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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는 진실한 자기 실현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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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곁의 부처 - 장휘옥 1995년 09월 163호
ꡐ무상ꡑ 의 설명에서 알 수 있듯이, 불교에서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諸行)은 끊임없이 변화해 갈 뿐 영원히 존재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음(無常)을 강조하여, ‘제행무상ꡑ 을불변의 진리로 삼았다. 무상의 이치에 따르면, 우리 인간도 고정된 자기가 있을 수 없으므로 영원히 ꡐ나’ 라든지 ‘내 것ꡑ 이라고 고집하며 집착해서는 안된다. 이것을 불교에서는 ’무아無我ꡑ 의 도리라 하고 인간뿐 아니라 모든 존재(諸法)에게 다 해당되므로 ‘제법무아’ 라 하여 불교의 독특한 진리로 삼았다.
무아란 일반적으로 ‘내가없다,ꡑ ’주체가 없다‘ ꡐ영혼이 없다’ 등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지만, 불교가 말하는 무아는 ‘내가 아니다’ , ‘진실한 나의 모습이 아니다’ 라는 뜻이다.
불교에서는 우리의 존재를 분석하여 정신적인 면(色)과 육체적인 면(受, 想, 行, 識)의 다섯
가지 요소로 이루어졌다고 보며, 이 다섯 요소를 오온五續이라 한다. ꡐ온ꡑ 이란 ꡐ모임’, ‘집합’을 의미하며, 이 다섯 요소의 결합관계는 먼저 육체(受)가 있고, 그것을 의지처로 정신이 작용하여(색), 그정신 현상을 지각하고 감수하여 마음속에 상을 만들고(想), 그상에 따라이것에 적극적으로 작용을 가하여(行) 최후로 음미하고 인식 확인(識)하는 과정을 나타낸다.
이와같이 우리의 존재는 오온이라는 다섯 개의 집합체에 지나지 않으므로 이 요소의 결합
관계가 흩어지면 우리의 존재도 없어져 버린다. 그러므로 이러한 오온의 하나하나에 대해
‘나’ 라든지 ‘내 것’ 이라고 집착함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오온으로 뭉쳐진 우리의 존재가 진실한 나의 모습이 아님ꡑ 은 당연하다.
그런데 여기에서 잠시 생각해 보면, 모든 존재가 무상하다한 것을 알면 인간도 또한 무상한
존재이기 때문에 ‘무아’ 함은 당연한데 무엇 때문에 되풀이해서 설명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길지도 모른다. 이것은, 석가모니 당시 인도에는 우파니샤드 철학에서 말히는 절대적 원리인 아트만을 개인 존재의 자아로 간주하여 ‘나’ 또는 \'내 것‘ 이라 고집하고 있었기 때문에, 석가모니는 그것을 부정하려고 무아를 설한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 석가모니가 무상의 이치를 설했음에도 불구하고, 포괄적 의미에서 볼 때 무상의 개념에 포함되는 무아의 도리를다시 설한 것은, 불교는 인간을 본위로, 인간의 삶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것이 그 목적이기 때문에 만물의 주체인 인간을 중심으로 무상을 올바로 설함으로써, 당시 유행하고 있던 절대 원리인 개인 존재 아트만(자아)을 영원한 실체로 오해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강조함과동시에 자아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본디의 자기를 실현시키기 위함이었다고 할 수 있다.
윈시 경전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석가모니가 성도한 뒤 2년째 되는 해였다. 그가
머물던 죽림정사 근처 마을에 청년이 서른 명 있었는데 오랜만에 부인들과 함께 모임을 가지기로 하였다. 그때 미혼이던 한 청년은 생각 끝에 마을로 내려가 술집 아가써를 부인처럼 꾸며서 약속한 숲으로 데리고 갔다. 여흥이 무르익어 갈 때 문득 정신을 차려 보니 술집 아가씨가 없어졌다. 서둘러 짐을 놓아둔 장소로 가 보니 중요한 물건은 모두 홈쳐 가고 없었다. 청년들은 숲속의 이곳 저곳을 찾아 헤매다 우연히 석가모니가 조용히 좌선하고 있는 곳에 이르렀다. 일동은 입을 모아 여자의 인상착의를 이야기하며 근처로 지나가지 않았는지 물었다.
석가모니: 너희들은 대단한 여자를 찾고 있는 듯한데 그여자보다 더욱 급히 찾지 않
으면 안되는 중요한 것이 있음을 잊고 있지는 않느냐?
청년들: 그것이 무엇입니까?
석가모니: 그것은 너희의 마음이고 진실한 자기 자신이다. 마음이라는 것이 있느냐, 없느냐?선한 것이냐, 악한 것이냐? 유한한 것이냐, 아니면 무엇인가에 구속되어 있는 것이냐? 만일 마음이 자유로운 것이라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느냐? 너희 인생의 근본 문제를 해결하는것, 곧 진실한 자기를 파악하는 것이 그 여자를 찾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일이 아니겠느냐?
이 말에 청년들은 모두 감격하여 집을 떠나 머리를 깎고 석가모니의 제자가 되었다. 여기서
진실한 자기를 파악함이란 무아의 도리를 깨닫는 것, 곧 진실한 자기에 눈을 떠 자기 자신을 지배하는 영원한 실체란 어디에도 없음을 올바로 인식하고 참다운 자기를 실현함을 말한다.
우리는 생멸하는 무상한 존재이고, 영원히 ‘나’ 라고 고집할 수 있는 실체가 어디에도 없는
무아한 존재인데도, 영원히 살고싶은 욕망으로 자아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해서 고통이 생기게 된다. 이 고통은 인간의 필연적인 모습이며, 모든 생명 있는 것은 피할수 없기 때문에 불교는 ꡐ존재하는 모든 것은 고통ꡑ 이라는 일체개고 一切皆苦를움직일 수 없는 진리로삼았다.
석가모니는 이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근본원인을 추구한 끝에, 탐내는 마음(貪心), 성내
는 마음(瞋心), 오만한마음(慢心)과 같은 번뇌를 발견하고 그 밑바닥에는 무명無明, 곧 무지
가 숨어있음을 밝혀내었다.
마음은 언제나 번뇌에 의해 구속되고 또한 지배되고 있지만 우리는 그것을 눈치채지 못하
고 있다. 번뇌가 있기 때문에 인간의 마음은 자유롭지 못하고 진리를 볼 수 없으며 갖가지 고통으로 시달리는 것이다. 이러한 번뇌의 속박을 벗어나 마옴이 자유자재하게 되는 것이 해탈이고, 무명을 끊고 마음의 진리를 발견하여 진리와 하나가 되는것이 열반이다. 그러므로이러한 현실을 초월한 경지를 열반적정 涅槃寂靜 이라 한다.
이상의 내용을 종합해 보면 ꡐ무상‘ ‘고’ ‘무아’ 설은 결국 우리로 하여금 불교의 이상 경지
인 열반으로 이끌기 위한 교설이며. 이 가르침에 의해 우리는 절대의 평안한 경지인 열반적정에 이를 수 있는 것이다.
‘제행무상’ ‘제법무아’ ‘열반적정ꡑ을 도장으로 찍은 듯이 움직일 수 없는 세 가지 진리라
는 의미에서 삼법인三法印이라 하고, 이것에 일체개고를 더하여 사법인이라고도 한다. 이것
은 원시 불교의 기초적인 생각을 나타낸 것이지만, 그 뒤의 발달 불교에서도 일관되는 중심 사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