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란 것이 뚜렷한 목적지도 없이 한발 한발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가 생을 마감한다는 말을 떠올리며, 내세울 만큼 뭘 한 것도 없고 무엇을 위한 것인지도 모르고 그냥 그렇게 앞만 보고 간 것 같다. 무엇을 추스를 사이도 없이 흐르는 대로 그냥 그렇게….
돌아본 길 위에는 짧은 나의 흔적들이 기쁨과 즐거움보다는 슬픔과 안타까움, 후회와 미련의 나날들이 마치 늦가을 떨어진 마른 낙엽들처럼 제멋대로 뒹굴고 있다.
이제까진 그렇게 바람에 날려 다니는 무질서한 흔적들이었지만 지금은 낙엽 되어 떨어지고 남은 앙상한 마른 가지들에게 옷을 입혀 풍요로운 가지들로 변신중이다.
한 삼년이 된 것 같다. 아이들이 모두 성년이 되어 잔손에서 벗어나면서 부모, 아내, 며느리, 직업인이라는 위치에서 벗어나 나란 존재를 찾기 시작하면서 몰려오는 허무감으로 힘들어 하던 시절.
수련회를 접하게 되면서 하나의 전환점이 되었고 아날로그세대라 컴퓨터라곤 업무적으로 필요한 것만 겨우 접하고 있던 내가 컴퓨터의 마법에 빠져들기 시작하면서 컴퓨터와 노는 시간들이 많아졌다.
내가 자주 들르는 곳에서 언제부터인가 찾는 이름이 생겼다. 그 사람이 살아가는 맘 씀씀이가 내가 결혼 전에 생각하고 있던 그런 것들이었다. 그런데 점점 날이 갈수록 그것은 지금 내가 힘들어하고 있는 나의 일상생활이란 걸 알게 된 것이다. 항상 저 멀리 있다고만 느껴왔던 일들이 지금 나만 모른 채 내 주위에 머물고 있었던 것이다. 다만 내 맘이 그 쪽을 향하지 않고 있었다는것 뿐….
내가 하면 로맨스요 남이 하면 불륜인 것처럼 편안한 삶이라고만은 할 수 없을 것 같은 사람이 쓴 글을 보면서 아름다움과 여유로움과 행복을 느끼는 이율배반적인 일들이 일어났다. 별 이야기도 아닌 그냥 술술 풀어놓은 일상생활이 그 작가의 맘과는 상관없이 내 마음이 평온해지고 웃음이 나오고 맘이 아려 눈물이 나오고… 그러다가 나중엔 그 모든 것들이 이상하리만큼 아름다
움과 풍만한 여유로움으로 귀착되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대충 그 사람들의 가족관계라던가 생활상들이 내 눈에 들어왔다.
칠남매, 삼남사녀의 맏이.아들 형제를 두고 세 자매가 가까운 곳에 자리하며 산나물을 캐기도
하고 텃밭을 손질하며 장날을 따라 움직이며 야채행상을 하는 나랑 같은 연배의 아줌마. 결코 그 사람은 행복하다 불행하다 표현은 안했지만 만약 나의 생활이 그랬다면 결코 행복이라 느끼지 못했을 상황들 속에서 난 왜 그 사람의 손끝에서 여유로움과 따사로운 감정을 느끼고 있었을까를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이유가 뭘까? 늦었지만 나도 한 번 그 아줌마가 했던 것처럼 흉내를 내기 시작했다.
어릴 적 강압적인 일기장 검사에 떠밀려 공간을 메꾸었던 것과는 다르게 아주 자발적으로 생활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보여주기 위한 것도 아니고 누굴 위해 하는 것도 아니고 선생님께 검사 받을 일도 없으니 아주 편안하게….
