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이 광야를 헤매고 있다. 그는 큰 코끼리를 만나 쫓기게 되었다. 때마침 우물을 하나 발견했다. 그 우물에는 등나무등걸이 늘어져 있어 그것을 타고 내려갔다. 그런데 밑에서 독사 네 마리와 독룡 세 마리가 입을 쩍 벌리고 있었다. 그리고 흰 쥐와 검은 쥐는 나무 등걸을 갉아먹고 있었다. 그때 그의 머리 위에 있던 벌집에서 떨어진 꿀이 그의 입안에 스며 들었다. 그는 그 꿀맛에 취해 정신이 혼미했다. 이것은 우리의 인생을 비유한 안수정등岸樹井藤이야기다. 그는 범부凡夫를, 코끼리는 생사生死를, 뱀은 사대四大를, 독룡은 삼독三毒을, 등나무등걸은 사람의 목숨을, 꿀은 오욕五欲을, 검은 쥐와 흰 쥐는 밤낮을 비유한다. 과연 이 사람은 어떻게 살 수있을것인가.인간은 누구나 세월을 거스를 수도 없고 오욕에 빠지며 죽음을 피할 수도 없고 탐진치에 빠진다. 그 속에 내가 있는데, 나는 과연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문제를 제기하는 이야기다. 명연 스님이 출가 전, 한 스님이 이 질문을 던지셨다. 명연 스님은 그 수수께끼만 풀면 도인이 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보름 동안 밥도 못 먹고 잠도 못잤다. 아버지께 물어봐도 오빠에게 물어봐도 답은 나오질 않았다. 그렇게 그 수수께끼의 답을 좇아 출가했다. 출가해서 도인, 대자유인이 되고 싶었다. 그때 나이 스물넷이었다.
고등학교 때 허리를 다쳐 하반신이 마비돼 병원에 1년 동안 식물인간처럼 누워 있었다. 그때 청담 스님의 ‘마음’이란 책을 읽었는데, 죽은 것과 다를 바 없었던 명연 스님은 그 책으로 인해 내면을 들여다보게 됐다. 그렇게 불교와 처음 만났다. 그러다가 서봉사 청년회에서 <초발심자경문>을 읽게 되면서 부처님 말씀에 흠뻑 빠져들었다.
“너무 기가 막힌 거예요. 소가 물을 마시면 우유가 되고 뱀이 물을 마시면 독이 되다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그 말들이 너무 멋지고 충격적이었어요. 그리고, 어차피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한바탕 산다면 진짜 멋지게 살아보고 싶었는데, 내 눈엔 스님들이 제일 멋지게 사는 것 같았어요.”
그렇게 서봉사 청년회에서 공부하다가 그 절에서 출가했다. 행자시절, 아버지 손에 붙들려 집에 잡혀가면 다시 도망쳐 나와 부처님 앞에 앉기를 여러 차례. 그렇게 이곳저곳에서 행자시절을 보낼 때 운문사에서 새벽 예불을 보게 됐는데, 스님은 그게 예불이라는 것도 모르고 그토록 아름다운 음악이 있다는 것에 놀랄 따름이었다. 그렇게 온몸으로 자연스럽게 산문안으로 들어섰다.
이제 스님은 그 시절을 추억할 만큼 시간의 흐름에 순응하며 지금까지 흘러왔다. 그러나 한 번도 돌부리나 나무둥치에 몸 얹고 쉬어 본 적 없다. 유유히, 꾸준히, 쉼 없이 썩지않는 물처럼 흘러왔다.
“한 번도 그냥 지내온 세월이 없어요. 공부, 일, 여행… 굉장히 다양한 경험들을 하면서 열심히 살아온 것 같아요. 그래서 후회도 없고.”
강원을 졸업하고 나서는 수행을 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러나 은사스님은 계속 공부하기를 원했다. 그래서 동국대에서 불교학과 석사학위를 받았다. 그 후론, 선방에도 다녔지만 계속 학문적 공부를 했다. 그러다가 8년쯤 됐을 때, 회의가 들었다. 너무 많은 일들을 하다보니 처음에 스님이 되려던 마음에서 많이 벗어나 있는 것 같았다. 정체성에 혼란이 왔다. 그래서 얼른 선방으로 달려갔다. 내면적인 공부를 하지 않으면 학문도 하나의 기술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삼매력 속에 들어가서 정진을 해야겠단 생각에 선방에서 여러 철 공부했다. 그러나 어디에 머물든 마음 안의 문제이니, 무엇을 했든 어디에 있었든 후회는 없다. 스님은 최선을 다해서 노력 했기 때문에 모든것이 이로움으로 다가온 것 같다고 말한다.
