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갠지스에서 만난 어린 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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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이야기 - 일광 /거창죽임정사 2007년 11월 309호
매일같이 낮 동안의 바라나시는 우울한 갈색 도시로만 느껴지지만 밤이 되면 몽환적인 축제의 열광이 시작되어 다음날 갠지스강에 선홍빛 일출이 물들 즈음에야 진정이 되는 듯 싶었다. 땡볕을 피해 오후 늦게까지 숙소에서 여독을 풀다가 문득 삶의 무게처럼 여행 내내 등에 지고 다니던 거북이등 같은 배낭을 훌훌 던져놓고 삶의 마지막에 있는 그들처럼 가볍고 단호한 마음으로
화장장이 있는 가트로 나갔다. 검은 연기로 매캐한 화장장에 생生과 사死가 하나가 되어 강물과 보트처럼 그곳에 그렇게 오래 전부터 존재하고 있었다.
우리가 인도에서 타고 다니던 릭샤꾼들의 정강이와 닮은 바짝 마른 장작개비 같은 시신이 타는 데 소요되는 시간은 그리 길지도 않았다. 남아 있는 자들은 그 누구도 슬퍼하거나 오열하지 않았고 무심히 흘러가는 갠지스강의 그것과도 같이 담담하고 차분하였다.
나는 오래도록 서서 그 장면들을 응시하며 깊이 사유하고 있었다. 먼 전생으로부터 비롯한 것 같은 어떤 감정 하나가 울컥 하고 튀어나왔다.
그것은 눈물인 것도 같고, 설움인 것도 같고, 존재의 외로움인 것도 같았다.
강가의 숨결이 너무 뜨거워 보트를 타기에는 이른 시간이었지만 이미 많은 보트꾼들이 외국인들을 상대로 흥정을 벌이고 있었다. 난 이대로의 침묵이 좋아 방해받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며 천천히 걷고 있었다.
“잠깐만요…Wait!”
예기치 않은 소년의 목소리에 난 발걸음을 멈추어야 했다. 나를 불러세운 소년은 파란색 페인트를 칠한 보트를 자신 있게 가리키며 강가 건너편까지 구경을 시켜줄 테니 자기 보트를 이용해 달라고 청하고 있었다. 난 엊그제 바라나시에 도착해서 이미 보트를 탔기 때문에 그럴 필요가 없다고 정중하게 말했다. 그러자 소년은 새까맣게 그을린 얼굴로 큰 눈을 반짝거리며 이렇게 말했다.
“당신 오늘 밥을 먹었나요?”
난 웃으며“Yes!”라고 답하며 뭔가 예사롭지 않은 소년의 조그만 입에서 나올 다음 대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제 보트를 탔다고 해서 오늘 탈 필요가 없다라고 한다면 당신은 어제 이미 밥을 먹었는데 왜 오늘 밥을 먹었죠? Why? 어제의 밥은 어제의 밥이고, 오늘의 밥은 오늘의 밥인거예요. 내 말 이해하겠어요?”
쌩텍쥐베리의 어린 왕자가 불쑥 나타난 듯 당돌한 소년이 신비로워서 나는 가슴마저 콩콩 뛰고 있었다. 난 자상한 목소리로 말했다.
“밥은 일상적인 거지만 보트는 나에겐스페셜이거든.”
그때 소년은 자신의 손을 내 눈앞으로 치켜 올리며 말했다.
“자! 이 손을 만져 보아요. 어서요.”
난 안타까운 꽃송이를 받들 듯 소년의 작은 손을 조심스레 잡았다.
하지만 그 손은 아이의 손이 아니었다. 인생의 굳은살이 깊이 박힌 어부의 거칠고 험난한 손 그것이었다. 나는 순간 내 보드라운 손이 부끄러워 견딜 수 없었다.
“넌 몇살이니?”
짠해져 아리는 가슴으로 소년의 큰 눈을 응시하며 물었다.
“13살이요.”
소년은 차분하게 나를 올려다보며 말을 이어나갔다.
“당신에겐 보트가 스페셜이지만 나에겐 보트가 일상이며 삶 그 자체입니다. 노를 젓는 이 두 손으로 내 부모를 먹여 살리는걸요.”
소년의 말대로라면 그의 부모는 50-60대이며 두분다 몸이 불편하여 곁에서 시봉할 사람은 자신뿐이라고 하였다. 그는 아침저녁에는 뱃일을 하여 돈을 벌고 낮엔 5시간 정도 공립학교를 다닌다고 했다. 어디서 그렇게 영어를 배웠냐고 했더니 오래전부터 보트일을 하면서 태우는 관광객들에게 영어, 일어, 불어등을 배웠기에 의사소통은 해도 잘 쓰지는 못한다고 머쓱해 했다. 하지만 자신이 하려는 각오만 있다면 일하면서도 외국어는 어렵지 않게 배울 수 있다고 진지한 목소리로 답했다.
