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인사진상전眞常殿다층석탑해인사성보박물관 조각실에는 관람객들이 쉽게 놓치고 가는 곳이 있다. 해인사 다층석탑多層石塔이라는 이름으로 전시되고 있는 석탑편이 그것이다.
탑의 재료에서부터 일반적인 화강암이 아니라 쑥떡을 연상시키는 청석을 사용했으며 목조건축물을 아주 세밀하게 묘사한 것이 여간 정성을 쏟은 것이 아니다. 탑신부塔身部각 면에는 여래상을 조각하고 측면에 미륵, 대세大勢등의 명호를 새겨놓았다. 옥개석은 지붕골과 막새기와의 문양은 물론이고 처마 아래의 공포 包까지도 세밀하게 새겨 놓았다. 또한 일부 남아 있는 기단부에는 사천왕, 팔부신중八部神衆, 신장상神將像등의 조각이 있다. 특히 처마 아래 공포와 공포 사이에 모셔져 있는 좌상은 보는 이로 하여금 귀여운 동자승을 떠올리게 한다.
양식적으로는 다층다각탑이 유행한 고려시대 원元간섭기의 경천사지 10층석탑을 모방해 세조 연간(세조 11년)에 세워진 원각사지 10층석탑(국보 2호)을 계승한 것으로 추정된다. 탑이 모셔졌던 곳은 기록으로만 전해지는 진상전眞常殿으로 진상전은 금탑전金塔殿으로도 불리어졌는데 이는 진상전에 모셔졌던 2기의 탑에 금박이 입혀져 있었기 때문이다.
진상전(금탑전)에 대한 기록은 조위(曺偉, 1454~1503)가 지은 <해인사중수기海印寺重修記>에 나타난다. 홍치弘治연간인 1488년 봄 인수·인혜대비가 세조와 정희왕후의 뜻을 이어 현재의 대장경판전을 증·개축할 때 판당板堂에서 3칸을 뜯어 대적광전 서쪽에 지은 건물이라 한다. 이후의 기록으로는 신필청(申必淸, 1647~1710)의 <유가야산록遊伽倻山錄>에 법당 서쪽 탑각塔閣에 금탑 2기가 있는데 좌측은 28층, 우측은 33층이었다고 한다. 하진태(河鎭兌, 1737~1777)의 <유가야록遊伽倻錄>에도‘법당 내부에 금탑 2기가 있고 서탑은 33층, 동탑은 28층이며 금색이 만환하다’라는 기록이 보인다.
그런데 정식(鄭, 1683~1746)이 지은 <가야산록伽倻山錄>에는‘동서로 33층의 금탑 2기가 있고 스님이 말하길 하늘(수미산)을 뜻한다고 했다’라고 기록하고 있으며 이덕무(李德懋, 1741~1793)가 지은 <가야산기伽倻山記>에는‘오른편의 것은 33층이고 왼편의 것은 20층이다’라는 기록이 전해진다. 기록한 이에 따라 층수가 달리 나타나는 것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일부 소실되었거나 층수를 헤아리는 방법의 차이에서 오는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28이라는 숫자는 천天의 주위에 있는 28좌의 별을 뜻하며 33은 6욕천欲天의 하나인 수미산 정상의 하늘을 상징하는데, 중앙에 제석천帝釋天이 있고 4방으로 8명의 천인天人이 있어 합해서 33천天이 된다는 고대 인도와 중국의 천도설天道說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겠다. 다층석탑이라고 하나 그 층수와 전각 안에 모셔졌다는 것은 분명 주목할만하다.
진상전은 인수·인혜대비가 선왕의 뜻을 이어 판전을 증·개축하면서 그 부재로 지었으며 현재 박물관에서 소장중인 세조 어진御眞역시 금탑전에 봉안했다는 화기畵記가 있는 것으로 보아 진상전의 금탑 역시 세조와 관련이 있지 않을까라는 추측을 조심스럽게 해본다. 또한 진상전 안에는 비단으로 조성된 서역의 탱화와 고운 최치원 선생의 영정이 같이 모셔져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