307~363)가 지은〈난정기蘭亭記〉에 나오는 글이다. 난정기는 영화 9년 어느 봄날 난정에 모인 많은 문인들이 모여 시회詩會를 할 때 그 모습을 적은 유명한 글이다. 무릇 글이란 것이 우주의 한없이 크고 무한함을 보고 만물의 무성함을 마음껏 읊는 것이라는 대목이 얼마나 활달한지 접시 속 담긴 물을 바다로 생각하는 나는 나오느니 또 한숨이다.
다시 그림 속으로 들어가 보니 주인공은 아직도 한 손에 붓을 들고 턱을 괴었다. 눈길은 소나무 가지 위에 어딘가 머물러 있고, 왼손에 종이를 잡고는 바야흐로 뭔가 쓸 작정인데 마침 머리를 풀고 있는 동자가 아직 먹을 덜 갈았는가 보다. 벼루에 먹이 충분히 색을 머금으면 우주의 광활함이든 아니면 짧은 순간에 낡은 자취가 되어 버릴 과거의 즐거웠던 일이든 그 위에 흐르리라. 다시 고개를 숙여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 보니 아직도 그의 손에 두루말이는 하얀데, 세심한 동자는 벼루를 두개 준비하였고, 그 하나엔 먹빛이 이미 검다.
조주 스님에게 어느 때 한 스님이 질문했다.
“저는 총림에 온 것이 처음입니다. 잘 지도해주십시오.”
조주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대는 아침에 죽을 먹었는가?”
그 스님은“예! 죽을 먹었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조주 스님께선“그러면 발우를 씻게나!”라고 말했다.
이 말에 그 스님은 생각하는 바가 있었다.
조주趙州(778~897) 스님의 교화는 소리를 버럭 지르던 임제 스님이나 황벽 스님의 몽둥이질과 같이 거칠거나 가혹하지가 않았다. 그분의 가르침은 흐르는 강과 같이 유순하였고, 소르르 쌓이는 싸락눈처럼 고요하였으나 일상에 빗대어 한결 같고 자유로웠다.
죽을 먹었든 밥을 먹었든 발우를 씻을 일이다. 매일 매일 하고 있으나 다만 알고 있지 못했을 뿐이다. 도道나 선禪이나 그런 일상에 있다는것을 경계하고 가르치신 것이다. 순간 순간 이어지는우리의 삶은 참으로 구체적인 일인데, 그 일념一念은 추상적이라고 여기므로 그것이 너무 멀리가 있는것이 아닌가 싶다.
새벽에 시작한 눈이 아직도 소리 없이 쌓인다. 새벽에 놀던 내 발자국은 이미 덮여 찾을 수가 없고, 오늘 아침엔 그 하얀 눈 위로 새소리 조차 없다. 오늘은 하루 종일 눈이 내리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