어릴 적 억지로 소재를 만들어서 해야 할 때와는 다르게 어찌 그리 소재도 다양한지. 적은 나이도 아니건만 시어른의 조그만 칭찬 한마디에 새털같이 가벼워지던 맘, 부모님의 노년을 바라보며 가슴 아린 얘기, 사는 게 힘들고 서글퍼 흘리던 눈물 얘기, 다 큰 자식들과 각을 세우며 힘들었던 얘기, 구멍 난 양말들 모아 전구를 넣고 꿰매다 장난기 발동한 얘기, 내 몸뚱어리 조차도 내 의지대로 움직일 수 없어 눈물짓던 얘기, 무심한 옆지기 나름대로 골려 먹으며 화풀이하던 얘기, 옆지기·형제들의 무거운 짐을 같이 나누어 들어주지 못함에 가슴 아린 얘기, 새하얗게 삶아 널어놓은 속옷에 눈부시게 비치던 아름다운 햇살얘기, 직장생활에 대해 회의를 느끼던 얘기, 엎어버린 화분 속에서 보란 듯이 비집고 나오는 생명력 있는 새싹얘기, 늙음 앞에 마주 선 나의 미래의 모습을 그리며 서글펐던 얘기….
되돌아 다시 읽으면 그 시점의 시렸던 맘과는 아무 상관없이 그 아줌마의 글을 읽던 것처럼 마음의 여유가 느껴지는 것이다. 지나간 즐거웠던 일이 더욱 행복하게 느껴짐은 말할 것도 없고 힘들었던 일상까지도 어찌 그리 여유롭게 보이는지 그냥 무심하게 했던 보편적인 대화도 그리 정겨울 수가 없다.
그 당시엔 훗날 그 상황에서 여유로움과 정겨움을 느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을 일….
눈가는 촉촉이 젖어들지만 입가에선 웃음이 피어오른다.
왜 반백이란 세월이 지나서야 나 스스로의 틀에서 벗어나와 한 발짝 멀리 떨어져 나를 바라볼 수 있는 기회가 왔는지 아쉬울 뿐이다.
좀 늦은 감은 있지만 어슬픈 글로써 이제라도 나의 뒤꼭지를 바라보게 됨에 감사해한다.
이미 눈은 침침해져 글씨 보기는 힘들고 돋보기의 힘을 빌려야 하지만 어릴 적 손으로 그려 넣던 크레파스로 그린 그림 대신 중간 중간 사진으로 현장 보존까지 해가며 디지털시대의 덕을 톡톡히 보면서 아픔과 슬픔이 시간과 공간에 따라 눈부신 아름다움으로 승화할 수 있다는 걸 실감하며 한장 한장 그림일기를 써 내려간다.
그냥 두면 아무 의미 없는 무덤덤한 흙더미 돌더미 사이에서 반짝이는 사금을 그물에 걸러 올리듯 이제나마 나의 삶이 모든 것을 태우고 사그러 없어지는 불꽃 같은 것만은 아니었노라 이렇게 나 스스로를 위로하며 오늘도 난 내가 놓쳐버린 아름다움과 여유로움, 행복과 슬픔들을 흙더미 돌더미 사이에서 걸러 내는 작업을 한다.
글 쓰는 재주를 가진 사람만이 하는 것이란 관념을 깨고 시도는 했지만 많은 책들을 가까이하지 않아 문장을 아름답게 구사하는 능력도 없고 더더욱 아기자기 곰살스럽게 표현하는 재주는 더 없는 가운데서도 그물망 위로 걸려 올라 올 뭔가를 위해 열심히 그물망을 흔든다.
여유가 생겼다. 일기를 쓰는 동안 만이라도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여유.
즐거울 때보다는 뭔가 위로가 필요할 때 난 이 지난 흔적들을 뒤적거리며 나 스스로에게 최면을 건다. 때론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과 함께 입가엔 잔잔한 미소를 띠우며 위로가 필요했던 마음자리를 흐뭇함으로 채워낸다. 여유로움으로 자리바꿈한 시간들은 어지럽고 심란스러웠던 것에서 나 스스로를 해방 시켜주는 것이다.
언제까지 이어질지 알 순 없지만 이왕이면 훗날 저 멀리 떠난 뒤 부모로서의 모든 허물 뒤로 하고 이한 장의 CD를 보며 슬픔을 아름다움으로도 변화시킬 수 있었던 어미였다고 기억해주길 바라며 난 오늘도 두서 없고 어설픈 문장으로 하루를 정리하며 마른 가지에 풍성한 옷을 입힌다.
설사 아무 쓸모없는 얘기를 써 내려간 오늘 하루일지라도 오늘이 지나고 내일이 오면 아름답고 여유로웠던 나의 지난 흔적들로 간직되어지길 바라며….□
- 법보시 하셨습니다(10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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