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생이 아프기 때문에 자신도 아프다는 유마 거사와 그런 유마 거사를 문병 온 문수보살의 대화는 이미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연꽃 위에 발을 얹고, 금강좌에 앉아 고요하게 합장하고 있는 문수보살은 바야흐로 시작될 불이법문을 준비하고 있는 듯 보이며, 당시 사대부 모습으로 묘사된 유마힐은 손가락 두개를 들어 불이법不二法을 웅변하는 것 같으나 그의 입은 굳게 다물어져 있어 그 침묵을 더 크게 보여준다.꽃잎은 분별치 않는다
가을은 어깨에 잔뜩 힘을 주고 사람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것에서 한 해의 마무리를 알린다. 올해는 여간해선 물러서지 않으려 했던 늦더위에 여름정리도 채 못하고 종종 거리고 있었는데, 하루 밤 낮 동안 서늘해진 북쪽하늘 찬 공기가 사람 마음을 쑥 내려앉게 한다.
‘벌써 한 해 마무리를 준비해야 하나….’그 첫 추위보다 더 차갑고 긴 한숨이 먼저 내려온다.
그러자 지난 여름 한번 꼭 만나고 싶었던 친구의 인사가 생각났다. 그를 본 지도 오래되었는데, 여름 끝에서 서로 사정이 여의치 않아 다음으로 미룰수 밖에 없었다.
“가을에 만나….”그 말이 좀 쓸쓸하게 들렸고, 그땐 가을이 참으로 멀었다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눈 앞에 가을이고, 곧 그 끝이 겨울이고 보면 이 가을 넘기기도 잠깐이겠다 싶다.
《유마경》중 한 부분이다.
그때 유마힐의 집에 한 천녀가 있어 여러대인들의 설법 듣는것을 보고 하늘 꽃을 보살과 여러 제자들 위에 뿌렸다. 꽃이 모든 보살들에 이르러서는 곧 떨어져버리는데 제자들에게 이르러서는 문득 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모든 제자들이 신통력으로 꽃을 떼어내고자 하였으나 하지 못하고 있을 때, 천녀는 사리불께 물었다.
“무엇 때문에 꽃을 떼어내고자 하십니까?”
사리불이 말씀하시되, 꽃이 법답지 못하기 때문이라하였다.
천녀는 곧“이 꽃을 법답지 않다 이르지 마십시오. 꽃은 분별이 없는데 존자께서 분별심을 내시기 때문입니다. 출가하여 분별한 바가 있으면 법답지 못하게 되고 만일 분별한 것이 없으면 이것이 바로 법다운 것입니다. 꽃이 보살들의 몸에서 곧 떨어지니 이것은 곧 일체분별상이 끊어진 까닭입니다.”
원나라 화가 왕진붕(王振鵬; 1280~1329)이 그린 <유마불이도維摩不二圖> 화면 중앙에는 꽃다발을 손에 들고 이를 뿌리는 천녀와 그것을 떼어내려는 사리불의 모습으로 그림 속 이야기의 실마리가 시작되고 있다.
중생이 아프기 때문에 자신도 아프다는 유마 거사와 그런 유마 거사를 문병 온 문수보살의 대화는 이미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연꽃 위에 발을 얹고, 금강좌에 앉아 고요하게 합장하고 있는 문수보살은 바야흐로 시작될 불이법문을 준비하고 있는 듯 보이며, 당시 사대부 모습으로 묘사된 유마힐은 손가락 두 개를 들어 불이법不二法을 웅변하는 것 같으나 그의 입은 굳게 다물어져 있어 그 침묵을 더 크게 보여준다.
왕진붕의 그림은 여타의 선화禪畵하고는 달라서 극적이지도 않고, 함축적이지도 못하다. 당시의 상황을 삽화로보여주듯, 혹경변상도經變相圖를보듯 설명적이다. 하지만 또 경변상과는 다르게 배경을 생략함으로써 단조롭고 고요하게 이끈다. 문수보살과 유마힐의 양 진영은 그저 팽팽하게 바라볼 뿐이다. 그 장면을 묵묵하게 또 섬세하게 표현한 것이 이 그림이다. 왕진붕은 절강지역 출신으로 원대元代인종과 문종의 재위기간에 활동했던 관리 겸 궁정화가이다. 그가 활약한 분야는 정교한 선으로 건축의 세부를 묘사하는 계화界畵가 전문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유마경의 내용을 그려낸 그의 세부묘사는 치밀하고 올 곧다.
화면의 좌우에 문수보살의 일행과 유마힐의 일행이 묘사되어 있는데, 이 그림의 관객은 그 중앙에서 좌우를 돌아보게 되어 있다. 그것을 보여주는 것은 문수보살의 대좌와 유마힐이 앉아 있는 긴 평상으로, 두 조형물은 중앙에 앉은 가상假想의 관객이 마치 스포츠 경기를 보듯 각각 좌우를 돌아보는 각기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는 시점으로 표현되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시선은 중앙의 사리불 존자와 천녀에서 시작하여 좌측의 문수보살을 바라보다가 곧 다시 우측의 유마힐로 다시 문수보살로, 또 다시 유마힐로 시선을 오가다 보면 나는 두 인물 사이에서 벌어진 끊임없는 논쟁의 중간에 서 있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전반적으로 정적에 쌓여 있는 듯한 이 그림이 보여 주는 보이지 않는 힘이며 역동성이다.
위산 山, 오봉五峯, 운암雲巖스님이 백장스님을 모시고 서 있는데 스님께서 위산스님께 물었다.
“목구멍과 입술을 닫고서 속히 말해보라.”
위산스님이 말했다.
“저는 말하지 못하겠습니다. 스님께서 말씀해 주십시오.”
“그대에게 말해 주는 것은 사양치않겠다만 뒷날 나의 법손을 잃을까 염려스럽구나.”
다시 오봉스님께 물었더니 오봉스님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스님께서도 닫으셔야만 합니다.”
스님은“아무도 없는곳에서 머리를 갈아 그대에게 보여주겠다.”
다시 운암스님께 물었더니“제게 한 말이 있습니다. 스님께서 거론해 보십시오.”
그러자 스님께서는“목구멍과 입술을 닫고 얼른 말해 보게.”
운암스님이“대사께서도 지금 그것을 통해 말씀 하시지 않았습니까?”하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나의 법손을 잃었군.”
둘이 아닌 법(不二法)에 대한 이야기의 마무리에 유마힐은 입과 목구멍을 닫았고 고요히 말이 없었다. 그 침묵에 문수보살은 바로 찬탄하여 진정한 진리란 이미 문자와 언어를 떠났다고 부연하였다. 밤 늦도록 낑깅대며 그것을 전하는 나의 글도 교언巧言에 영색令色하기가 앞산 가을단풍보다 더 찬란하니 어느 가을 오후 무료함에 지칠때 읽으면서 그저 한 번 웃고 치울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