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른 아침 전화벨이 울린다. 평소보다 단출한 아침식사가 끝날 무렵, 집 앞에 거의 다 왔다는 선배의 목소리가 수화기를 넘어 아내에게까지 들어간다. 어제 미리 꾸려놓은 짐을 다시 한 번 살핀 후 아내의 배웅을 뒤로 한채 집을 나선다. 엘에이의 한인들이‘깡통 밴’이라 부르고 있는 짐 운반용 승합차가 주차장 입구로 고개를 내민다. 선배 형님과 반가운 인사를 나눈다.
역마살이 있는 내가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여행을 좋아하는 선배. 이이가 이민 온 지는 30년이 다 되어간다. 미국에 처음 내리자마자 향한 곳이 요세미티 국립공원이었을 정도로 길 위에 있길 좋아한다. 이번 행선지도 요세미티 국립공원으로 잡았다. 숙소에 여장을 풀고, 다음날 새벽 요세미티로 향했다. 맑게 노란 달이 어찌나 크고 밝은지 놀랄 정도. 만월에 가까운 달이 지평선에 닿을 듯 낮게 떠 있는 모습이 생경하다. 계곡에 도착하는 내내 전나무로 가득한 침엽수림이 도로를 따라 원시림의 모습을 하고는 함께 달렸다. 계곡을 낀 산책로에 발을 내딛는다.
숲속 깊은 곳에서 피어오른 한기가 두터운 외투를 뚫고 들어와 몸을 움츠러들게 한다. 그리고 나무와 돌, 냇물과 흙, 짐승들과 오래된 이끼들이 뿜어대는 차고 맑은 향기가 코 속을 후벼 판다. 아리고도 좋은 냄새다. 얼마 만에 맡아보는 숲의 향내던가? 한국에서 숲을 돌아 다녔던 기억들이 떠오른다. 나도 모르게 저절로 숨을 깊게 들이마시게 된다. 도심에서의 걸음걸이와는 다르게 천천히 걷게도 된다. 나는 숲이 좋다. 숲에서 걷는 것이 참 좋다. 사람을 만나 이야기하는 것보다도 좋을 때가 많다. 내가 좋아하는 만큼 숲도 나를 좋아했으면 한다. 나무와 돌, 풀과 냇물을 따라 걸었다. 사람들은 이것들이 말을 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렇지 않다. 그렇다고 그런 말을 하는 이들을 설득할 마음은 없다. 언젠간 그이들도 들을 수 있는 시간이 오길 바랄 뿐이다. 하지만 적어도 이것들에게 말을 걸면 듣고 있다는 것쯤은 알고 있을 것이다. 나의 마음이 아프고 지칠 때, 머리로 이야기되지 않고 가슴으로 밖에 이야기할 수 없었을 때, 나는 언제나 이들이 있는
숲이 그리웠고, 이들에게 말을 건넸었다. 나는 선배와 숲을 걸을땐 이야기를 나누기 보단, 침묵을 나누길 바랐다.
어둠이 내린 숲, 깡통 밴에 잠자리를 마련하고는 차에서 나와 밤하늘을 본다. 강처럼 흐르는 은하수가 천공에 놓여 있다. 강원도 두타산에서 보았던 그 은하수와 다름이 없는 모습이다. 별들이 같을 테지… 빛 알갱이를 모아 놓은 스크린에 점점 더 많은 별들이 생겨난다. 이처럼 오래 바라보고 있어도 어느 것 하나 지루한 것이 없다.
어느 것 하나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다. 자연이란 참 위대하다. 인간이 자연의 일부라던데? 누군가 나를 바라보고 있으면 이처럼 지루함 없이 아름다울까? 부끄러운 일이다. 나는 이처럼 아름다운 모습을 본 경험이 있다. 어린아이를 보고 있을 때 그러했으며, 별같이 곱고 맑은 눈동자 속에 내 얼굴이 비춰지던 내 딸아이가 그렇다. 눈물이 나도록 완전하고 아름다운 존재들이다.
선배의 말로는 이민 초기에 보았던 요세미티 국립공원의 모습과 현재의 모습은 하나도 변한 것이 없다고 한다. 도로와 편의 시설도 확장한 것이 없단다. 참 고마운 일이고 당연한 일이다. 어느 것을 위한‘편의’란 말인가? 자연계에서 오직 한 존재, 썩지 않는 쓰레기를 고의로 생산해내는 존재는 이제 편의를 양보해야 한다. 저기 저 수많은 별들조차 스스로 사라진다는 것을 정확히 보아야 한다.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우리는 자연이기 때문이다. 너무 확연한 것이다. 스스로에게 돌아가야 한다. 숲의 소리를 듣는 것은 자기와 대화를 하는 것이다. 밖이 아니라 안에서 흐르고 있는 냇물 소리를 듣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