우리의 삶과 마찬가지로 여행을 하다보면 어디로 가느냐, 어떻게 가느냐, 왜 가느냐는 전혀 중요치 않아진다. 그저 낯선 어느 길 위에 서 있는 나를 발견하는 일이 여행의 가장 큰 아름다움이 된다. 그 경이로움, 스님은 혼자서 여행을 떠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게 됐을 때 참여행의 기쁨을 느낀다. 낯선 장소, 낯선 말, 낯선 사람들 속에서 오롯이 지구 위에 서 있는‘나’를 보게 된다. 그렇기에 바람 한점 구름 한점과 일체가 된다. 그런 혼자만의 여행은 이른나이부터 시작됐다.
“차에 코펠, 버너 싣고 다니다가 계곡에서 라면도 끓여먹고 보자기가 없으면 손수건 깔고 만두도 쪄먹고 물 좋은 데선 차도 마시고 그래요. 그렇게 흘러 다니다가 저 너머가 궁금해지면 길이 없어도 들어섰다가 논두렁에 처박히기도 하고. 정해진 길을 가기 보단 길 없는 길에서 있을때가 더 많았어요.”
대한민국 땅을 그렇게 홀로 다녔다. 이름 모를 작은 섬까지 두루두루. 그러다가 외국 땅 이곳저곳에서도 잠시 잊었던‘나’를 만나는 여행은 계속됐다.
“난 참 행복하게 살았지 싶어요.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많이 하면서 살았으니까. 내가 우리 은사스님의 은혜를 많이 입었죠. 그래서 더 열심히 살았던 것 같아요.”
스님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 중 또 하나는 음악. 음악 들으면서 명상을 하거나 그냥 가만히 앉아 있을 때가 스님에겐 제일 행복한 시간이다. 포르투갈의 파두, 인도 음악, 티베트 음악, 인디언 음악, 우리 국악… 가리지 않고 듣는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머리로 들을 수 있는 음악이 아니라, 부르는 이도 온몸으로 부르고 듣는 이도 온몸으로 듣게 되는 음악이 좋다. 우리 굿 음악에 빠졌을 땐 삼일 밤낮 잠도 안 자고 굿판에 앉아 있기도 했다. 음악을 통해 가슴을 열고 모든 것을 받아들이게 되니, 스님은 음악이 수행에 많은 도움이 된다고 한다. 스님은 대구불교방송국에서 1년 동안 음악을 소개하는 프로를 맡기도 했다. 그리고 현재 불교방송국에서 일주일에 한 시간씩 음악을 소개한다.
“모든 음악이 다 명상 음악이 될 수 있어요.”
고등학교 시절부터 국악 공부를 해서인지 청음이 발달했다. 노래 잘한다는 소리도 참 많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염불소리가 음악처럼 들린다는 말도 많이 듣는다.
스님이 불학연구소 사무국장 소임을 맡은 지 2년여. 쉴 새 없이 일하느라 바쁘게 살아왔다. 강원에서 사용할 통일교재를 만들고, 표준 금강경 만드는 작업도 하고, 4대 수행지침서도 진행 중이다. 간화선 책을 영역하는 작업도 진행 중이고 불교 근현대사를 정립하고 있으며 5대 총림 연구도 진행 중이다. 선원청규 편찬 작업도 하고 있다. 불교의 근간이 될 이 많은 일들을 하느라 스님의 눈가가 푸석해 보인다. 하지만 스님은, 연구소 일은 계속해서 경전을 봐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많은 공부가 되고 있단다.
일주일에 한 번씩은 은사스님이 계신 대구 서봉사에 내려가 법회를 한다. 11년 전부터 시작한 가족법회다. 부부와 아이들까지 모두 와서 온 가족이 함께 한다. 아내가 절에 가서 하루 종일 머무는것을 이해하지 못했던 남편들도 함께 와 오히려 더 많은 봉사활동을 하고,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부처님 곁에 와 앉는다. 그러다보니 부부 사이도 좋아지고 아이들과의 시간도 더 많아졌다며 많은 이들이 좋아한다. 그렇기에 11년이란 세월을 한주도 빠지지 않고 만날 수 있었을 것이다.
