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 정토사 주지 수현스님 거창에 들어서자 날이 저물기 시작한다. 정토사는 마을을 하나 가로지른 다음 산길을 올라야 한다고 했다.
스님은 전화로 마을의 골목골목을 설명하며 내가 더듬는 길을 밝혀준다. 마치 마을의 대소사를 하나하나 일러주기라도 하듯. 그렇게 마을과 마음을 가까이 두고 지내는구나 싶다. 산길로 접어드니 길은 가파르기만 하다. 눈이라도 내렸다면 가는 길을 망설였을지도 모르겠는데, 그렇게 한 발 두 발 산을 오르니 나무 숲 위로 대광전 처마가 슬쩍 고개 내밀어 마음을 이끈다. 캄캄해지기 전에 찾아왔다는 안도감에 더해 절 마당에 몸을 맡기자 마음은 시골집에 온 듯 편안해진다. 오늘 스님을 찾아오길 잘했다는 생각, 법당에 앉아 기도하기로 한 걸 잘했다는 생각, 이렇게 어딘가에 닿을 수 있어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스님은 미닫이 문을 드르륵 열고 나와 추우니 얼른 들어 오라며 손짓을 한다. 춥고 고통뿐인 외지에서 헤매다 돌아온 자식을 맞는 어머니 같다. 따끈한 차부터 내어주시니 몸을 녹인다. 오늘 저녁에 스님을 찾아 온 객은 나 뿐만이 아니다. 신도 두 명이 스님 앞에 앉아 있는데 그들과 스님과의 대화를 들으니 마치 언니 동생 같기도 하고 친구 같기도 하고 엄마와 자식 같기도 하다. 그런데 그들이 불쑥 내미는 말은, 인생에 있어 스승과 제자 사이란다.
“마음속의 스승을 찾았어요. 일주일에 한번씩 스님의 법문을 듣는데, 그게 6일을 버티는 힘이 돼요.”
한 신도의 말이다. 여기저기 많은 법문을 들으러 다녀봤지만 스님의 법문만큼 논리정연하면서도 삶과 밀접한 법문은 없었단다. 그래서 늘 수현 스님을 찾아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스님의 말씀 하나를 가슴에 새기고 돌아간단다.
“종교는 이성으로 하는 게 아니라 감성으로 하는 거예요. 자기 마음이 움직여지지 않으면 아무 것도 안 돼. 음악은 왜 좋아해요? 그 형식을 다 알아들어서 좋아하는 게 아니라 듣고 감동이 있기 때문이잖아. 그래서 마음이 움직이잖아요.”
배워서 내 스스로 느끼고 안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말씀이다. 그래야 관심이 생기기 마련이고 그럼으로써 삶이 좀 더 가벼워졌을땐 마음에서 우러나 누구에게든 배운것에 대해 말을 건넬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스님은 불교가 좀 더 대중화되기 위해서는 감동이 있는 법회가 많아져야 한다고 말한다.
“수행은 이성으로 하는 것이지만 종교는 감성으로 통하는 거예요.”
스님은 수행을 통해 몸소 느껴야 신도들에게도 감동을 줄 수 있단다. 그래서 스님은 스스로 확신이 서지 않는 것은 입 밖으로 내뱉지 않는다. 남의 말도 스스로 수용이 되지 않거나 흡수되지 않으면 옮기지 않는다. 부처님의 말씀 또한 마찬가지다. 자신이 느껴야 신도들도 느낄 수 있고, 그래야만 부처님의 말씀이 그 시대에 맞게 적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불교가 거대한 덩치로 산속에 가부좌를 틀고서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을안에서 속인들의 손을 잡고 함께 수행해야 한다는 말씀이다. 그것은 정토사가 그러한 모습으로, 그리고 수현 스님이 그러한 모습으로 있는 것과 같다. 곁에 있던 신도들이 수현 스님은 정토사 살림, 결제 철마다 해인사에 가서 수행, 포교사업 등 절대로 어디에 안주하지 않는 분이라고 하자 스님은 대뜸 말씀하신다.
“누가 처음부터 밥 잘했나?”
