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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락을 잘리고 깨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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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마의 방 - 김신 2007년 11월 309호
우하하. 부처가 저 우상으로부터 진짜 부처가 되는 대목이었습니다. 간담이 서늘해지는, 그러나 통쾌하기 그지없는 가르침이었습니다.
우리 조계종의 종지가‘불립문자 교외별전 직지인심 견성성불’입니다. 오늘 아침에는 나옹 스님께서 노래했던“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의 가르침을 음미합니다. 책갈피를 열다가 적어놓은 글귀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손가락을 잘리고 깨닫다

깨닫다’라는 말이 날선 칼로 들어와 박힌 게 대학시절이었습니다. 도대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를 알고 싶어 그리도 불면의 고통이던 젊은 날의 어느 날이었죠. 철학과 동기 중에 사미승 노릇을 하다가 입학한 친구가 있었는데, 어느 선술집에서 그 이야기를 꺼내던 거였습니다.
“한 스님이 계셨는데, 불법을 물으러 오는 이에게 말없이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이는 거로
모든 법문을 대신하는 거라. 그때 사미승 녀석이 그 일에 익숙해지자 참으로 불법이라는 게 암 것도 아니더란 말이지. 그러던 어느 날, 큰스님 아니 계신데 어느 구도자가 찾아와 불법을 물어요. 그러자 그거 암 것도 아니라며 스스로 큰스님 자리에 앉아 손가락을 들어 보였겠다.
그리고 큰스님 돌아오시자 자랑이었지. 그러자 큰스님이 자기도 불법을 물을 테니 좌정하라 이르고는 묻는 거였어. 그러자 사미승 의기양양하여 엄지를 내밀어 보였지. 그때! 큰스님은 날선 칼을 내어 단번에 사미승의 엄지를 잘라버렸어요. 그러자 사미승은 깨달았다는군.”
저 구지 화상의 일화였던 거지요. 그래서 그 이야기가 이 중생을 발심시킨 화두가 되었더랍니다. 참으로‘매일의 자살과 매일의 부활’이 반복되던 젊은 날이었습니다.

군에 입대했습니다. 전반기 훈련을 마치고 강원도 어느 사단 신병교육대에서 경기관총 주 특기로 후반기 교육을 받던 때입니다. 그런데 한 친구가 취침 시간만 되면 무엇을 꺼내어 읽는 거였습니다. 궁금했던 내가 빌려 읽기를 청했습니다. 아 <반야심경>이었습니다. 한자어 번역과 우리말 번역이 함께 실려 있었지요.‘ 색즉시공 공즉시색’을 들고 물었습니다.
“색은 뭐고, 공은 뭔가?”
“색은 형상 있는 모든것을 이름이요, 공은 그 모두가 실체가 없다는 거지.”
인연 있는 중생의 만남이 그런 식으로 왔던 겁니다. 사단 사령부에 배속된 후에 사단의 법당을 찾아갔고, 드디어 부처님 오신 날 찾아오신 당시 총무원장 경산 스님에게서 연비를 받고 법현法顯이라는 법명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제대후에 동국대학교 인도철학과로 편입학을 했습니다.
아, 젊은 날. 아름다운 축복이 자칫 저주이기 십상인 그 시절을 지나왔습니다. 출가사문이
되고 싶었지만, 그럴 인연도 그럴 그릇도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젊은 날이 저주인 것은 저 욕망 때문임이 확실했습니다. 술은 지나치기 십상이었고, 성욕 또한 어찌 해볼 도리가 없는 근심이었습니다.

어느 날 탄산坦山스님이 학승 하나와 길을 가고 있었답니다. 비가 내려 길은 진흙탕 길이었습니다. 그런데 길모퉁이에서 탄산 일행은 어느 귀댁의 아가씨를 만났습니다. 어여쁜 아가씨는 진흙길을 건너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탄산이“제가 건네 드리지요.”그리 말하고는 아가씨를 덥석 안아 길을 건네주었습니다. 다시 길을 떠났습니다. 학승이 물었습니다.“ 스님, 출가사문으로서 어쩌자고 여인을 안아 건넸습니까?”탄산이 대답했습니다.“ 자네는 아직도 그 아가씨를 안고 있는가? 나는 벌써 내려놓았네.”
우하하. 통쾌하게 웃었습니다. 내밀었던 손가락이 잘리는 기분이었지요.
그런데 정작 진짜 고통은 학문으로 인도정신을, 아니 불교를 공부하려 하는 그 집착이었습니다. 길을 찾아 숲에 들었다가 길을 잃어버린 형국, 바로 그거였습니다. 알고 있는것 같으면서 모르고 있던, 불법의 저 무궁한 말씀의 숲. 거기서 길을 잃지 않기가 그리 쉬운 노릇이 결코 아니었지요. 선사의 할이거나 몽둥이질을 한 방 받고 정신 좀 차리고 싶었습니다.

당나라 단하丹霞선사가 어느 추운 겨울날 도반의 절을 찾아갔는데, 법당의 목불을 꺼내다가 불을 때며 몸을 녹였답니다. 절 사람들이 몰려나와 이 무슨 해괴망측한 짓이냐고 놀랐지요. 선사가 말했습니다.“ 이 부처에게서 사리를 얻고자 하고 있을 따름이외다.”“나무로 만든 부처상에서 어찌 사리가 나온단 말이오.”“그렇다면 나머지 부처도 불 태워 몸을 녹이느니만 못하잖소?”
우하하. 부처가 저 우상으로부터 진짜 부처가 되는 대목이었습니다. 간담이 서늘해지는, 그러나 통쾌하기 그지없는 가르침이었습니다.

우리 조계종의 종지가‘불립문자 교외별전 직지인심 견성성불’입니다. 오늘 아침에는 나옹
스님께서 노래했던“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의 가르침을 음미합니다. 책갈피를 열다가 적어놓은 글귀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물은 어느 그릇에나 담기니 그 융통성을 배울 일이다. 물은 낮은 곳으로 흐르니 그 겸손을, 막히면 돌아갈 줄 아니 그 지혜를 배울 일이다. 또한 물방울이 바위에 구멍을 내는 그 인내를, 그 어떤 더러운 물조차 받아들이는 포용을, 그리하여 마침내 바다에 이르는 대의를 배울 일이다. 이게 해인海印 아니던가.”
함부로 손가락 쳐들고 까불던 내 손가락을 찾습니다.□