스님은 동국대에서 사회복지학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노인복지에 대한 공부를 했는데, 그것은 앞으로 스님이 해 나갈 일을 위해서다. 현재 서봉사에서 노인양로원과 요양원, 두개의 복지시설을 운영중이다. 그리고 이제 스님들만을 위한 요양원을 설립할 계획이다. 은사스님이 문중에서 가장 어른이다 보니 서봉사에서 주축이 되어해야 할 일인것. 명연스님은 지금까지 시현을 받기만 했으니 회향해야 할 때가 온 것이라고 말한다.
“예전에는 상좌들이 은사스님을 모셨지만, 요즘엔 사회적으로 그게 어려워졌어요. 그래서 스님들이 일반 요양원으로 많이 가시는데, 일반 사람들과 함께 있는 그 모습이 좋아보이질 않았어요. 그래서 스님들만의 전문요양원이 필요하단 생각이 들었죠. 그러면 건강한 스님들이 불편한 스님들을 돌 볼수도 있고요. 또 내가 병들면 건강한 스님들이 돌봐줄테고요.”
복지시설을 운영하기 위해 제대로 공부까지 마쳤다니, 명연 스님에게 결코 대충대충은 없는 듯하다. 차 한잔을 내밀어도 결코 그냥 내밀지 않는 게 스님의 성품이다. 분위기 있고 멋있고, 그래서 맛있게 마실 수 있도록 많은 것들을 챙긴다. 찻잔 하나에서부터 마주앉아 나누는 온기까지도. 그것은 타인에게만이 아니라 자신에게도 마찬가지다.
명연스님은 요리를 잘하기로 유명하다. 특별히 정통으로 배워서가 아니다. 스님만의 요리법과 스님만의 마음이 느껴지는 요리로 유명하다. 절안에서 손수 음식을 만들어 파티도 하고 생일상을 차리기도 한다. 예쁜 그릇에 정성껏 담아 좋은 벗들과 기분 좋게 먹으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해진다.
“우선, 잘 먹으니까 잘 하게 되는 것 같아요. 내게 있어서 특별하게 정해진 음식은 없어요. 하나의 재료를 가지고도 무한하게 만들어낼 수 있는게 요리라고 생각해요. 그 재료엔 꼭 그 소스를 써야한다는 고정관념만 버리면 누구든 다 가능해요.”
어떤게 있느냐고 여쭈니 스님이 한 가지 레시피를 공개했다. 토마토에 올리브오일을 넣고 끓이다가 소금으로 간을 하고 마지막에 청국장을 넣으면 훌륭한 토마토청국장 수프가 된다. 전혀 연결 시켜보지도 못했던 재료들의 만남이다. 고개를 갸웃거리자 스님은 음식의 궁합도 상당히 중요시해야 하는데, 그 둘은 아주 좋은 궁합이란다.
“우린 틀에 갇혀 있어요. 그 틀을 깨버리면 무엇이든 가능해요.”
그것은 결코 음식에만 국한된 얘기가 아닐 것이다. 공부, 여행, 음악, 그리고 우리가 사는 일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우리는 틀이 없는 곳에도 틀을 만들어 스스로 그 안에 갇혀 불편해 하고 괴로워한다. 마음이란 게 본래 실체가 없는 것이기에 어디에도 구속당하지 않을 수 있는데 우린스스로틀을 만들고 그 안에 갇힌다.
“마음을 찾아 수행하는 것인데, 틀을 깨지 않으면 안되죠.”
스님은 내내 스스로를‘참 많이 받고 많이 누린 행복한 사람’이라고 했다. 그래서 스님은 이제 회향하려고 한다고.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기에 스님은 행복할 수 있는 게 아닐까. 똑같은 사랑을 받고도, 받았는지조차 모르는 사람도 있고 더 받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사람도 있으니 말이다.
“내가 처해 있는 여건 속에서, 타인에게 피해 주지 않는 한에서, 나를 행복하게 하는 방법들을 잘 선택하며 살아야지요. 내 스스로 행복해지기 위해 노력하고 그렇게 행동하면서. 내 삶은 누가 만들어주는 게 아니라 내 스스로 나아가는 거니까. 지금처럼, 평온하게.”
스님은 또다시 여행길에 설 것이란다. 스님은 홀로 낯선 길을 걷다가 문득 멈춰 들려오는 음악을 들으며 평온하게 웃을 것이다. 누군가와 함께 있어도 외롭다는 것은 자신의 본래 진면목을 만나지 못해 그런 것일 테니까. 그리고 지금처럼 이렇게 말 할 것이다.
“수행자는 혼자 잘 놀 수 있어야 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