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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 살아 있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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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서도東話西道 - 이겸 2008년 01월 311호
체 게바라 혁명, 살아 있는 삶

쿠바의‘산타클라라(Santa Clara) ’, ‘체 게바라(CheGuevara)’를 만나러 가는 길. 죽은 자를 만나러 가는 길이 설렘으로 가득하다. 육신은 죽었으나 뜻이 살아 있으니, 산 자를 만나러 가는 것과 다르지 않다. 멀리 보이는 웅장한‘Memorial Comandante Ernesto Che Guevara’. 그의 기념관과 동상이 눈에 들어오자 걸음이 잠시 멈추어진다.‘ Che’를 가리켜 사르트르는“20세기 가장 완전한 인간”이라고 했다. ‘Che’는 누구의 영웅인가? 쿠바인들? 아르헨티나인들? 남미인들? 사회주의자들? 그렇지않다.‘ Che’는 자신의 인생에 혁명이 필요한 자들의 도착점이다. 현재까지 이이를 넘어선 이상주의자는 없다. 자신의 신념과 의지로 헌신한‘젊음의 깃발’이요‘이타주의자’이다.

쿠바에서 최고의 혁명 영웅으로 추앙받는‘에르네스토 체 게바라(Ernesto Che Guevara)’는 아르헨티나의‘Rosario’지방에서 1828년 6월 14일 태어났다.
그가 혁명의 길을 걷게 된 동기는 모터가 달린 자전거를 타고 라틴 아메리카 여행을 하면서부터이다. 그가 본 가난과 불평등은 그에게 혁명가로서의 싹을 틔게 하였다.
그의 이름처럼 되어버린‘Che’라는 호칭은 원래 아르헨티나 어로“hey man!”이라는 뜻이다. 그의 또 다른 상징인 다섯 개의 별이 달린 베레모와 수염. 수염이 많은 사람을 뜻하는‘바르부도스’의 모습은 모든 쿠바 혁명군들의 대표성을 띠는 것이기도 했다. 쿠바 혁명이 성공한 후에도‘Che’는 자신에게 주어지는 어떠한 특권도 거부했으며, 억압 받고 있는 자들을 위해 헌신했다. 그리고 동료들에게도 희생과 엄격함을 요구하였다. ‘Che’는 다시 볼리비아로 향했고, 1967년 10월 9일 볼리비아정부군에 의해 사형되어 암매장 되었다. 10월 17일‘아바나(LaHavana) ’의 혁명광장에는 그를 추모하기 위한 인파가 100만 명 이상 모여들었고, 그를 애도하는 울음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1997년 그의 시신이 볼리비아에서 발견되어 쿠바로 옮겨졌고‘Memorial Comandante ErnestoChe Guevara’에서 쉬게 되었다.

‘Che’는 이기적이지 않은 새로운 인간의 모범이다. 목숨을 던져 영혼을 남긴 자이다. 격하고 짧은 생을 거치는 동안 가난하고 억압 받는 이들을 대변해 행동했으며, 자신을 위한 이득을 취하지 않았다. 영웅은 누가 만드는가? 스스로를 위해 쌓은 성은 그 자신의 몸이 죽는 동시에 사라지고 만다.‘ 체 게바라’를 우상으로 만든 이들은 쿠바인들이 아니다. 씨앗이 쿠바에서 퍼져나갔을 뿐이다. 우리는 누구나 혁명가다. 각자의 삶이 혁명의 대상이며, 과정이다.‘ Che’가 남을 위해 희생해야 한다는 의지만으로 치열한 삶을 선택한 것은 아니다. 그가 곧 타인이며, 타인이 곧 자신이라고 여겨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혁명은 언제나 죽지 않는다. “Che처럼 될 것이다(Seremos Como Che).”이 말은 그가 죽임을 당한 순간부터 혁명을 이어가려는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는 잠언이 되었다. 꿈을 가진 많은 이들의 마음에 각인된 메시지이다. 나약하기만 한 한 인간이 스스로를 극복하고 이타주의를 실천한 것을 본받으려는 슬로건이다. 그대에게도 혁명이 필요한가? 생각은 체험이 아니며, 경험 없는 그림자에 불과하다. 행동 없는 생각은 망각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의 인생엔 혁명이 필요하다. 삶으로부터의 혁명, 죽음으로부터의 혁명! 잠 못 이루는 어둠을 지샌 생각만으론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기존의 습관을 바꾸는 것부터 개인의 혁명은 시작된다. 이제 총을 들고 나서는 혁명, 머리로 하는 혁명은 끝내야 한다. 이제 혁명은 자기 자신에게로 향해야 한다. 마음을 향해 아프게 파고드는 정체를 만나야 한다. 자신의 인생은 누구에게도 의지할 수 없다. 오직 밝은 뜻을 따라나갈 때, 비로소 삶은 살아있게 된다. 나의 혁명은 누구에게 맡길 수도 없고, 누가 대신해줄 수 도 없다. 지금 혁명에 나서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