스님이 하고 있는 활동 중에서도 86년에 대학을 졸업하고 87년부터 시작된 어린이포교는 그 역사를 자랑할만 하다. 그때까지만 해도 어린이포교가 활성화되지는 않은 때였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동네 피아노 학원에 가서 피아노부터 배웠다. 음악에 문외한인 스님은 피아노 선생을 어린이 법회 선생으로 모셔오는 데 성공했다. 그렇게 어린이 법회가 시작됐다. 이웃동네 아이들도 모두 걸어서 산을 넘어 법회에 나왔다. 그 사이에 선생도 참 많이 바뀌었고 아이들이 세명만 남았을때도 있었다. 차를 가지고 스님이 직접 아이들을 데리러 다녔는데 눈이 쏟아지는 날엔 힘들다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어느 한순간도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래서 요즘은 뿌듯하다. 이젠 중학생과 고등학생 법회를 초등학생과 같이 해서 고3생들이 초등학생들을 가르치게 해놓으니 이들 사이의 연대관계가 깊어졌다. 십년 넘게 함께 부처님의 말씀을 새기며 자랐으니 형제 같은 사이가 된 것이다. 스님이 말씀하고 있던 그때 마침 여릿한 스님 한 분이 고양이를 데리고 지나간다.
그 스님 또한 정토사 어린이법회 출신이란다.
“어린이 법회 출신들은 사춘기도 순탄하게 넘겨요. 서울로 나간 법회 출신 아이들은 힘들 때면 조계사에 가서 백팔배를 하고 온대요. 그러면 마음이 풀리는거 같대요. 어린이 법회 출신이기때문에 가능한 얘기죠.”
불교의 미래가 아이들한테 달려 있다는 사실은 누구든 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어린이포교 사업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시작하기도 유지하기도 어렵다. 그러나 수현 스님은 시작했고, 쉽게 시작하지는 않았지만 한 번 시작하면 끝까지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정토사는 신도들과 함께 성장해 나아가는 수행처라고 생각해요. 신도들이나 의도반인거죠.”
스님은 신도들과 함께 한문 사경寫經을 한다. 처음엔 볼펜으로 그 다음엔 붓펜, 그러다가 아예 먹과 붓으로 다 바꿨다. 반야심경부터 시작해서 초발심자경문, 원각경도 하고 금강경 사경도 했다. 얇은 한지 밑에 복사한 금강경을 끼우고 그 위에 임서臨書를 하게 했다. 그렇게 해서 책 한권이 다 만들어지면 함께 책을 맸다. 금강경 사경은 어느 정도 됐다는 생각에 요즘에는 화엄경을 사경했다. 쉬엄쉬엄 하다보니 이제 16권 한권이 남았다. 사경을 하는 이들 중에는 초등학교도 제대로 졸업하지 못한 시골 촌부도 있고 허리굽은 할머니도 있고 학교 선생님을 하고 정년퇴직한 사람도 있다. 그렇지만 부처님의 말씀을 적는 데는 신분의 차이도 남녀의 차이도 노소의 차이도 모두 사라져 버린다. 농사짓는 사람들은 여름엔 못하니까 겨울에 와서 많이 하고, 부부가 같이 나와서 사경하는 사람도 있다.
“좋은 점이 아주 많아요. 첫째, 마음이 차분해지니 좋지요. 둘째, 그날그날 사경하는 부분을 가지고 제가 강의를 해요. 한글 경전도 복사 해줘서 한글로 뜻을 알게도 하고요. 셋째, 그러다보니 한문 공부가 되더라고요. 처음엔 더듬거리며 읽던 노인들도 요즘엔 신기하게도 아주 잘 읽어요. 넷째, 그분들이 집에 가서도 사경을 하니까 경전을 생활속에서 함께 하게 되는 거죠.”
금생엔 어떻게 살고 싶은가 여쭌다. 스님은 망설임도 없이 우룡 스님 얘기를 꺼낸다. 어려서부터 우룡 스님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공부하다가 힘들때면 우룡스님께 찾아가 여쭙기도 하고 야단을 맞기도 했다. 강원에 다닐 때, 서장을 읽다가 도저히 모르겠어서 편지를 보내니 답장이 왔는데‘네가 모른다고 하지만 진짜로 모르는 것이면 얼마나 좋겠냐’라고 적혀 있었다. 스님은 공부하며 그 말을 늘 되 뇐다.