“버닝가트(화장장)에 대해 넌 어떻게 생각하니?”
“나는 다만 그저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갈 뿐이에요.”
그랬다. 인도 성자의 말처럼 무겁고 짤막하게…….
그때 가까운 곁에서 우리 둘의 대화를 힐끔거리던 꽃무늬 원피스를 입은 소녀가 얼굴을 붉히며 다가왔다 “. 이꽃을사세요. 싸게드릴게요.”
애써 땋긴 했지만 제멋대로 삐져나온 거친 머리칼과 땟자국의 맨발로 소녀는 빨간 디아(매일 저녁마다 강가에서 벌이는 힌두 종교의식인 아르띠 뿌자를 할 때 강에 띄우고 소원을 비는 꽃불)를 한 바구니 들고 서 있었다.
난 이 소녀가 또 얼마나 집요하게 따라 붙을 것인가 싶어 성가신 마음이 들었다. 빨리 마음을 접고 나를 포기할 수 있도록 거짓말을 해야만했다.
“봐라. 지금 내가 지갑을 안 들고 나와서 사줄 수가 없는걸……. 어떡하지?”
사실 나는 복대 안주머니에 여권과 약간의 비상금을 지니고는 있었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썩 내키지 않았다. 긴 배낭여행의 고단함과 인도인 특유의 근성에 지칠 대로 지쳐있었기에 세포 속의 여유가 다 증발해 버리고 없었던가 싶다.
“그럼 당장 돈을 가지고 와서 사 주세요. 저는 오늘밤 이것을 다 팔아야만 해요. 선생님의 숙소가 어디예요? 제가 따라갈게요.”
결코 순순히 물러날 기세가 아니었다. 내가 난처한 표정을 짓고 있는데 어디서 나타났는지 그 또래 행색의 아이들 십여 명이 순식간에 우리 주위를 삥 에워싸고 서로 자신이 만든 디아를 코 밑에까지 내밀며 사 달라고 아우성을 치고 있었다. 그때 어린 왕자는 좌중을 향해 그들의 형처럼근엄하게 타일렀다.
“이분이‘디아’를 사야 한다면 맨 처음 흥정한 얘 것을 사주실 거야, 그래야만 해.
너희들은 나중에 왔으니까 디아를 강요할 자격이 없어. 이것이 바로 이곳의 비즈니스 룰이야. 다들 가서 다른 외국인들을 찾아봐 …. Go! Go!”
소년의 추상같은 말 한마디에 모여 있던 아이들은 알아듣지 못할 인도어를 한마디씩 내 뱉으며 못 마땅한 표정으로 흩어져버렸다. 소년은 이어서 말했다.
“당신은 이 소녀와의 약속을 지켜 주세요. 그리고 저녁에 보트를 다시 탄다면 부디 나의 보트를 이용해주기를 바랍니다. 그럼 이따가 만나요. 피르밀랭게”
총총히 사라지는 소년의 뒷 모습을 지켜보면서 메마른 내 가슴에 생기와 환희로움이 요동쳐왔다. 숙소로 돌아와 라시로 저녁공양을 해결하고 잰 걸음으로 다시 가트로 나와 그들을 찾았다. 하지만 어스름이 깔린 갠지스강에는 이미 많은 보트들이 강가 위를 유영하고 있었고 수 없는 꽃불들이 물결을 따라 윤회처럼 끝없이 떠돌아다니고 있었다.
내 눈동자는 조급하게 그 아이들을 찾았지만 그날밤 그들을 끝내 볼 수 없었다. 그들은 도대체 어느별에서 내려와 푸석하게 떠돌아다니던 내 영혼에게 순결한 빛으로 다가온 것일까? 내 손에 담겼던 망치처럼 뭉텅하고 거친 두 손의 여운이 아직도 남아 있는 듯하다. 나는 그때 기꺼이 복대 속 주머니를 열어 소녀의 디아를 사서 강가에 띄우고 그 어린왕자의 보트를 탔어야만 했다. 그 여운과 후회가 아직도 남아 시간이 흐른 지금도 가끔씩 상념 속 갠지스강을 배회하고 있다. 그 아이들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바라나시는 그저 잿빛의 칙칙한 도시로만 남겨졌을 것인데 나는 갠지스에서 삶에 투명한 화두 하나를 품고 올 수 있었다.
그랬다. 여행에서도 누구에게나 그나마 맘껏 해준 것은 마음에 그림자가 없는데 내가 모질게, 부족하게다 못해 준 것은 언제고 애틋한 여운과 후회로 남는다.
인도에서 네팔까지 험한 일정을 함께 했던 내 도반에게도 그때 미처전하지 못한 고마움을 가을바람에 실어 보낸다.
“그대와 함께 했기에 가능했다오. 늘 청안하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