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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득한 겨울 밤 하늘엔 달빛만 가득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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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이야기 그림이야기 - 김현정 2008년 01월 311호
어떤 스님이 물었다.

“예부터 조사들께서는 모두 비밀스러운 말씀으로 계속 전수해왔다하니 무슨 의미입니까?”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비밀한 말은 없으며 여래께서는 비밀스럽게 간직한 것이 없으시다. 비추어 깨닫는다 함은 말은 분명하나 형상을 찾아도 끝내 찾지 못하니이 것이‘비밀스러운 말’이다.”


아득한 겨울 밤 하늘엔 달빛만 가득하네

둥근 보름달이 아득한 겨울하늘에 가득하다. 어느 시인이 있어 가을 달빛만을 노래했던가. 오랜만의 보름 달빛이 반가워 뜰 앞에 나서기는 했으나 서성이기에는 북서풍이 제법 굵고 묵직하게 불어오고 있었다. 동지를 전후한 보름을 두고 동지간冬至間이라고 하는데, 지금에 닥쳐보니 엊그제 동지를 보냈다. 동지간에는 밤낮의 길이의 변함이 없다고 한다. 북풍한설에 세월도 잠시 제갈 길을잊는 것일까. 달빛 아래 찬바람만 무심하다. 일년을 보내고 새해를 맞는 요즘 누구나하는 송년送年과 영신迎新으로 바쁜 몸과 마음에 나 역시 잠시 동지의 어중간에서 잠시 서성였던것 같다.

지금의 사람은 그 옛달을 보지 못하였으나 今人不見古時月
오늘의 저 달은 옛 사람을 비추었으리. 今月曾經照古人

오늘은 둥근 달 아래로 뿌연 구름이 지나가고 있었고, 이백李白이 어느 날 달에게 묻던 두 구절이 떠올랐다. 달이 달라진 것이 있었던가. 달빛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으나 천 개의 달빛이 천 개의 강물에 비추듯 사람의 마음에 닿는 저 달빛만 사연이 천 갈래일 뿐이다. 다만 이 밤의 저 달은 옛사람도 보았고, 오늘 나에게도 비추지만 인생의 짧음이 그만 못하여 세월을 오가며 달빛만 탓하고 있다. 사생死生이 다만 큰 길을 오가는 것 같다는 시인의 말이 하나 그를 것이없다.

오늘밤 둥근달에 지난 그믐부터 동쪽 하늘을 밝히던 세성歲星(목성)도 의연함을 잃고 만다. 허, 그것참…,

크기로 보자면 세성이 몇 수는 족히 위가 될 터인데, 내 눈에 닿는 밝기가 다른 이유가 다만 그 거리의 차이라는데 생각이 미치자 곁에 두고 또 멀리할 것에 대해 생각이 미쳤다. 고금의 성인聖人은 그 자리를 가리지 않는다고 하였으나, 아직까지 공부 중에 있는 나 같은 범부야 가까이해야 할 것들에 구별심을 내지 않을 수 없을 터였다. 맑은 바람과 고요한 마음이야 공부를 하는 사람에게는 당연히 품고 갈 일이지만 고요한 마음을 위한 지극한 시간만큼은 꼭 택해야 하는 대목이니 한밤중에 대숲에 스치는 바람소리가 어찌 길 가는 나그네의 벗이라고 만할 수 있을까.

옛 사람들의 그림을 펼치다보니 중국 명나라 때 유명한 화가인 성무엽盛懋燁(생몰년 미상)의《당시산수화책唐詩山水畵冊》의 한 장면이 눈에 크게 들어온다. 당나라 때 시에서 장면을 뽑아 그린 그림들로서 다만 강남의 잔잔하고 물기 어린 풍광을 담기는 하였으나 고즈넉하고 청명한 기운이 전해지는 작품들이다. 성무엽은 중국 명나라 말기의 문인화가로 호를 염암念庵·연암硏庵이라 불렀다. 그의 배경을 자세히는 알 수 없으나 염암이라는 호를 보아서는 다분히 산림처사로서의 모습이 느껴진다. 강소성江蘇省소주蘇州에서 출생했다고 전해지며 산수화에 뛰어나 연림청광煙林淸曠의 정취가 있다는 평을 받았다. 화풍畵風이 매우 정밀하고 세밀하여 기교적인 것이 특징이다.

세밀하고 조밀한 붓질은 그 내면에 소통할 수 있는 허허로움이 있을 때만이 진정한 맛이 나기 마련이다.
그런 점에 있어 댓잎까지 세밀하게 표현된 그 대숲에는 바람이 지나가고 있었고, 나란히 이어지는 봉우리에는 조근한 빗줄기가 있어 선비가 앉은 띠집의 좁은 방안이 더욱 맑고도 크게 느껴지게 하는 것이다.

외로운 대숲 밖 千峰孤竹外
한밤중 소슬한 가랑비. 片雨一更中

화폭 안의 짙은 대숲과 세 그루 나무를 격하고 있는 작은 서재 안을 밝힌 촛불은 묘한 대구對句를 이루고 있으면서도 오히려 적절한 무게를 맞추고 있다. 성김(疎)과 채움(密)의 비례를 이처럼 잘 갈무리할 수 있는 화가가 있었을까. 그의 뛰어난 안목과 구성에 무릎을 칠 따름이었다. 어느새 나도 그 모옥茅屋의 서재속 작은 공간으로 빨려들어가 촛불에 눈을 맞추고, 대숲을 스치는 바람소리와 봉우리를 휘감고 돌아드는 가랑비소리에 젖어본다. 고요히 이루어지는 이것을 바로 정취情趣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예부터 조사들께서는 모두 비밀스러운 말씀으로 계속전수해 왔다하니 무슨 의미입니까?”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비밀한 말은 없으며 여래께서는 비밀스럽게 간직한 것이 없으시다. 비추어 깨닫는다 함은 말은 분명하나 형상을 찾아도 끝내 찾지 못하니 이것이‘비밀스러운 말’ 이다.”

또 물었다.

“숲은 베어도 나무는 베지 말라하셨는데 무슨 말입니까?”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숲은 마음에 나무는 몸에 비유된 것인데, 숲으로 설명해야 두려운 마음이 생기므로‘숲은 베어도 나무는 베지말라’고 한 것이다.”

여래께서 전하신 바나 혹은 조사들께서 이르신 바에 비밀스러운 것이 없다고 하지만 우리네 같은 범부에게는 그저 비밀스럽고 어려운 말일 뿐이다. 옛 성현들은 그저 마음에 비추어 몸을 이야기한 것으로 짐작할 뿐이지만 환한방안은 그냥 그곳에 두고 일경一更 어두운 대숲속에서 마음만 찾아 헤맬 뿐이다.

오늘은 달빛이 밝지만 내일은 그 달빛을 구름이 잠시 덮고 흰 눈이 펑펑 내릴 터인데, 오늘 밤 그 달빛을 또 어디가서 찾을 수 있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