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바람이 쓸쓸하다. 쓸쓸한 초겨울밤이 슬슬 길게 느껴진다. 아까 먹은 저녁은 소화가 다 된 지 오래고, 뭐를 좀 먹자니 상을 차리기도 귀찮다. 이럴 때 제일 반가운 맛이 감자, 고구마다. 감자
다시 감자, 고구마 얘기로 돌아가자. 어린 시절부터 감자와 고구마를 유난히 잘 먹던 내게 할머니는 늘‘밭으로 시집가려고?’하셨다. 다른 아이들이 과자나 프라이드 치킨을 먹을 때, 나는 고구마나 감자를 더 많이 먹었던 것 같다. 콜라와 인스턴트 음식을 못 먹게 하셨던 엄마의 영향이었겠지만 아무튼 뽀얗게 찐 감자를 설탕 한 번 찍었다가, 소금 한 번 찍었다가 하면서 잘도 먹었다. 삼십여 년이 흘러 요리사가 된 지금에도 그 식성은 여전하다. 내가 만든 메뉴에는 감자나 고구마를 이용한 요리가 꼭 하나씩은 끼게 마련. 예를 들면 이렇다.
햇감자가 나오는 계절이면 껍질 벗겨 토각토각 썰어 밥을 짓는다. 건강한 햇감자가 씹히는 감자밥을 만드는 것이다. 아님 감자랑 두부를 횡으로 썰어 켜켜로 포개어 장조림을 한다. 간장과 멸치를 기본으로 한 양념에 물엿을 더해서 짭짤하면서 윤이 나는 찬을 만든다. 카레 감자와 고구마
수자타라이스나 하이라이스 등을 만들 때에도 감자는 꼭 필요하다. 카레나 하이라이스 소스가 보글보글 끓다가 감자의 전분이 스며 나와 걸쭉해지는데, 그 농도가 기가 막히게 밥과 어울리기 때문이다. 한 입맛 하는 프랑스 사람들도 감자를 즐겨 먹는다.
아침의 자투리 시간에 감자를 쪄두었다가 다양하게 이용하는데, 우선 감자가 뜨거울 때 으깨어 버터와 섞어 부드럽게 만들고, 소금과 후추로 간을 맞추는‘으깬 감자’요리가 있다. 으깬 감자는 어떤 서양 요리와도 두루 어울려서, 만들어두면 남녀노소가 다 잘 먹는다. 으깬 감자를 냄비에 넣은 다음, 물이나 야채 육수를 붓고 거품기로 저어가며 으깬 감자를 풀면 감자 수프를 만들 수 있다.
세지 않은 불에 자작자작 끓이면서 구운 대파 조각이나 허브를 더하고 소금, 후추로 간을 맞춘다. 따뜻하게 끓은 다음 우유나 생크림을 더하여 부드럽게 만들면 감자 크림수프가 완성된다. 프랑스 사람들은 감자 수프를 겨울에는 뜨겁게, 여름에는 차갑게 해서 먹는다. 특히 차갑게 식힌
감자 수프를 더운 여름날 식전에 몇 술 들이키고 본식을 먹기도 한다. 이렇게 감자는 문화와 계절의 구분 없이 사랑받는 식재료지만, 요즘처럼 날이 쓸쓸해지는 초겨울에 된장찌개에서 건져 먹는 뜨거운 감자 맛이 최고다.
고구마
최근‘고구마 건강법’이 속속 발표되고 있다. 고구마를 잘 먹으면 간이 나 위의 회복을 돕고, 식이섬유가 풍부하여 장 건강에도 좋다는 것이다.
심지어 고구마를 꾸준히 먹으면 다이어트의 효과까지 볼 수 있다니 귀가 솔깃할 일이다. 구수하고 깊은 맛을 내는 감자에 비해 단맛이 많아 서양에서는‘스위트포테이토(sweetpotato)’라고도 부르는 고구마. 으깬감자를 만들 때처럼, 고구마를 으깨서 버터와 섞고 소금, 계피 가루를 넣어 부드러운 반죽을 만든다. 이 반죽을 손가락만한 고구마 모양으로 다시 빚어서 겉에 달걀 물이나 버터를 바르고 오븐에서 노릇하게 구워내면 멋진 디저트가 된다. 예전 명동의 지하상가에 있던 빵집에서 팔던 메뉴인데, 20년도 더 지난 지금은 맛 볼 수가 없어서 직접 만들어 먹곤 한다. 고구마 좋아하는 일본 사람들도 날이 추워지면 길거리에서 군고구마를 사 먹는다. 고구마 트럭이 오면 확성기를 연결한 카세트 라디오에서 ‘야끼이모~ 야끼이모~(군고구마~ 군고구마~)’하는 처량하고도 반가운 음색이 동네에 울린다.
도넛 반죽 속에 으깬 고구마를 가득 채워 튀겨내기도 하는데, 겉에 설탕을 묻히지 않으면 찬으로 먹어도 맛있다. 동경 외곽의 어느 시장 골목에 이 고구마 도넛을 명물로 튀겨내는 반찬집이 있는데, 저녁 시간이 되면 고구마 도넛을 사려는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린다. 집에 오븐이 있으면 은박지로 아무렇게나 싼 고구마를 툭 던져 넣고 군고구마를 만들자. 180도 정도의 오븐에 넣어둔 밤고구마를 꺼내 은박지를 벗기고 껍질째로 반을 가르면, 노오란 속살에 김이 오르는 그 모습이 뿌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