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맛의 무서움오래 전부터 내려오는 우리 이야기 가운데 겨울밤이면 생각나는 게 하나 있다. 땅이 꺼져라 우는 꼬마에게‘곶감 줄게’라고 하면 눈물을 뚝 그쳤다는 옛날이야기. 달달한 먹을 거리가 없던 그 시절에는 볕에 잘 말려 하얀 당분이 핀 곶감이 환상의 맛이었을 거다. 호랑이가 나왔던가, 아닌가 하며 가물가물하게 기억하는 옛 이야기 속에서도 이렇게‘우는 아이도 멈추게 하는’곶감은 잊혀지지 않는다.
‘단맛’이 주는 만족감은 생각보다 크다. 설탕 함량이 많은 사탕을 입에 물면 혈당이 올라가면서 기운이 나고 기분이 난다. 초콜릿의 경우는 기분이 좋아지게 하는 성분까지 들어있어 우울증치료 식단에 포함될 정도다. 당도가 최고조에 이른 잘 익은 과일 한 입은 식후에 그만이다. 계절을 듬뿍 머금은 향기와 단물이 가득하여 입 안을 당장 향기롭게 하니 더 이상 밥 생각이 들지 않는다.
‘단맛’이 심리적으로 미치는 효과가 이렇게 크기 때문에 주의할 점도 많다. 우울할 때마다 단것을 찾는 습관이 들게 되면 비만으로 이어질 수 있다. 더 단 술, 더 단 과일을 좇다 보면 욕심보만 늘어 만족을 모르게 된다. 더 무서운 것은 단것을 입에 무는 순간 잠깐이나마 근심거리를, 내가 무엇 때문에 괴로웠는지를 아예 잊게 된다는 사실!
핫 초콜릿
고대 유럽 왕실의 왕들이 애첩에게도 인색하게 굴었던 주전부리가 있었으니 바로 핫 초콜릿이었다. 카카오 열매를 쪼개서 얻을 수 있는 쌉쌀한 맛의 엑기스를 따뜻하게 데워 음료로 마셨는데, 그 맛과 효능이 탁월해서 보석처럼 아껴가며 먹었다한다. 현대에 와서는 초콜릿이 여러 형태로 변형되어 상품화되었기 때문에 루이14세가 즐겨 마시던 핫 초콜릿의 맛을 느낄 수는 없는 게 현실이다. 시중에 파는‘코코아’분말이나 초코 우유 등은‘카카오 맛’을 흉내낸 향료와 설탕의 혼합물인 것. 옛 사람들이 만들던 핫 초콜릿을 흉내라도 내고 싶다면 순도 높은 초콜릿이 필요하다.
최근에는 카카오 열매에 항암, 항비만 작용을 하는 성분들이 있다고 밝혀져 순도 높은, 즉 버터와 설탕과 같은 불순물이 덜 첨가된 초콜릿이 속속 시판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75퍼센트라 적힌 초콜릿은 순 카카오 엑기스가 삼분의 이나 들어 있다는 얘기다. 요즘은 99퍼센트까지 순도를 올린 초콜릿도 나와 있어서 초콜릿 마니아들을 행복하게 한다. 이렇게 순도가 높은 초콜릿을 잘게 부수어서 스댕 볼에 담고, 볼 채로 끓는 물 위에 올려 중탕한다. 중탕하는 내내 나무 주걱으로 초콜릿을 저어 줘야 바닥에 눌어붙어 타지 않는다. 불을 약하게 하고 잘 젓다보면 금방 초콜릿이 녹는데, 이상태가 바로 옛 왕들이 먹던 핫 초콜릿과 비슷한 상태인 것이다. 순도 높은 초콜릿일수록 설탕 함량이 적기 때문에 이렇게 녹이고 나면 짙은 커피 만큼 쓴맛이 난다.
향기로운 쓴맛!
채식주의자가 아니라면 여기에 따뜻하게 데운 우유를 부어가며 농도나 쓴맛을 조절할 수 있다. 설탕이나 시럽, 캬라멜을 조금 넣거나 계피가루와 같이 톡 쏘는 맛의 향신료를 얹어도 별미다.
초콜릿이 주는 행복감은 영화를 통해서도 자주 볼 수 있다. 갖가지 초콜릿과 핫 초콜릿 음료를 만드는 쇼콜라티에(불어로 전문 초콜릿 수 공업자)가 주인공인 영화‘초콜릿’을 보자. 절대 종교가 지배하고 있는 마을에 어느 날 쇼콜라티에가 이사를 온다. 금욕과 절제를 미덕으로 살던 마을 사람들이 초콜릿을 한 번 맛 보면 얼굴과 몸에 자유로운 기운이 넘친다. 기도를 덜 하고 사랑 표현만 늘어간다. 종교인의 중재 하에 화해를 할 수 있던 사이 나쁜 이들도 스르륵 사이가 좋아진다. 점점 종교인들이 설 자리를 잃고 마을 사람들은 규율과 제약을 의미 없어 한다. 결국 그 마을에는 초콜릿 금지령이 내려지게 되는데… 영화 속에서는 초콜릿이 이렇게 주술적인 힘을 가진 먹을거리 그 이상의 존재로 묘사되기도 한다는 사실! 영화‘초콜릿’을 몇번이나 봤어도 핫 초콜릿 한 잔이 뭐 그리 대단할까 생각을 했던 나.
며칠전, 가여운 일을 당한 동생 걱정에 잠을 이루지 못하다가 핫 초콜릿 한잔을 마시게 되었다. 따뜻하고 진한 액체가 내 목구멍을 타고 뱃속까지 떨어지면서 온 몸을 데워주는 느낌이 들었고. 계피가루와 어울린 카카오 끝 맛이 입 안에 남아 순간 감탄사가 나왔다. 바로 그 순간, 1~2초 동안 동생 걱정을 잊었다. 이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너무 달고 너무 맛있는 것은 위험하구나! 알게 되었다.
한 입의 즐거움이 근심, 외로움, 치열함 따위를 순간 잊게 만들기 때문이다.□
박재은님은 프랑스 꼬르동 블루요리 제과부문 전 과정을 수료하고 깉은 신앙심을 바탕으로 현재 요리사와 파티 플래너로 활약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