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호 보기


무자년 이야기

이전 게시물 다음 게시물
이달의 이야기 - 백무산 / 시인 2008년 01월 311호
판화  강행복 무자년 새해 새아침에

새해에는
좌절하게 하소서
새해에는 그만
곤두박질치게 하소서

썩은 시체를 잔뜩 지고 왔나이다
그림자를 지고 뻘뻘 땀을 흘리며 왔나이다
나를 잡아먹은 놈이 나의 탈을 쓰고 왔나이다

쓰러뜨리소서
새해에는 그만 허물어지게 하소서

남의 글과 어지러운 말을 좇아
이곳까지 왔나이다
입으로는 샘물처럼 말하나
마음엔 흙먼지가 일고 있나이다

소란하게 달려 왔나이다
기름이 다 타도록 달려왔나이다
숲을 쓰러뜨리며 달려왔나이다

입으로는 살리는 일을 말하나
발로는 산 것을 짓밟고 있나이다
머리로는 가난을 말하나
곳간엔 욕망이 구더기처럼 가득하나이다

뜨는 해는
어둠을 가르는 칼과 같나이다
드는 칼로 이냥 베소서

희망이 오면 희망을 베고
자비가 오면 자비를 베고
구원이 오면 구원을 베고
사랑이 오면 사랑을 베고

그리하여 어디에도 기댈 수 없게 하소서
어디에도 발붙이지 못하게 하소서 그리하여
덩실 떠오르게 하소서

뜨는 저 해는 한 번도
땅에 내린 적이 없나이다
우린 아직 한 번도 살아 본 적이 없나이다
새롭다는 건 처음 사는 일이나이다

그리하여 해를 기다리는 일은
헛되고 헛된 일 새 해가 떠오르듯이
그렇게 말갛게
우리가 떠오르게 하소서
곤두박질친 둥근 거울 하나 덩실
떠오르게 하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