스님은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75년에 해인사에 찾아갔다. 그때까지만 해도 스님은 자신만의 수행을 위해서 출가했다. 고등학교 시절, 경주에 수학여행을 갔는데 박물관에 들르게 됐다. 그 시절의 박물관은 열악하고 협소했다. 유물은 많은데 자리가 좁으니 유물들이 다닥다닥 진열돼 있었다. 마당 잔디밭에는 돌부처님도 다닥 다닥 붙어 있었다. 이 부처님 저 부처님 유심히 들여다 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한 부처님이 눈에 들어 왔다. 조각이 잘 된 것도 아니고 이목구비가 뚜렷하지도 않은데, 그 부처님의 둥근 볼에서 순간, 하얀 빛의 파장으로 웃음이 피어나왔다. 발을 못 떼고 한참 서 있다가 집에 돌아와서는 매일같이 생각했다, 오늘은 절에 가야 할지 학교에 가야 할지. 그러다가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출가했고 행자시절을 해인사 약수암에서 보냈다. 지금도
결제 철엔 약수암에 가 있고 해제 철엔 정토사에서 보낸다. 이젠 공부를 하다보니 혼자 공부하는 것만이 수행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내가 착각한 거야. 수행은 절에만 있는 게 아닌데 그땐 수행은 절에만 있는 줄 알았지. 저분들도 속세에서 수행하고 있고 향상하고 있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지요.”
스님이 갑자기 묻는다.“ 왜 살아요?”나는 답한다.“ 태어나 있어서요.”그러자 또 묻는다.“ 왜 태어났어요?” 그러나 나는 대답할 수가 없다. 내가 왜 태어나 있는지, 왜 여기 스님 앞에 앉아 묵묵부답인지도 도무지 알 수 가 없다. 그러자 스님이 말씀하신다.“ 향상을 위해서. 지옥도 우리를 향상시키기 위해서, 금생도 우리를 향상 시키기 위해서 우리를 살게 하는 것이에요. 모든게 성불하기 위한 과정인 것이죠. 아뇩다라삼먁삼보리.”
스님은 말씀 하신다. 그러니 내가 먼저 성불할지 당신이 먼저 성불할지는 모르는 거라고.
스님이 들고 있는 화두는‘만법귀일 일귀하처萬法歸一一歸何處’. 강원을 졸업하고 향곡 스님을 찾아가 화두를 탔다. 화두를 타기 전에 삼천배를 하고 오라는데, 그때 마침 다리에 병을 앓고 있었다. 돌아가야 할 시간은 다가오는데 삼천배는 다 마치치도 못하고 다리는 아프고, 결국 삼천배를 다 했다는 거짓말을 하고 받은 화두다. 누구는 공부가 안 되면 화두를 바꾸기도 하고 누구는 화두를 내려놓고 기도를 하기도 한다는데 수현 스님은 한 번도 놓아 본 적이 없다. 공부는 바른 마음에서 출발 해야하는 것인데 삼천배를 안하고 화두를 받았으니, 그게 마음속에서 끝없이 죄가 되어 기도를 하면서도 화두를 들고 있다. 마치 벌거벗은 듯이 가식 없는 솔직한 법문을 하고 불의를 보면 못 참는 스님이라더니 올곧다. 우리가 살면서 가장 무서운 것은 자신이 자신을 속이는 일, 결국 내가 마음을 잃는 일이다. 스님은 마음을 빼앗는 가장 큰 도둑은 자신이라고 했다. 그래서 삶에서 열심히 배우란다.
“부모 자식간도 도반이에요. 자식을 키우는 사람은 어머니이지만 자식 때문에 어머니도 커요. 사실 가족은 도반이고 함께 걸어가는 수행자야.”
원수가 아니니 서로 미워할 이유도 필요도 없단 말씀이다. 금생에서 함께 수행하는 도반일 뿐이라는 말씀이다. 그러니 사람으로 인해 힘들어하는 것은 자기 자신에게 달린 일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스님은, 스님을 찾아와서 하소연을 하는 이들에게 말한다. 처음엔, 당신이 그렇게 힘든 거 안다고. 그 다음엔, 당신만 그렇게 힘든거 아니라고. 그러니 빚지고 살지 말 일이다. 미움도 하나의 빚이라면 말이다.
모든 망상을 다 떨구어 낸 숲에서 차가운 밤바람이 소리를 내며 내려온다. 나는 마당에 나와 그 소리를 흉내내며 내 마음에 있는 숱한 미움들을 떨쳐버리려고 입을 벌린다. 그러나 새어나오는 것은 허망한 한숨뿐이다.
얼음장에 갇힌 나뭇잎처럼 미움이 저 안에 박혀 있다. 나는 얼음장 같은 가슴을 다 녹여 내 그것들을 꺼 내버려야 하는데 몸속에선 바람만 더 차갑게 불어간다. 언제쯤 나는 업장을 소멸할 수 있을까 하며 찬바람에 머리를 짓 찧는데 스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원력을 여쭈니 원력 같은 건 없다던 스님이 내게 던진 마지막 말씀은 이러하다.
“무엇이든 끝까지 놓지 않고 하다가, 다 못하면 다음에 또 하고 또 하고 또 하고…. 그러면 되지 않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